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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선물과증여

사소한 것이 모든 것이다

by 홍차영차 2021. 2. 9.

사소한 것이 모든 것이다

: 아이아스와 지영씨는 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증여론> 3, 4장 메모

 

 

 

 

 

지난주(2021.2.5) 방영된 ‘궁금한 이야기 Y’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계속해서 한숨이 나왔다. 전남자친구가 몰래 지영씨 집을 침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을때까지만 해도 ‘이런 놈이 또 있었네’정도였다. 다행히 지영씨 스스로 경찰에 신고하고, 전남자친구를 잡아서 자백까지 받았다. 사건 발생 이후 곧바로  아버지가 올라와서 집 안팎에 CCTV를 설치하고 한주일정도 함께 생활하다 더 이상 스토킹이 없음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간 다음날에 퇴근한 지영씨는 죽음을 택했다. 왜지? 일이 다 잘 끝난 것 아닌가? 스스로 신고해서 경찰과 함께 전남친을 찾아갈 정도의 사람이 왜… 모든 것이 다 잘 풀렸다고 생각한 시점에 자살했을까? 아직도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경찰과 함께 범인을 잡았지만, 경찰은 무슨 이유인지 전남친을 구속도 하지 않았으며 진술만 잠시 듣고 돌려보냈다. 전남친은 지금까지도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았다. ‘현행범이 아니었다’, ‘그리 큰일은 아니었다’라는 이야기들이었다. ……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지 않을까.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처리하는 방식이 공동체의 모습이다. 아니 바로 그 작고 사소한 것들이야말로 ‘전체적이며 총체적인 공동체의 체계’가 드러나는 표면들이다. 매일을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절망과 함께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으며, 자신에게 공감하지 않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갈 힘을 빼앗겨버린 것은 아닐까.

 

 

또 하나의 이야기. 트로이아 전쟁에서 아킬레우스가 죽었을 때, 그의 무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 소란이 있었다. 아이아스는 당연히 자신이 그의 무구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킬레우스를 제외하고는 자신이 최고의 전사였으며, 이런 힘(역량)을 가지고 지금까지 공동체에 가장 크게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무구는 오뒷세우스에게 돌아갔다. 왜냐하면 사회의 총체성이 변화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의 무구가 오뒷세우스에게 돌아갔다는 것은 힘의 세계에서 이제 말, 문자의 세계로의 변화를 말해준다. 아이아스는 자신에게 무구를 주지 않는 공동체를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무구 그 자체가 명품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무구(물질res)에는 사람들의 인정과 공동체의 질서와 존경을 모두 품고 있었다. 아무나 함부로 그 무구를 입을수도 없었다. 물질(무구)는 그에 합당한 역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러한 무구를 얻지 못한 아이아스는 그 공동체에서 살아갈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한 공포때문이 아니다. 고가의 무구를 빼앗겼기 때문도 아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바로 이런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때문에 갈릴 때가 많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맞지 않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사상이 다른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취향이 다른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뭔가 바꾸고 싶다면 집에서건 회사에서건 아니면 나라에서건 작은 말 한마디, 손짓 하나, 걸음걸이, 말투, 눈빛, 말의 고저와 같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작은 것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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