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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선물과증여

[선물과증여] 완변한 낭비로서의 증여

by 홍차영차 2014. 8. 27.

완전한 낭비로서의 증여

 

 

<에로티즘>으로 유명한 조르주 바타유(1897~1962)는 모스가 <증여론>에서 호혜성의 주된 논리로 예를 들고 있는 포틀래치를 일반경제[각주:1] 관점에서 잉여'의 문제와 결부시켜 해석한다. 일반경제 관점에서 보면 포틀래치야 말로 소비를 통해서 생산을 야기하는 기묘한 역설의 예라고 주장하면서. 소비를 통해서 생산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선뜻 이해가지 않는데 바타유는 그것도 생산적 소비'가 아닌 아무런 쓸모 없어 보이는 비생산적 소비'야말로 우리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참된 메커니즘이라고 말한다.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낭비, 사치가 정말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원리가 될 수 있을까? 무엇을 보고 바타유는 이런 논리를 끄집어낼 수 있었을까? 그가 아이디어를 얻은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정석인 것 같다.


아직은 증여의 흔적이 남아있다.

 

1. 자발적이지만 강제적인 증여?

     일반적으로 증여 교환을 말할 때는 항상 서로의 이해관계를 떠난 무상의 소비행위를 떠올린다. 하지만 아무런 사욕 없는 마음으로 자신의 재산을 증여하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줄 때에도 역시 한 편으로는 선물 받을 것을 기대한다. 동일한 교환 가치가를 가진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기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증여 역시 자신은 아무런 사리사욕 없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답례가 행해지지 않으면 자신이 상대방보다 경제적, 사회적, 법률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또한 이러한 관념이야말로 자선을 받는 사람이 증여하는 사람에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세계 총 생산량을 보면 모두가 먹고 살 수 있는 충분한 물질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받는 사람, 주는 사람 모두에게 이로움이 되는 분배 방법은 불가능한 걸까?

     ‘선물과 증여'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본 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까? 마르셀 모스는 친구들에게 혹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선물하는 원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진다. <증여론>에서 모스는 보아스가 아메리카 북서부 해안에서 조사한 포틀래치(potlatch)와 말리노프스키가 멜라네시아에서 조사한 쿨라(kula) 등 고대사회의 증여교환 체계를 분석한다. 그가 살펴본 고대 사회의 증여 교환 체계는 단순히 경제적 성격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종교적, 법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고대 사회의 증여교환은 동산과 부동산 같은 경제적으로 유용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례, 향연, 군무, 여자, 축제, 시장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모스는 고대사회의 증여교환은 호혜성'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현재의 상품'과 달리 선물'은 호혜성을 수반하고 있다.

 

2. 포틀래치[각주:2]

     포틀래치는 크게 선물의 포틀래치와 파괴의 포틀래치로 구분할 수 있다. 포틀래치는 아메리카 북서부 인디언들이 과잉 에너지를 소비했던 독특한 방식으로서 한 집단의 권력자가 다른 집단의 권력자에게 힘을 과시하기 위해 엄청난 부를 선물하거나 면전에서 그것을 파괴하면, 경쟁자는 이 도전에 대해 더 큰 부의 선물 혹은 파괴로써 응전하는 행위를 말한다. 특히 파괴의 포틀래치는 힘의 과시라는 의미만을 지닌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숲의 정령, 영혼, 부족의 신에게 바치는 공희의 의미를 띠었다. 포틀래치에는 이처럼 경제 관념과 함께 도덕 관념과 종교 관념이 함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작동할 수 있는 포틀래치의 메카니즘은 무엇일까? 이것은 주기, 받기, 답례하기라는 의무를 통해서 동작한다. 특히 여기에서는 신용과 명예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선물 경제의 모습

 

주어야 하는 의무

     주어야 하는 의무는 포틀래치의 본질이다. 주기를 거부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이며, 때에 따라 전쟁을 선포하는 행위이다. 한 마디로 주기를 거부하는 것은 교제와 결연을 거부하는 행위가 된다. 주는 사람은 재산을 소비하고 분배하여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을 꺾고 그의 명성의 그림자로 덮어버릴 때에만 자신의 명성과 지위를 증명할 수 있다. (침시아족의 신화 참조 )

받아야 하는 의무

     받기의 의무 역시 주기의 의무 못지 않게 강제적이다. 보르네오 원주민인 다야크족은 식사하는 것을 목격하거나 식사 준비하는 것을 본 경우에는 반드시 거기에 참석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콰키우틀족에서는 신분계급에서 어떤 지위를 인정받았을 경우, 이전 포틀래치에서 이겼으면 초대를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거부한 자는 반드시 더 성대한 포틀래치를 행해야 하는 의무를 갖는다.

