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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예술

정충일의 작업실 - 작가와 작품 그리고 ...

by 홍차영차 2026. 7. 17.

작가의 작업실에 가는 건 항상 설렌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비밀스러운 공간을 들여다보는 느낌때문일까. 특히 화가의 작업실은 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 1층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오른쪽 벽을 다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그림이 주는 시원스런 감각. 고이 쌓여 있는 수많은 작품들, 여기 저기 걸려 있는 작가의 오랜 시간을 짐작케 하는 다양한 작품들, 그리고 작업실 자체가 주는 아우라와 다양한 재료들이 방출하고 있는 독특한 향기까지. 이번에 방문하게 되는 화가 정충일의 작업실은 더 기대가 컸다. 4~50년 시간이 그 공간 속에 녹아 있을 것이기에.

 

지난 토요일(7/4) 오전 그린기린(@grin.girin) 대표인 데이지샘을 만나 작업실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일찍 만나서 차를 한 잔 마시고 11시 전쯤 도착했다. 신기했던 것은 정충일 선생님의 작업실이 내가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았다는 점. 차로 2~3분, 뛰어서 가도 15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자주 들러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

 

사실 이전에도 여러번 그의 작품들을 본 적이 있다. 데이지샘이 아주 좋아하는 작가여서 전시회에서 눈여겨보고 데이지샘과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전 전시에서는 그의 작품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작업실에서 보게 된 그의 작품은 전혀 다르게 보였다. 감각적이면서도 오랜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클래식한 면이 보였고 또 한편에서보면 구상적이면서도 또 다른 면에서는 추상으로 보였다.

이번에 작품이 더 깊게 보였던 것은 단지 장소때문만이 아니다. 작품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림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였다. 천지창조와 물, 들숨과 날숨에 대한 이야기. 내면과 몸에 대한 탐구에서부터 순환에 대한 이야기까지. 사실 이번에 나는 꼽사리였다. 데이지샘이 선생님 작업실을 방문하는데 함께 동반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기둥에 붙어 있던 작은 엽서 속에 있던 작품을 궁금해하자 선생님은 고이 쌓여있던 그 큰 작품을 손수 꺼내서 자세히 볼 수 있게 해주셨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세밀하게 나눴다. 작가의 태도와 이야기가 작품과 섞이기 시작했다.

 

 

 

우연하게 본 것은 작업실 기둥에 붙어 있는 작은 엽서였다. 아래 있는 빨간색 바탕의 구름 혹은 물결처럼 보이는 문양들이 그려져 있는 엽서. 위에 있는 작품을 보면 정육면체에 이 문양이 들어가 있다. 이것만 보면 그냥 이쁜 감각적인 그림이자 조각처럼 보였다. 그런데 평면에 펼쳐진 문양들을 보면서 '둘숨,날숨'에 대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더 잘 와닿았다.

'들숨, 날숨'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풀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사실 아래의 작품들이나 이 문양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감각적이다. 100호는 될 것 같은 큼지막한 크기가 주는 시원하고 정열적인 느낌. 빨강, 파랑 바탕에 물결인듯, 구름인듯, 숨결인듯 엉켜있는 모습. 엉켜져 있다고 말했지만 전혀 답답하지 않고 그 물결(?)을 찬찬히 따라가다보면 평온해지면서도 다시 열정을 갖게 만드는 느낌. 이 두 그림을 보고서 다시 정육면체의 작품을 보니, 그(윗쪽 사진에 있는) 작품들이 달라보였다. 구름/물결/숨결이 속과 바깥으로, 5면으로 펼쳐저 가는 모습이 좀 더 역동적이라고 할까. 정육면체에 들어 있는 문양들을 보면 마치 오래전 우리나라의 전통 문양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보면 알기 어려운데 가까이서 살펴보면 부드럽게 이어진것처럼 보이는 문양들은 사실 꽤 거칠게 표현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평온하게 이뤄진 개개인의 삶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숨(개성)은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처럼.

 

 

이번에 작업실에서 보았던 것중에서 또 인상적인 그림은 1980년대의 정충일이 그린 그림들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1980년대에는 몸과 자신의 내면풍경에 관심을 갖고 작업했다고 한다. (작가로서는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그래서 사진이 없지만 오로지 검은색만으로 칠해진 수많은 얼굴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다. 데이지샘 표현을 가져와보면 몸에서 나온 열기와 충동이 있는 그대로 스케치북에 쏟아진 느낌이랄까.

초창기 몸과 내면 세계에 두었던 관심이 점점 더 세계와 신(기독교), 우주적 상호성으로 확대된 것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현재(?) 관심을 갖고 작업하는 주제인 '들숨과 날숨', '순환(circulation)'에 도달했다는 점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특히 초기 '몸'에 대한 관심이 '숨(호흡)'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머릿 속에서는 상상적 이야기가 꿈틀거렸다. 몇편의 그림과 직접해준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시켜보고 싶은 생각! 몸 - 신 - 세계(땅의 물과 하늘의 물) - 숨. 하나의 생명이란 신(우주)의 날숨에서 시작하며 마지막 들숨을 쉬면서 마무리된다는 것.

 

 

그림들에 이야기를 마치고, 직접 가꾸신 정원을 둘러봤다. 토끼꼬리풀, 여우꼬리풀부터 다양다종의 식물들이 마치 그의 그림처럼 잘 가꿔져 있었다. 아주 세밀하게 인공적으로 가꾸었지만 그 자체가 자연의 일부로 땅에 뿌리내린 느낌이랄까. 작업실과 집을 둘러싼 정원을 걷고 있으니 딱 그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정충일의 정원이 바로 그의 작품이구나라는 생각!

 

작가 없는 작품, 작품과 별개의 작가가 가능할까.

작품과 작가는 별개라고 하지만 정충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품이 다르게 보였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작은 것들을 다루는 그의 태도와 모습,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보는 이의 감각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들숨,날숨'이라는 이야기와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개념들이 묶이면서 감각은 예전과 다른 감각으로 변했다.

 


 

재미난 것은 집에 돌아오고 나서 머릿속에 계속 남은 것은 그의 최근 작품들이 아니었다. 스케치북 한장 한장씩 모아놓은 그의 1980년대 작품들이 계속 떠오른다. 사진을 찍지 못해서 그런건가? 현재의 작품들이 그 강렬한 에너지로부터 유래했다고 생각해서일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찬찬히 그의 1980년대 그림들을 들여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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