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7/9) 서종면 서후리에 위치한 정일영 화가의 작업실을 방문.
나 이외에도 그린기린@grin.girin대표님을 비롯하여 네 사람이 함께 방문했다. 나는 작업실에 도착하자 입구에 놓여 있는 작은 그림부터 찬찬히 둘러봤다. 다행이 다른 분들이 정일영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여유를 갖고 그림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정일영샘은 바로 얼마 전 '붉은 나무'라는 테마로 전시회를 했는데, 최근에는 양평의 이곳 저곳 - 사나사 계곡, 양수리 수풀로, 갈산공원, 서후리 - 의 산들을 그리고 있다. 테마가 붉은 나무인것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산이나 계곡의 나무줄기들이 '붉은색' 바탕으로 표현되어 있다.




확실히 그림은 언제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이전에 다른 전시에서 작가님의 그림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저 스쳐가며 봤을 뿐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작업실 벽 전면에 걸쳐서 붉은 줄기를 가진 나무그림들이 벽을 채우고 있어서인지 숲 속 나무처럼 그림이 주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좀 더 생동감을 준다고 해야할까. 찬찬히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숲과 나무를 그린 구상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다가서서 보면 추상처럼 보인다.
사실 처음 작업실을 둘러보면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그림은 최근 작품들이 아니었다. 2006~10년 사이에 그려진 작품이었다. 최근의 붉은 나무와는 다른 표현이었고, 좀 더 직관적이면서 강렬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었다. 바로 아래 그림이 작업실에 본 작품이다.

전체를 둘러보고 나서는 직접 타주신 커피와 간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피노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정일영 작가 스스로 스피노자에 영감을 받아서 전시회 글 한대목을 직접 쓰셨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곧바로 정일영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소박하고 담백한 가식이 없는 문장들. 나 역시 스피노자를 좋아하는지라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스피노자의 일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을 찍어오지 못했는데 젊었을 때인 초기 작품에는 얼굴모습이나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이후 '생각하는 숲'(2009)이라는 전시회 그림에서는 산들 속에 사람의 모습이나 얼굴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의 그림에는 얼굴이나 사람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스피노자의 일의성과 연결시켜보면, '신, 즉 자연'은 모두 같은 속성을 나눠같고 있다. 신은 무한한 속성을 갖고 있고, 나무, 사람, 돌, 바람, 물과 같은 양태는 신의 속성 중에서 연장속성과 사유속성을 분유하고 있는 것. 그렇다면 내(인간) 안에 신이 있고, 나무 속에서 신(의 속성)이 있다. 스피노자적 관점에서 신과 나무, 사람, 돌, 바람, 물은 나누려고 해도 나뉠 수 없다. 신, 즉 자연 - 내 속에 신의 속성을 갖고 있기에 나무, 사람, 돌과 바람, 물에 대한 탐구는 곧바로 신에 대한 이해에 도달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작가의 그림에서 자신의 얼굴 모습이나 사람의 모습이 사라진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굳이 내 얼굴이나 형태를 넣지 않아도 숲에서, 나무에서, 풀에서 나를, 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일의성을 나눈 후에 이전 전시회의 도록을 봤는데 바로 위에 있는 그림이 눈에 확 들어왔다. 사실 이 그림은 아주 단순하다. 거실같은 공간에 놓여져 있는 화분! 그런데 일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님과 나누고 나서인지, 이 모습은 마치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세계가 매트릭스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 세계의 사물들이 '숫자(기호?)'처럼 보였다. 네오는 이후 세계의 법칙을 무화하는 듯 날아오는 총알을 멈추게 하기도 하며, 다른 사물을 내 안에 흡수하고, 또 전혀 다른 모습을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우리 눈에 화분, 벽, 바닥은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 모두가 똑같은 연장속성과 사유속성을 분유하면서 서로다른 연장(부피)와 사유를 갖고 있을 뿐이다. 의식의 정도가 다르고, 보이는 모습은 다르지만 잘 관찰하면 그것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을 알 수 있다. 사실 신, 즉 자연은 모두 하나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위에 있는 그림을 보니 '벽이나 바닥의 노랗고 파란 짧은 선들'이 마치 각각의 사물들이 하나의 속성을 분유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뿐만 아니다. 처음 보았던 그림을 보면 나무(?)처럼 보이는 형상은 마치 불을 내뿜는것처럼 보인다. 즉, 각각의 사물들이 드러내는 고유성, 그리고 이 고유성은 사실상 세계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돌과 나무, 인간과 바람이 상호적으로 통하며, 각각의 수많은 양태들은 자신의 고유성을 뽑내면서 자신만의 아우라를 빛내면서 불타오르고 있다는 사실!
사실 이 날 자유롭게 그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요인은 오디오시스템 덕분이었다. 잘 갖춰진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김민기의 노래, 노찾사의 노래를 들으니 그림과 시와 철학 이야기가 절로 나왔다. 감사하게도 직접 몇개의 음반을 틀어주면서 그림에 이야기를 세밀하게 나눠주셨다.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작업실 자체가 하나의 오브제같았다. 특히 작업실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 LP플레이어와 스피커. 아쉽게도 외부에서 작업실 전체의 모습을 찍지 못했다. 눈으로만 만끽! 빛이 들어오는 동굴 같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전시장 같기도 했다. 그림 이야기와 함께 시,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 좋은 공간에서 그림/시/음악/춤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장소가 주는 힘이라고 할까.





어떤 그림은 볼때마다 전혀 다른 정동을 일으킨다. 한 번만으로는 아쉽다. 다음에 다시 한 번, 몇번 더 가서 찬찬히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들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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