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 항쟁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정치 구조를 살펴보면 모호한 점이 상당히 많았다. 한 마디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직선제 이후 첫번째 대통령이 어떻게 노태우가 될 수 있었는지 의아했고, 거인처럼 보이는 김대중 이후에 어떻게 정치계의 변방에 서 있던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던 것은 진짜 기적이었다. 더 놀라운 건 기업인 이명박이 단숨에 대통령에 올라섰다는 점이고, 가장 크게 놀랐던 것은 그렇게 믿었던 문재인 정부, 국민의 강력한 지지와 의석수를 가졌던 정부의 행보를 어떻게 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진보가 선이고 보수는 악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사실 87년 이후 대통령 직선제로 바뀌면서 절대적 악과 절대적 선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깨졌다. 87년 6월 항쟁으로 표출된 구세계의 패러다임은 이후부터 선과 악이 사라진 세계,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무의미한 시대로 변하기 시작했다. 87 이후에도 진보와 보수 사이에 끊임없는 정치투쟁이 있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런 투쟁은 실질적인 변화를 가리를 일시적인 가면이자 속임수에 불과했다. 정치인이 대중은 속인 것이 아니다. 국민들 역시 기존의 구도가 이해하기 쉽고, 응원하기 편하고, 욕하기 쉬웠기 때문에 모르는 척 속아왔다.
진보와 보수는 없다 혹은 선과 악의 이분법은 무의미하다라는 사실을 제대로 직면하게 해준 것이 바로 문재인 정부였다. 썩은 보수라고 생각한 이명박, 박근혜 이후에 정말 선하고 깨끗하고 강직하며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리라 생각하면서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 놀랍게도 과반이 넘는 국회의원 의석수를 가지고 있었지만 제대로된 개혁이나 변화에 아주 소극적이었다. 아니 결과론적으로 보면 국민들의 삶은 더 쪼그라들었고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강팍해졌다.
이데올로기의 정치에서 욕망의 정치로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87년 항쟁은 이데올로기 정치의 정점이었다. 반대로 보면 87년 이후 이데올로기적 색채는 점점 사라지고 각각의 개인들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시대로 변해왔다. 직선제 이후에 노태우를 찍은 것, 그저 돈밖에 모르는 기업인임을 누구나 알고 있었음에도 이명박을 선출한 것이 바로 이런 변화를 드러내는 증거다. 현실적으로 이제 그 누구도 진보나 보수의 가치에 관심이 없다. 아직 보수와 진보를 말하는 자가 있다면 사실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일뿐이다. 각자는 각자의 욕망에 충실하고 싶을 뿐이다.
이런 변화를 제대로 보여주었던 시기가 바로 2002년이다. 2002년 처음으로 촛불집회가 일어났고, 또 월드컵으로 뜨거운 개개인들의 욕망들이 표출되었다. 중심은 없지만 천 개의 욕망이 드러났고, 이러한 개개인이 드러낸 독특성들이 뭉쳐서 창조적인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거의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꿈 속의 유토피아같은 순간들을 경험했다. 바로 얼마전 탄핵집회에서도 누군가(엘리트?) 혹은 어떤 집단이 고정된 중심을 가지려고 하면 너나할 것 없이 반항했다. 욕망의 정치학이 넓게 퍼져 있다는 증거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2002년은 유럽의 68혁명과 비슷한 욕망의 표출이 드러난 시기라고 본다.
진짜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개개인들의 욕망과 정신구조가 빨리 변화하는 것과 상관없이 정치는 오랫동안 구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치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가면을 뒤집어 쓰고 행동하고 있다. 이런 눈가림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윤석열 정부였다.
