ひゃくえむ(햐꾸에무)
100미터 경주를 가리키는 말.
결론부터 말하면 불안은 대처할 대상이 아니다.
인생은 패배할 가능성으로 가득차 있다. 그곳에 삶의 묘미가 있다.
공포는 불쾌한 게 아니다. 안전은 유쾌한 게 아니다.
불안은 너 자신이 널 시험할 때의 감정이다.
영광 앞에서 대가를 치러야 할 때
보잘 것 없는 세포 집합체인 인생 따위를 내던지면 된다.
우연히 보게 된 '불안'에 대한 이야기에 꽂혀서 1시간 40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끝까지 봤다. 얼마만일까. 거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집중해서 봤다.
사실 요즘엔 드라마나 영화를 거의 안본다. 아니 볼수가 없다. 신체가 견디지 못한다. 예전에는 드라마 속의 인물과 실제 배우가 교차되어도 몰입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연기가 다 가짜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에서 연기하는 이병헌이 유튜브에서 나와 농담을 하고 일상을 다 보여준다. 아우라가 사라진 배우. 아무리 연기를 잘 해도, 예술적인 연기, 예술적인 대사가 나와도 모든 것이 가짜로 느껴진다.
또 하나 AI나 특수효과가 정교해질수록 더 그렇게 느낀다. 더 사실적으로, 현실과 구분되지 안는 기술일수록 역설적으로 더 쉽게 가능하다는 생각때문인지 감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조금 어설프지만 나도 몇가지 기술을 사용하면 비슷한 영상들을 만들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배우들과 기술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놀랍게도 애니메이션을 볼 때는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사실 종이로 된 만화책을 읽을 때 더 그렇다.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은 그 자체로 가짜라는 걸 안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2차원적이고 투박/소박한 그림체는 그 자체로 그림(허상?)이라는 것을 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그게 진짜라고 말하지 않는다. 진짜 사람인척 하지 않는다. 도리어 현실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감정과 상황을 만화적으로 마법적으로 보여주고, 현실에서는 절대 드러날 수 없는 내면의 표정과 실재(The Real)을 보여주면서 감춰진 실재와 대면하는 계기를 주는 듯하다.
어쩌면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일수도 있다.
어릴적부터 스포츠 성장 만화를 좋아했고, 어찌보면 보잘 것 없는 작은 일에 모든 것을 거는 일본 특유의 순정과 열정을 좋아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말 오랜만에 본 덕분에 10대 부터 봐왔던 기억들이 다 솟아올랐다.
사실 내용도 거의 예측 가능한 수준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던 100미터 선수와 끊임없는 노력과 무서울정도의 열정을 쏟아붙는 친구들 사이의 우정과 경쟁, 그리고 1아주 짧은 순간 삶을 응축시켜서 보여주는 100M 경주의 이야기. 하지만 내용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걸 보여주는 형식, 스타일이 탁월하다면.

"불안은 대처할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에 놀랐다. 이어서 "불안은 너 자신이 널 시험할 때의 감정이다"라는 말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단지 말만이 아니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고미야의 표정. 이제 이 얼굴은 마치 일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의 대표적 상징처럼 보였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하고, 우울한 듯이 보이는 표정이지만 삶의 한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
고미야는 비가 오는 속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던 도가시를 이겼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ひゃくえむ는 이제 누구를 이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계속된 실험이기 때문이다.
불안에 대한 이 말들에서 니체가 떠올랐다. 니체 역시 "삶은 인식의 수단"(<즐거운 학문> 324번)이라고 했고,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270번)이라고 반복해서 말하면서 결정된 것은 없고,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서 나를, 삶을 완성해가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더이상 고통이나 두려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안은 '나 자신이 나를 시험할 때 일어나는 신체의 변이'이기 때문이다. 그 불안을 껴안고 사는 것, 그것이 바로 매번 다시 시작되는 명랑한 삶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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