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뮤지엄 산(SAN)에 다녀왔다.
분명 10여년 전 들렸던 기억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모든게 처음인듯한 느낌!
연락준 분은 전시기획하는 분이었고, 화가 정충일 선생님이 함께 가게 되어서 '산'의 전체적인 모습과 특히 이배 작가의 작품들을 특히 유심히 살펴봤다. 사실 난 이배가 누군지 몰랐다. 가기 전날에 구글링해본게 전부였다. -/-;

사진으로만 봐도 느껴지던 이배 작품보다 더 압도적으로 다가온 것은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들과 조형작품 그리고 자연풍광이었다. 표를 끊고 들어가서 기념품 샾을 지나 돌담을 돌아서자마자 보이는 새빨간색의 거대한 조형물과 드넓게 펼쳐진 초록의 잔디와 그 뒤편에 서 있는 산들.
숨을 몰아서 쉴수밖에 없었다. 한 편으로는 바람에 돌아가는 저 거대한 빨간조형물에 압도되어서 그렇고, 다른 한편으론 긴장으로 점철되었던 나의 (정신)세계가 터지면서 이제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맞다. 뭔가 몸과 세계를 막고 있던 막들에 구멍이 난 것 같았다. 들여마시는 공기가 다 몸을 관통하는 것 같은 시원함.
그렇게 놀란 마음으로 가다보니 그 유명한 물이 배치되어 있는 전시공간이 보였고, 또 하나의 벽을 돌아서자 물과 물 사이로 또 하나의 빨간 조형물이 보였다. 검은 조약돌이 바닥에 얇게 배치되어 있는 잔잔한 물과 돌로 마감된 건물 그리고 뻐-얼건 괴물같은 조형물. 이 느낌이 뭘까.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 인공적인 것들이다. 전체 산을 깍아서 건축가의 계획에 맞추서 아주 인공적으로 길을 내고 돌을 깔고 물이 흘러가도록 배치했다. 거기에 인공중에 인공으로 보이는, 거대한 빨간색 조형물. 그런데 보면볼수록 절묘하게 어울렸다. 자연과 인공, 차이가 뭔가.
사실 난 "사람은 자연에 개입해선 안돼."라는 말이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사람은 자연에 속하지 않는듯한 오만한 태도다. 자연다큐를 찍으면서 죽어가는 동물, 다쳐서 절뚝대는 동물들에 개입해선 안된다? 웃기는 소리 아닌가.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다. 그 속에서 뭘 하든 그것도 자연의 일부로서, 섭리로서 작동하는 것일뿐이다. 다친 동물을 돕는 것도, 길이 막힌 펭귄에게 길을 내는 것도, 또는 죽어가는 동식물을 무시하고 사진과 영상만 찍는 것도 모두 그저 자연 아닌가라는 생각.
이렇게 생각하면서 본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과 조형 그리고 초록의 잔디, 산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특히 가서 보면 (아래 사진에도 나오지만) 잔디의 경계, 혹은 물의 경계가 마치 경계 바깥이 절벽인듯하게 배치했다. 경계가 이렇게 되어 있어서 이 공간 자체가 더 환상적으로 경험되었다고 할까. 이곳에 가게 되면 천천히 거닐면서 그 공간의 경계들도 잘 경험해보면 좋을듯.






듣던대로 이배의 작품은 한 마디로 숯이다.
2026년 이번 전시를 위해서 새로 그린 작품인것 같은데 거대한 브러쉬를 통해서 종이(한지인듯)에 숯의 질감과 농담이 잘 담겨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필치가 시원시원하다. 한편으로는 추상같고 다시 보면 서예처럼 보인다. 보고 있으면 "와 나도 이런 장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
백미중 하나는 숯을 깍아서 배치한 아래의 긴 작품이다. 각각의 조각이 가진 결에 따라서 보이는 모습이 천태만상이다. 빛이 어떻게 들어오냐에 따라서 아주 현대적인 재료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다가가서 보면 원시 고대의 천연재료처럼 보인다. 그림작품들이 너무 작은 공간에 양면으로 들어서 있어서 조금 아쉬웠다. ^^










제임스 터렐의 빛의 공간, 명상까지 하고 나서 그라운드(Ground)는 그냥 지나칠뻔했다. 4시간이나 전시를 봤기에 지치기도 했고 명상관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다행히 함께 갔던 비우리샘의 에너지 덕에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를 마주칠 수 있었다. 와우
이배의 작품들도 놀라웠지만 이번 전시에서 예상외의 발견은 바로 바로 이 안토니 곰리였다. 아무 기대가 없어서 더 그랬을까.
그라운드관은 바로 작년에 새롭게 개관했는데 안도 타다오와 곰리가 서로 협업하면서 공간과 작품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곰리의 작품은 빛과 소리가 울리는 공간과 잘 어울렸다. 아니 사실 여기서는 안토니 곰리의 작품이 더 와닿았다. 190센티의 자신을 닯은 모습으로 차가운 철, 속이 꽉차서 하나에 500킬로가 되는 무거운 재질로 만들어진 인간. 하나하나 살펴보면 전체는 단순한 육면체의 철들을 배치내놓았을 뿐이다. 맞아. 그렇지. 500킬로나 되는 무게 - 인간은 이렇게 무겁지.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무게를 끄-을-고 다니고 있지 않은가. 또 산화하는 철의 외면을 보면 거칠고 무섭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이 산화된 철은 그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가면에 불과할 뿐이다. 외부가 산화되지 않으면 내부까지 모두가 썩어버릴테니까.
정말 인위적이고 현대적인 재료들인데 보고 또 보게 된다. 소박하게 보이기도 하고 차갑게 보이기도 하고. 누워있는 나, 구부정하게 배가 아픈 나, 움크려있는 나, 그리고 멀리 멀리 저 바깥을 바라보는 나.
곰리의 작품 역시 자연스러운 것과 인공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다.







아직 5월이 되지 않은 바로 이 시절이었기에 이렇게 느꼈던 것 같다. 다른 계절이라면 또 다르게 느꼈을듯. 5월이 지나기 전에 다시 한번 가서 서성거려보고 싶다.
'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미음완보微吟緩步,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다 (0) | 2025.03.27 |
|---|---|
| 여주 파사성(城) 산책 (0) | 2023.12.18 |
| 양강섬예술축제에 다녀왔습니다 (feat. 이희문-오방神과) (1) | 2023.10.21 |
| 두물머리 구(舊) 철교길을 걸어봤어요 (0) | 2023.09.06 |
| 살짝 드라이브 가서 하루종일 발담그기 좋은 곳 - 평창 흥정계곡 (0) | 2021.09.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