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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여론10

낯선 사람을 만날 때는 생강을 씹어 밷어라 트로브리안드 섬의 키리위나 사람들은 말리노프스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도부섬 사람들은 우리처럼 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잔인하고 인육마저 먹습니다. 우리가 도부 섬에 도착할 때에는 그들을 경계합니다. 우리를 죽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생강 뿌리를 씹어서 뱉으면 그들의 정신이 바뀝니다. 그들은 창을 버리고 우리를 환영합니다." 축제와 전쟁 간의 불안정한 관계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하는 것은 없다. 마르셀 모스 280쪽 계속 공부하고 있지만 '이불 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점점 더 와닿는다. 일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긴장이 되고,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익명의 사람들을 만날 때는 더 그렇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인데도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2024. 3. 21.
선물같은 사랑은 없다 선물같은 사랑은 없다. 만약 그 선물(프랑스어, don)이 한 점의 불순물없는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라면. ​ ​ 마르셀 모스는 1925년에 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자본주의적 경제체제 혹은 공산주의적 사회를 넘어서는 다른 삶의 양식으로서 주고, 받으며 답례하는 사회를 제안합니다. 언제나 선물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왔던 전체적이며 총체적인 사회! 북서아메리카의 인디언 부족과 남태평양의 멜라네시아 및 트로브리안드 군도 지역을 인류학적이고 사회학적으로 탐구하면서 현재의 화폐와 상품 교환이 아니라 선물을 주고 받고 답례하는 호혜성의 사회를 제시한다. 여기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축제이자 사건, 삶의 방식은 북서아메리카의 포틀래치와 남태평양의 쿨라다. 둘다 선물을 주고 받으면서 형성되는 개인간, 부족간, .. 2024. 2. 22.
세계 끝의 버섯 은 말 그대로 버섯 이야기다. 특히 미국 오리건주, 일본, 핀란드의 송이버섯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송이버섯 채집꾼들, 소나무의 생태, 소나무와 송이버섯의 공생적 관계까지. 그렇다고 이 책이 송이버섯'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송이버섯으로 생태주의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신기하게도 애나 칭은 송이버섯의 채집 유통경로를 따라가면서 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본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을 보여주는 책들은 많다. 이런 책들을 읽고 나면 과연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할까, 자본주의가 끝날 수 있을까 한탄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냉혹한 자본주의 세계가 끝나지 않음에 절망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그곳에서 피어나는 비자본주의적 삶과의 연계성을 보여준.. 2023. 12. 14.
사소한 것이 모든 것이다 사소한 것이 모든 것이다 : 아이아스와 지영씨는 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3, 4장 메모 지난주(2021.2.5) 방영된 ‘궁금한 이야기 Y’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계속해서 한숨이 나왔다. 전남자친구가 몰래 지영씨 집을 침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을때까지만 해도 ‘이런 놈이 또 있었네’정도였다. 다행히 지영씨 스스로 경찰에 신고하고, 전남자친구를 잡아서 자백까지 받았다. 사건 발생 이후 곧바로 아버지가 올라와서 집 안팎에 CCTV를 설치하고 한주일정도 함께 생활하다 더 이상 스토킹이 없음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날에 퇴근한 지영씨는 죽음을 택했다. 왜지? 일이 다 잘 끝난 것 아닌가? 스스로 신고해서 경찰과 함께 전남친을 찾아갈 정도의 사람이 왜… 모든 것이 다 잘 풀렸.. 2021. 2. 9.
생태원리로서의 증여, 그리고 탈자아 구성 방식으로의 증여 2장 메모 단상 생태 원리로서 증여 “쿨라는 그 기본적인 형태에서는 사실 트로브리안드 도민들의 경제생활과 비종교적인 생활 전체를 포괄하는 것처럼 보이는 급부와 반대급부의 광대한 체계 중에서 가장 엄숙한 한 순간에 불과하다.”(114쪽) “그러나 트로브리안드 섬의 ‘쿨라’가 선물교환의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한 것과 마찬가지로, 포틀래치도 북서부 아메리카 연안 사회에서는 선물제도의 일종의 기형적인 산물에 불과하다.”(165쪽) 우발라쿠Uvalaku 대항해원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술들과 학문의 발전이 필요했을 것이다. 수백킬로미터를 항해하기 위해서는 수년동안 꼬박 대형 배를 만드는 것에만 종사하는 무리들이 있었을 것이고(화학/물리/항해술), 또한 안전하게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기술(천문학)은 필수적이.. 2021. 2. 1.
