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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문학 전성시대(全盛時代) 최근 10년 동안 영화관에 가본 적이 거의 없다. 굳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 이유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대형TV로 원하는 시간에 편안하게 집에서 봐도 충분했다. 그리고 이제는 대형화면도 필요 없고, 작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으로 영화요약을 보는 게 더 편해졌다. 즉, 영화라는 형식은 더 이상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고, 새로운 감각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movie)는 끝났다 - 영화를 볼 수 없는신체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는 단순히 한국영화감독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환경과 구조가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주었던 상상력과 감각적 자극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최근에는 영화처럼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연극과 같은 공연을 보러갔다. 개인적으로만 봐도 1년동안 연극도 보고.. 2025. 12. 25.
물리칠 수 없는 확실성의 유혹 '빨주노초파남보'무지개를 보면서 떠올리는 색깔이다. 그런데 정말 내가 보는 색이 빨주노초파남보인가? 무지개는 당연히 빨주노초파남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무지개의 색깔은 그렇게 확실한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가 빨주노초파남보라고 하는 것은 실제 우리가 본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언어가 만들어낸 현실-환상이기때문이다.언어와 색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 기 도이치) 문화와 지역에 따라서 색을 지칭하는 것이 다르다. 특히 원시 부족들은 색에 대한 분류가 세밀하지 않기에 빨강 노랑 검정 정도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푸른 하늘은 검은 하늘빛이라는 언어를 갖게 된다. (기 도이치가 이 색깔 문제에 천착하게 된 것은 호메로스의 시에서 본 '검은 하늘'이라는 표현에 있다.) 빨주노초파.. 2025. 12. 25.
2026년 새벽낭독 시즌1 - 몽테뉴 <에세1>(1/5~) 모집) 작심삼일 프로젝트 - 몸을 깨우고 마음을 움직이는 새벽낭독2026 새벽낭독 시즌1 - 몽테뉴 (1/5~) 시작 - 1/5(월) ~ 새벽 6:15 ~ 7:15 독자여, 여기 이 책은 진솔하게 쓴 것이다. ...... 이것이 세상의 호의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 나는 나를 더 잘 장식하고 공들여 제시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여기서 꾸밈없이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보통 때의 내 모습을 봐 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내가 그려보이는 건 바오 나이기 때문이다. ...... 그러니 독자여, 나 자신이 내 책의 재료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경박하고 헛된 주제에 그대의 한가한 시간을 쓰는 것은 당치 않다. 그럼 안녕, 몽테뉴로부터, 1580년 3월 1일 (미셸 드 몽테뉴 35~36쪽) "이것은 세상에 단 하나밖.. 2025. 12. 25.
나는 전대미문의 무서운 인간이다 의 마지막 장의 제목은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이다. 이 책이 니체 이후에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용설명서라면 여기서 '운명'은 두 가지를 함축하고 있다. 니체가 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하나의 운명'이다. 기독교적 진리가 무너진 1844년에 태어난 니체는 자기 내부에 "이성적 인간과 직관적 인간"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니체에게 남은 길은 오직 이길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도덕을 힘, 원인, 목적 자체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번역한 것"은 하나의 운명이고 바로 그것이 차라투스트라가 해야할 일이었다. 두번째, '하나의 운명'은 그냥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운명을 마주하는 것은 그 누구라도 피하고 싶어할 만큼 잔혹하고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 2025. 12. 25.
단기세미나 모집) 거인들과 비극적 사유의 탄생 (1/9~) 단기세미나 모집) 거인들과 비극적 사유의 탄생 (1/9~) 시작일 : 2026. 1/9(금), 저녁 7:45~ (10주)https://cafe.naver.com/afterworklab/1973 현대 철학과 정신분석, 예술을 이해하는 토대로서 그리스 비극과 니체를 살펴봅니다. 신기하게도 서구 문명의 기원이자 인간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여겨지는 에도 거인족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니체가 아폴론과 함께 자주 거론하는 디오뉘소스도 없다. 그리스 신화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거인족들은 왜 에 등장하지 않을까.어떤 면에서 보면 호메로스의 신화들은 거인족들을 땅 속에 파묻어버리고 난 뒤의 세계다. 즉, 호메로스의 신화는 거인족들의 잔인함과 파괴적 충동을 잠재우는 새로운 신화였다. 그렇기 때.. 2025. 12. 13.
