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를 하기 전에 '쾌락원칙을 넘어서' 논문에서 가장 인상적인게 'Fort-da' 놀이에 대한 해석이었다면, 세미나를 하면서 이미 알던 개념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 바로 무의식의 무시간성! 사실 무의식의 무시간성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개념을 몸으로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 세미나를 하면서 레피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의식의 '무시간성'과 '무공간성'이 어떤 것인지 새롭게 깨달았다.
정신분석학적 발견의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사고의 필수 불가결한 형식들'이라는 칸트의 법칙을 논하기 시작할 입장에 있다. 우리는 무의식적 정신과정이 그 자체로 '무시간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말은 우선 그 정신 과정이 시간적으로 질서화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고, 시간이 어떤 방식으로도 그 과정을 변화시키지 않으며, 시간의 개념이 그것에 적용될 수 없다는 뜻이다. ...... 반면에 시간에 관한 우리의 추상적 개념은 모두 조직 '지각-의식'의 작업 방법에서 나오고, 또한 그 작업 방법의 지각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 '쾌락원칙을 넘어서' 300쪽)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무시간성에 대해서 말한 것은 이 논문을 쓰기 20년 전이었다. <꿈의 해석>에 이미 무의식은 기존의 시간성과 다른 성격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무시간성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언급한다. 더 들어가기 전에 프로이트가 어떤 맥락에서 무의식의 무시간성을 가져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프로이트는 '쾌락원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험들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논문을 전개한다. 그러면서 그는 정상적인 아이들의 놀이(Fort-da)와 전쟁 신경증자들의 반복적인 꿈을 가져온다. Fort-da 놀이와 전쟁 신경증자들의 꿈은 고통을 반복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꿈이 소원성취라면 왜 이렇게 전쟁에서 겪은 고통스러운 일들을 꿈에서 반복하는 것일까. Fort-da 놀이 역시 마찬가지다. 괴롭고 공포스러운 어머니의 사라짐을 아이는 왜 이렇게 반복해서 겪기를 원하나. 쾌락원칙(과 현실원칙)만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이 바로 '반복'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강제적으로 보이는 '반복'을 이야기하면서 무의식의 무시간성을 언급한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말을 그대로 다시 한번 살펴보자. "시간에 관한 우리의 추상적 개념은 모두 조직 '지각-의식'의 작업 방법"에서 나온다. 프로이트가 칸트의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 이야기를 논하기 시작할 때라고 말하는 이유다. 사실 절대적인 시간, 절대적인 공간이라는 것은 근대적 정신공간의 가장 중요한 틀이다. 우리의 의식은 항상 좌표계 위에 위치하는 데카르트의 공간(cartesian coordinates)와 직선적 흐름을 갖고 있는 시간 속에서 질서화된 것이다. 원래 공간이 x, y의 공간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정신공간, 이성-의식이라는 특수한 형식 속에서만 우리가 생각하는 공간성을 갖는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이란 원래부터 1초, 2초, 3초 이렇게 직선적 흐름의 질서화 속에 있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지각-의식의 작업 방법"으로 특수하게 형식화된 것이다. 세계의 모든 것을 과학적인 원인-결과로 이해하려는 의지 역시 이러한 이성-의식의 특수하게 형식화된 시공간의 결과일 뿐이다.
이게 뭔소린가?
자, 어릴적 외상(trauma)를 겪은 사람의 정신공간을 상사해보자. 왜 이 사람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도 비슷한 원인으로 관계를 망치는가? 왜 이 사람은 비슷한 그림을 수도없이 그리는가. 왜 세월호에서 아이를 잃은 사람, 혹은 그 시기에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가졌던 사람은 여전히 십여년이 지났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고통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을까. 이성적이고 의식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똑똑한 많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 왜? 이건 시간이 흐른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서 무의식의 무시간성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무한히 펼쳐진 끝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수백미터를 뛰어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만 바뀐 것은 없다. 그곳에서는 여전히 생생하게 그 '사건'이 펼쳐져 있다. 수십년이 지나도 우연한 계기로 그 사건을 마주칠 때 역시 마찬가지다. 그 사건 속의 시간과 공간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을 뿐이다. 수십년이 지나도, 수천킬로미터 밖으로 도망쳐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에게 강박적 반복이 영원성을 갖고 펼쳐지는 이유다. 정신분석에서 왜 이렇게 반복이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라캉 역시 <세미나 11>에서 4개의 근본개념으로 무의식, 충동, 반복, 전이를 꼽은 이유를 이제야 알것 같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무의식의 무시간성과 반복을 이야기하면서 결과적으로 그 원동력으로 충동, 죽음 충동이라는 개념을 꺼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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