<증여론> 서문 및 1장 Q1. 서문에서 모스는 자신의 연구가 ‘선물에 답례해야 하는 의무’에 대한 탐사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즉, 선물을 받았을 경우, 의무적으로 답례를 하게하는 법, 이해관계의 규칙은 무엇인지. 받은 물건에 어떤 힘이 있기에 수증자는 답례를 해야 하는가 를 규범적으로가 아닌 형태적으로 보려고 한다. 선물은 형식적으로 자발성(개인들이 알아서 하는것이라는)을 띄지만, 실제적으로 강제적(집단의 배경 안에서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가능성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1) 모스는 이를 사모아섬의 올로아와 통가, 그리고 마오리족의 타옹가를 통해서 답한다. 그가 보기에 타옹가(taonga)는 사람/씨족/토지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그냥 물건이 아니라 그.. 2021. 1. 26.
또 다시 <증여론> ‘총체적 사회적 사실’로서의 증여는 ‘파편적 개인적 사회’에서도 작동할 수 있을까 : 1장 메모 * 에 대한 기본적 이야기는 이전 글들을 참조. 순수한 증여나 완전한 사리사욕은 없다 선물을 되갚아야하는 이유 - 하우(hau)의 비밀 서문에서 모스는 자신의 연구가 ‘선물에 답례해야 하는 의무’에 대한 탐사임을 명확히 밝힌다. 그리고 물건의 영이라는 하우hau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런데 모스가 하우를 찾아낸 것은 태고사회의 규범에서가 아니다. 그들이 물건을 주고 받는 형태form/formation를 통해서였다. 형태가 중요하다. 축구를 생각해보면 조금 더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어떤 형태(442, 431, 4141)를 구사하느냐에 따라 그 팀의 축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 수 있다. 축구에서도 포메이션(.. 2021. 1. 25.
[선물과증여] 석기시대 경제학 불명확성의 메커니즘 - 마샬 살린스 - 분명히 보다 편하게 읽었고, 내용도 재미 있었다. 물론 쉽게 읽힌다는 것이 아무런 내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은 이나 만큼이나 분명하게 나를 흔드는 새로운 관점을 품고 있다. 그런데 왠걸? 책을 다 읽고, 다시 개념을 정리하면서 보는데 서평으로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한동안 잡히는 것이 없었다. 신석기 혁명을 무시하고 수렵채집을 고수했던 원시사회의 풍요로움,부터 저생산 구조를 유지하는 가족제 생산방식, 관대성과 호혜성의 원리까지 다채로운 내용들이 있었음에 불구하고. 왜일까? 글쓰기를 고민하다가 불현듯 무엇이든 명확하게 규정하려는 나의 성향 혹은 근대적 사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 이런 불명확성을 원시 시대의 특징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불명확한 것.. 2015. 7. 2.
[선물과증여] 선물을 되갚아야 하는 이유 선물을 되갚아야하는 이유 - 하우(hau)의 비밀 - 3장 비판 모스는 에서 선물이 되갚아지는 이유로 마오리 원주민의 하우(hau)를 들고 있다. 모스는 하우를 “사물에 깃든 영, 특히 숲속 사냥감의 영”이라고 소개했다. “원시 사회나 고대 사회에서 일단 받은 선물은 반드시 되갚아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권리와 이해관계의 원리는 무엇인가? 증여된 물건 속에 받은 자로 하여금 되갚도록 강제하는 어떤 힘이 존재하는가?” 여기서 말하는 힘이 바로 ‘하우’이다. 하지만 하우는 논리적으로 단지 왜 선물이 되갚아지는가를 설명해줄 따름이다. 하우는 애초에 증여해야 할 의무와 받아야 할 의무에 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모스는 호혜적 교환의 의무를 논하면서 마오리의 하우를 일반적 설명원리로 위상.. 2015. 6. 12.
[선물과증여] 완변한 낭비로서의 증여 완전한 낭비로서의 증여 으로 유명한 조르주 바타유(1897~1962)는 모스가 에서 호혜성의 주된 논리로 예를 들고 있는 포틀래치를 일반경제 관점에서 ‘잉여'의 문제와 결부시켜 해석한다. 일반경제 관점에서 보면 포틀래치야 말로 소비를 통해서 생산을 야기하는 기묘한 역설의 예라고 주장하면서. 소비를 통해서 생산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선뜻 이해가지 않는데 바타유는 그것도 ‘생산적 소비'가 아닌 아무런 쓸모 없어 보이는 ‘비생산적 소비'야말로 우리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참된 메커니즘이라고 말한다.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낭비, 사치가 정말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원리가 될 수 있을까? 무엇을 보고 바타유는 이런 논리를 끄집어낼 수 있었을까? 그가 아이디어를 얻은 마르셀 모스의 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석인 것 .. 2014.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