동물들도 응시를 경험할까 (feat. 의태와 회화) 6, 7, 8강 전반부까지만 보면 라캉의 응시는 니체의 자폐적인 자기인식의 반영이나 사르트르의 시선과 상당히 흡사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8강 후반부에서 라캉은 응시를 의태와 연결시키면서 마치 실재인 시선이 동(식)물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말한다. 라캉이 주목한 것은 카이유와의 논문이다. 카이유와의 논문은 동물들의 모습/무늬가 주변의 형태에 적응해서 바뀌는 점을 주목하는데 카이유와는 이를 적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즉, 카이유와 이전까지 나비의 모습/무늬가 주변처럼 바뀌는 것은 잡혀먹지 않기 위해서 적응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카이유와는 적응해서 무뉘가 바뀐 나비들과 그렇지 않은 나비들이 잡혀먹히는 빈도가 별 차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천적을 피하기 위해서 주변의 모습과 비슷.. 2025. 11. 30.
그림이란 무엇인가 (feat.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 응시의 마지막 부분인 의 9번째 세미나의 제목은 '그림이란 무엇인가'이다.라캉은 에서 미술 혹은 회화에 대해 계속 언급해 왔는데 굳이 9번째 세미나의 제목을 '그림이란 무엇인가'로 정했다. 라캉은, 메를로퐁티와 마찬가지로 시관충동 응시를 잘 보여주는 것이 회화라고 생각했고, 또한 이는 라캉의 주체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데에도 좋은 사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문자와 정신공간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더욱더 확실하다. 시관충동의 응시는 욕망하는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회화는 응시-길들이기이면서 동시에 응시를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라캉의 응시 개념을 바탕으로 좀 더 강하게 말하자면, 응시를 드러내지 못하는 회화, 응시를 은폐만하는 회화는 예술.. 2025. 11. 30.
거인들(Titan)과 호메로스의 경쟁 과 함께 니체가 말하는 '비극적 사유'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당시 니체가 썼던 다양한 글들을 낭독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호메로스의 경쟁'이라는 글을 낭독했다. 새벽의 여명(黎明) 때문인지 아니면 한달동안 읽었던 그리스 비극에 관한 니체의 글 덕분인지 '호메로스의 경쟁'을 낭독하면서 알 수 없는 황홀감을 느꼈다. 텍스트에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호메로스 이전의 거인족들로 대표되는 승리의 잔혹함, 파괴적 충동을 알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신기하게도 문자 이전의 구술적 인간의 특성이자, 인간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여겨지는 에도 거인족들(titan)은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니체가 아폴론과 함께 자주 거론하는 디오뉘소스도 없다. 그리스 신화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거인족들은 왜 에 등장하.. 2025. 11. 22.
지옥의 문을 열어버린 (무의식적) 욕망 간극으로서의 무의식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앞서 라캉은 욕망의 유한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라캉 정신분석의 실천을 보면 욕망은 유한한 것으로 경험된다고 이야기한다. 라캉이 스스로 이야기했듯이 이는 일반적인 예상과 다르다. 전통 심리학에서 보면 "욕망은 통제 불가능한 무한한 것"으로 다뤄지기 때문이다. 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욕망은 끝이 없고 충족되지 못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던가. 라캉이 말하는 욕망의 유한성이란 무엇인가. 일반상식과 다르다고 느꼈던 '욕망의 유한성'은 의외로 쉽게 이해된다. 프로이트-라캉 정신분석에서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구조 측면에서 보면 더 확실하다. 지금 나만의 욕망이라고 생각한 욕망은 사실은 아버지의-이름, 언어 구조의 효과로서 형성된 욕망이기 때문이다. .. 2025. 11. 18.
