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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조건으로서거짓

노이즈 캔슬링, 세계까지 캔슬링?

by 홍차영차 2026. 7. 27.

 

https://cafe.naver.com/afterworklab/2240

 

처음 블루투스 이어폰을 만났을때, 그건 진짜 완전 신세계였다. 이렇게 편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니. 블루투스 이어폰은 단순한 편리성을 넘어선다.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순간 공간이 달라진다. 특히 시끄럽고 산만한 지하철, 익명을 대중을 만나게 되는 지하철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는 순간 나만의 공간이 형성된다. 특히 평소 내가 좋아하던 음악을 듣는 순간 나만의 공간(감각) 속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블루투스 이어폰의 환상은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통해서 완벽해진다. 외부 소리의 완벽 차단! 그 공간이 아무리 시끄럽고 산만하고 복잡해도 노이즈 캔슬링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는 순간 그 공간은 나만의 세계로 변신한다. 그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것 뿐인데 어떻게 이런 느낌을 갖게 될까. 왜냐하면 소리는 단순히 청각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감각은 상호적인 영향을 주면서 감각을 만들어낸다. 소리는 시각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후각 미각 촉각까지 다른 감각에 영향을 미친다. 그 중에서도 즉각적이고 강렬하게 영향을 주는 것이 청각과 후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음악을, 외부의 소리가 차단된 음악을 듣게 되면 나의 다른 감각들도 바뀐다. 또 결과적으로 변화된 감각은 전혀 다른 인식을 만들어낸다. 일례로 스타벅스 커피숍은 자신들만의 향기와 음악을 통해서 그 공간을 전혀 다른 공간으로 감각하고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스타벅스뿐만이 아니라 백화점, 패스트푸드점, 서점이나 갤러리같은 공간들은 각각의 업의 특징을 강화하고, 자신들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소리와 향기에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최근 몇년 동안 달리기를 할 때는 거의 무조건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했다. 다른 것에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달리기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필수적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달릴 때 뿐만이 아니라 길거리를 걸을 때, 혼자 산책을 하고 식사를 할 때도 노이즈 캔슬링으로 음악을 들었다. 분명 노이즈 캔슬링으로 음악을 들으면 보호받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익숙한 노래,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내가 있는 공간이 아주 익숙하고 편안해진다. 바깥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나던 소리지르며 싸우는 사람이 있든 상관하지 않게 되고, 사람들의 시선이나 행동에도 무심해진다.

 

 

하지만 노이즈 캔슬링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반대로 나를 외부의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는 것과 같다. 계속해서 이렇게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노이즈 캔슬링으로 음악을 듣게 되면 세계와 완벽하게 단절된 나만의 세계 속에서 고립된, 소외된 느낌을 강화시킨다.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느껴던 기분은 놀랍게도 불안한 마음을 증폭시켰던 것 같다. 사실 예전에 블루투스 이어폰이 없었을 때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이렇게까지 좋지 않았을 때는, 이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선이 있는 이어폰을 쓰고 있으면 물리적으로 신경써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폰이나 갤럭시 광고에서 이어폰을 사용하는 순간 혼자만의 세계 속에서 춤을 추는 듯이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광고에서 봤던 것 그대로 세계 속에 있던 나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사용하는 순간 세계로부터 단절된 개인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하다가 누군가가 내 몸을 살짝 건드리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당연히 무선 이어폰을 사용하고 있어서 나를 부르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 나와 소통하려면 건드리거나 큰 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혼자 노이즈 캔슬링 무선 이어폰을 듣는다는 것은 바깥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존재란 끊임없이 세계와 주고 받으며 나를 생산하고 세계를 생산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강렬한 (음악)소리가 내 안에서만 폐쇄적으로 작동하게 되면, 다른 모든 소리들 - 타자와 세계와의 교류가 끊어지게 된다. 자폐적인 감각, 자폐적인 의식을 갖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강한 소리는 청각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물을 감각하고 인식할 때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외부의 모든 자극들뿐만 아니라 내부의 자극이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면서 감각하고 인식한다. 소리는 우리의 시각에도 영향을 줄 뿐 아니라 향기에도 영향을 준다. 만약 물 속에서 우리 피부가 공기가 아닌 물의 촉감 속에 있으면 소리는 물론이고 맛도 달라진다. 우리가 현재 감각하고 인식하는 것은 당연히 현재 일반적인 인간들이 처한 환경과의 교류 속에서 형성된 보편적 감각이자 인식이다. 사실 현재 우리의 감각은 우리 신체 구조의 결과이고 인식 역시 이러한 감각의 결과다. 그런데 내가 계속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다양한 자극들, 소리와 냄새, 촉감, 맛, 풍경을 막아버린다면 어떻게 될지는 뻔한것 아닌가.

 

감각은 단순히 감각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감각은 우리의 인식과 연결되어 있고 당연히 이러한 인식은 행동과 삶의 양식 전체에 영향을 준다. 사실 나의 생각을 바꿔서 행동과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현재의 감각과 다른 감각을 요구한다. 감각의 부활 혹은 감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냥 인식만 바꾼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것이야말로 체화되지 않은 지식일 뿐이다.

 

몇달 전부터 달릴때 음악을 한쪽귀로만 듣는다. 어떤 때는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고 달린다. 주변의 풍경과 소리들, 사람들의 말소리, 새소리, 물소리와 바람의 내음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달린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감각을 열어놓으려는 노력을 하다보니 마음이 더 편안하다. 이건 온실 속에서 보호받는 안정함이 아니라 노지에서 자란 상추와 풀처럼 건강하고 강인해지는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노이즈 캔슬링 하다가 세계까지 캔슬링 하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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