답례의 의무

     포틀래치의 정신적 메커니즘에서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도전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상당할 정도로 답례하는 것은 절대적이다. ‘답례하기'의 의무가 얼마나 절대적인가 하면, 이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 자는 명예와 지위를 잃음은 물론이거니와 심한 경우 자유를 잃고 노예가 되기도 한다.

 

2. 쿨라

     쿨라는 멜라네시아 트로브리안드 제도의 교환 체계이다. 쿨라라는 말의 뜻은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마치 하나의 원에 휘말려서 그 원의 주변을 따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규칙적인 운동을 계속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여러 섬은 거대한 의례 교환의 원' 속에서 결합 된다. 멜라네시아인들은 쿨라를 일반적인 매매행위인 김왈리(gimwali)와 명백하게 구분했다. 이 증여교환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은 바이구아라는 일종의 화폐로, 음왈리(조개팔찌), 술라바(목걸이)가 섬 전체를 계속해서 돌게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둘 모두를 모으며,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즐기기 위해서 간직한다. 이 순환은 끊임없으면서도 정확하게 행해진다. 너무 오랫동안 간직해도 안되며, 그것들을 넘겨주는 데 느려서도 안 된다.


쿨라 Ring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쿨라와 포틀래치는 고대사회에 나타난 선물 제도의 일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대 사회에서 주기, 받기, 답례하기의 의무는 증여교환 체계를 작동시키는 정신적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증여교환 체계는 사회 현상이면서 정신적인 것이었다.

 

3. 총체적 사회적 사실

     모스는 어떻게 같은 자료들을 가지고 이런 통찰을 할 수 있었을까?[각주:3] 논증보다는 직관에 더 많이 의존하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걸까? 보헤미안적 기질로 이국적인 수집품을 좋아하고, 드뷔시와 피카소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는 것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지도. 그는 자신의 삼촌이자 스승이었던 뒤르켐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1901원시 민족들의 종교역사'라는 강의에서 민족학적 방법을 사용하면서 뒤르켐과는 다른 개념을 주장한다. 그는 하나 하나의 사실'을 그것이 속한 전체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그의 연구에서 경제, 법률, 결혼, 신화 등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체계를 형성한다. 즉 학문에 대한 모스의 공헌은 구조주의적 연구 방법론에 있다. 다시 말해 기원적인 것'단순한 것'이어서 이로부터 복합적인 것'이 나온다는 진화주의적인 관점을 뒤집어서 어떤 사실은 그것이 포함되어 있는 사회적 몸체 전체와 맺는 관계에서 고찰하면서 사실을 그들의 사회적 용법에 따라 이해해야 한다는 개념, 총체적 사회적 사실을 주장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원시사회들은 뒤르켐이 인식했던 것처럼 기원적'이거나 기초적인 조직으로 파악되기보다는 서양사회를 특징짓는 복합성과는 다른 상이한 복합성'을 가진 사회로 파악된다. 또한 경제 개념에서도 물물교환, 화폐교환, 신용 교환이라는 점진적 발전은 인위적인 생각이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자본주의 상품과는 다른 관점의 교환 체계가 존재했었고, 지금도 그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고대인들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본질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비'하기 위해서 재산을 축적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고대사회의 증여교환체계를 활용할 수 있을까? 요즘 계절이면 계절마다, 마을이면 마을마다 만들어내고 있는 축제나 엄청나게 비싼 물건들을 소비하고 증여하는 재벌 혹은 연예인들의 사치 혹은 파티가 이러한 포틀래치를 대신한다고 할 수 있을까? 쿨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1. 바타유의 일반경제 : 개체의 수준이든 사회의 수준이든 체계가 유지되려면 과잉된 에너지를 아낌없이 소모해야 한다는 논리바타유의 일반경제 : 개체의 수준이든 사회의 수준이든 체계가 유지되려면 과잉된 에너지를 아낌없이 소모해야 한다는 논리 [본문으로]
  2. 포틀래치는 미국 북서부 아메리카 컬럼비아 강 유역의 인디언어(치누크)로 ‘식사를 제공하다' 혹은 ‘소비하다'는 뜻 [본문으로]
  3. 그는 프랑스 인류학에서 민족지적 조사를 고취한 주요 인물로 간주되고 있지만, 정작 그는 한 번도 본격적인 현지조사를 한 적이 없다. 포틀래치는 보아스, 쿨라는 말리노프스키가 조사한 민족지적 자료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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