무(無), 없음은 어떻게 주체의 위치에 서게 되는가 "언어적 구조로서의 무의식"이라는 것도 헷갈리는데 이제 라캉은 "간극으로서 무의식"을 이야기한다. 공백, 간극, 균열로서의 무의식! 사실 감각적으로는 이런 정의가 와 닿는다. 말 그대로 의식이 아닌 무의식이지 않는가. 하지만 라캉은 여러번 반복해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결코 상상력이 빚어낸 낭만주의적 무의식"(43)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무의식에 대한 탐구를 왜 하고 있는걸까? 무의식, 무의식 하다보면 도대체 뭘 하려고 이렇게 무의식을 탐구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주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다. 나도 모르게 느끼는 어떤 간극을 줄이고 싶어서다. 주체(主體)가 어떤 것이기에? 말 뜻 그대로 보면 주인된 부분(몸)을 가리킨다. 뛰고 걷고 생각하고 탐구하고 춤추고 울고 웃는 것의 주인된 것. 왜 주.. 2025. 11. 13.
오드라데크Odradek -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것 오드라데크Odradek는 무엇인가? 사람인가 아니면 물건 혹은 그것? 자프란스키가 풀어주는 카프카의 이야기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라는 단편은 마치 라캉의 무의식, 특히 간극으로서 무의식을 소설로 풀어주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이름으로도 덮혀지지 않는 어떤 틈이자 자신에게도 낯설고 두려운 욕망의 이름! 2페이지밖에 안되는 단편소설 전체가 오드라데크가 어떤 것인지로 채워져있다. 누구라고 해야할지 무엇이라고 해야할지 헷갈리지만 카프카는 오드라데크를 '그'라고 부른다.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완성된 것'이고, 잡으려고 해도 '붙잡히지 않으며', 모든 곳에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말을 하기도 하지만 전혀 말을 하지 않기도 하며, 한동안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또한 그의 웃음소리는 인간의 폐를 가지고는 만들어낼.. 2025. 11. 13.
현대철학이 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푹 잤다. ^^;미미(고양이)가 침대 옆에 서서 계속 울어대는 통에 일어났다. 한 새벽에 왜 이렇게 울어대나라고 생각했는데,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나지 않아서 놀랐던것 같다. 늦었지만 아직 기다리는 분들이 있어서 6시 반쯤 낭독을 할 수 있었다. https://cafe.naver.com/afterworklab/1932 오늘은 '그리스 비극에 관한 두 개의 공개강연'을 낭독했는데, 오랜만에 낭독하면서 고양되는 기분을 느꼈다.오늘 읽은 텍스트는 말 그대로 니체의 '강연록'이기 때문에, 낭독을 하면서 니체의 강력한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비극에 관한 강연이라곤 하지만 사실 이는 니체의 예술론에 가깝다. 니체는 두 편의 강연을 통해서 고대 그리스 비극이 상연되는 공간.. 2025. 11. 10.
몸 어딘가에 구멍이 뚫렸다 별다른 아무일도 없었다.멀쩡히 세미나도 잘 했고 새벽낭독도 잘 마쳤다. 수요일 새벽 니체의 낭독도 잘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수원에 가서 아부지와 점심을 먹었다. 사소한 말다툼도 없이 집으로 왔다. 그런데 바로 이런 때, 뭔가 잘 마무리되었다고 생각되는 그런 순간에 이런 기분이 날 사로잡을 때가 있다. 마치 몸 어딘가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마치 이 구멍을 막으려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뭔가를 찾고 있다. 먹을 것을 찾아서 배를 채우면 해결이 될까. 달콤한 빵을 먹고, 비빔면을 먹고, 사과와 귤까지 찾어서 먹는다. 몸을 움직이면 괜찮을까. 힘껏 달리기를 하고 샤워를 한다.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지만 이 구멍은 의식되는 순간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그래도 숨이 턱까지 차도록 몸을 움직이다보.. 2025. 11. 6.