이상하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사실 윤석열은 보수와 진보의 붕괴를 아주 제대로 보여준 첫번째 대통령이고, 어찌보면 윤석열은 이재명 대통령처럼 자신의 욕망대로 정치를 했던 사람이다. 어떻게 계엄을 일으킨 윤석열과 이재명 대통령을 비교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욕망의 정치학으로 보면 윤석열은 처음부터 감옥에 갇힌 현재까지 (물론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충동대로 살아온 사람이다. 처음부터 윤석열에게 진보와 보수는 의미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이 된 그가 순식간에 국민의힘 후보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에게 보수/진보라는 말은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어제 진보의 옷을 입었다가 다음날 보수의 옷을 입는게 그에게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술 한잔 하는 것이 최고였던 그는 자신의 충동에 충실한 단순한 인물이다. 김건희 역시 이런 욕망의 화신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데올리기냐 욕망이냐의 측면에서 보면 이재명 대통령 역시 욕망의 정치학을 구현하고 있다. 윤석열이 자기 마음대로 놀고 마시는 일차적 욕망의 정치학을 구현했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어릴적 경험을 거울 삼아서 (즉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들여다 보면서) 가난한 사람을 살리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기를 욕망하고 있다. 그에게도 권력은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좋은 집에 살고, 편하게 잠을 자고 사이 좋게 지내기를 실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역시 진보와 보수는 별 의미가 없다. 밥을 먹여주고, 함께 잘 살 수 있다면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실력있는 사람을 등용하고, 어느쪽에서 나온 정책이든 더 좋은 정책이라면 채택해서 실현하면 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많이 느끼긴 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진보와 보수라는 선명한 이분법을 선호한다. 나 역시 문재인 정부가 시행한 많은 실책들을 목도하면서도 내가 모르는 좋은 뜻이 있을거라고 나 스스로를 설득했다. 자신은 좋은 사람이고, 상대방은 나쁜 사람이라는 이분법만큼 강력한 기제는 없기 때문이다. 피를 보는 아픔과 고통이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 전두환 시대가 편했다.(?) 확신한 악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는 무엇이 선인지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이 시대적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386 운동권이다.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바쳤고, 자신들이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서 시민들을 이끌어간다는 도그마를 가지고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온 전형! (당연히 386 세대가 이끌고 성취한 민주화 운동의 성과에 대해서는 더 없이 큰 고마움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386세대가 486, 586, 686,이 되면서 전혀 변화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면 이들 386에게 가장 쉽고 편한 길은 무엇일까? 선명한 적, 분명한 이분법적 구조다. 선을 긋고 투쟁하면서 어떻게 승리를 쟁취하는지 이들만큼 능숙한 세대가 없다. 명확한 중심(엘리트) 자리를 차지하고 규칙을 선포하고 대중을 선동해서 움직이는 것에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는 세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재명 정부 성립 이후의 유시민의 행보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386 세대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적이다. 그것도 아주 명백한 적, 이분법적으로 구별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다.
현재의 상황을 386의 이분법적 언어로 다시 표현해보자. 지금 정치적 상황은 기득권과의 투쟁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소위 진보 진영이라 불리는 쪽의 386, 그리고 이 사람들과 연계된 수많은 세력이, 그들은 부정하겠지만, 기득권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유시민은 이 기득권 세력에서 30년 이상을 유유자적 살아왔다. 그래서 유시민은 지금 진보진영의 인사들을 등용하지 않는것을 지적한다. 능력이 없어도 우리편을 써야한다고 주장한다. 호남지역의 역대급 발전계획에 대해서도 탐탁치 않아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계속된 반목, 호남과 영남이라는 이분법이 계속해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비난하는듯 하지만 바로 이것이, 87년 이후 보수/진보 정치인들이 사실상의 기득권들로서 사실상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면서 40년 이상 함께 지낼 수 있었던 비밀이다.

사실 이 모든 게 유시민 덕분이다.
유시민 이전에 많은 정치가나 평론가들은 중립적인 척하는 언어를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이후에 유시민을 비롯해서 아주 선명한 언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재명 정부가 이분법적인 정치구조를 아예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의 가면을 쓴 쪽이나 진보의 가면을 쓴 쪽 모두가 공포에 떨고 있다.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은 가면을 쓰지 않은 것보다 진보, 혹은 보수라는 가면이 마음적으로 편하다고 느꼈는데, 이재명 정부는 더 이상 그런 가면을 쓰지 말고 보수/진보와 상관없이 다 함께 잘 사는 국가를 만들려고 진짜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진실과 의도라는 말이 불편하다면 그저 실용의 가면이라고 이해해도 좋다. 그런데 이분법적 구조나 무너진 세계? 386세대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는데,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 자체가 사라진다니 얼마나 두렵겠는가.
유시민이 ABC이론이니 용역평론가/촉법평론가라는 천박한 말을 입에 올리게 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젊은 때부터 지식소매상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지식인 역할을 해왔는데, 요즘 너무나 급작스럽게 천박해졌다. 유시민 스스로도 시대와 함께 자기 욕망을 표출하고 싶은 충동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자기 내적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은데(기득권적 위치를 유지하고 싶은데) 여전에 또 한 구석에서는 선과 악이라는 진보와 보수라는 가면을 써야 한다는 압박이 충돌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불과 몇 년 전이라면 결코 내뱉지 않았을 그런 간교하고 천박하며 구역질 나는 언어가 튀어나왔던 것 같다.
유시민을 비롯한 386 세대를 욕하자는 건 아니다. 그 중에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고 몸소 체득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변화된 세계 속에서 너무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안쓰러울 뿐이다. 이제 누구도 그 가면에 속지 않는다. 모르는 척 할 뿐이다. 그렇다고 자기 안의 모든 충동을 마음대로 분출하자는 것도 아니다. 이데올로기의 시대에서 욕망의 정치로 변한지가 벌써 30년이 넘었고,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욕망을 인정하지 않으면 제대로된 정치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자는 것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한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문재인 대통령을 뽑고, 마지막 임기를 마칠때까지도 모호했던 마음이 이젠 좀 이해된다. 이게 다 유시민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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