구조로서의 무의식에서 간극으로서의 무의식 https://cafe.naver.com/afterworklab/1923 라캉은 2강을 "여기 계신 대부분의 분들은 제가 제기했던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명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계실겁니다."(37쪽)라고 시작한다. 하지만 2강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우리의 무의식'은 자신이 1963년까지 이야기했던 무의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1964년에 시작된 에서 '언어구조로서의 무의식'이 아니라 '균열, 간극, 공백으로서의 무의식'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왜 라캉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명제에서 멈추지 않았을까. 아마도 '(언어) 구조의 효과'로 나타나는 무의식으로는 주체의 역동성을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라캉은 '언어 구조의 효과'로서 주체를 이야기하면서도 계속 주.. 2025. 11. 3.
시각 중심적 세계에서 음악 듣기 3) - 정서모방 감정역학 첫번째 글에서 제기했던 질문 ("시각 중심적 세계에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뭘까?"라는 질문과 함께, 2) "감정이란 어떤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 공감(共感)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에서 두 번째를 살펴보겠습니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신체의 변이'라고 정의합니다. 흔히 우리가 언급하는 기쁨이나 슬픔과는 조금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묘사하는 감정들은 주로 실재적인 감정이라기보다는 '신체의 변이'의 단면을 잘라서 보여주는 개념으로서 감정입니다. 다시 말해서 감정이란 동적(動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체 변이 자체'만으로는 그것이 '슬픔'에 속한 것인지, '기쁨'에 속한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참전군인으로 복무하던 아들이 돌아왔을 때도 커다란 신체적 변이 - 눈이 커지고, 심장이.. 2025. 10. 30.
시각 중심적 세계에서 음악 듣기 2) - 듣는 걸까 보는 걸까 앞의 글에서 '시각 중심적 세계'니, '세계와 문자 사이의 간극'이라고 말한 것은 아래와 같은 정신공간의 변화 -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변화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즉, '시각 중심적 세계'라는 것은 단순하게 문자, TV, 컴퓨터 같은 기술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인식 중심의, 의식과 이성 중심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강의나 세미나에서 자주 이야기했던 것이어서 혹시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정신분석과 예술을 참고해주세요.) 시각중심적 세계가 되었다는 것은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일종의 가면(페르소나)을 쓰고 사회적 생활을 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 자아가 발명된 데에 최초의 시각적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자였다.. 2025. 10. 30.
시각 중심적 세계에서 음악 듣기 1) - 듣는 걸까 보는 걸까 바로 얼마전 19회 쇼팽 콩쿨이 막을 내렸습니다.2015년 조성진과 함께 출전했던 에릭 루가 다시 나와서 우승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혁, 이효 형제가 함께 본선에 출전해서 이슈가 되었죠. 그런데 이번에 저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에릭 루도 이혁, 이효도 아닙니다. 물론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아서이기도 한데,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바로 YUMEKA NAKAGAWA의 연주였습니다. 일단 두번째 라운드의 연주인 프렐류드 op28의 15번을 들어보겠습니다. 26:01~31:44초이니 그리 길지 않습니다. 처음 연주를 들을 때는 영상을 보지 않고 그냥 소리만 들어보겠습니다. 6분도 되지 않으니 차분히 1~2번 들어보시면 좋겠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zXi1PZuy4JA&t.. 2025. 10. 30.
단지 신체 표면이 조금 달라졌을 뿐인데 오랜만에 다시 헤나 타투를 했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달리 레터링과 식물이 그려져 있는 타투다. 확실히 단순한 별 모양이나 태양을 선택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헤나 타투는 일주일에서 십일 정도 지속되는 타투다.) 라캉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다보면 반복해서 나오는 말이 있다. 우리 신체는 기표들로 덧쓰여져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라캉식으로 보면 우리 신체는 사실은 죽은 신체다. 즉 우리의 신체는 법(문자)이 쓰여지는 서판이다. 이렇게 덧쓰여진 기표들로 인해서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게 된다. (기표들이란 우리 이전에 형성된 법이고 질서) 우리는 신체에 덧쓰여진 기표대로, 사회규범과 질서에 맞추어 마치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움직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욕망이런 것이 있긴 있는건가. 사실 .. 2025.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