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니체

[읽기의급진성] 도덕, 도덕, 도덕, 도대체 왜?

by 홍차영차 2013. 12. 18.



아침놀, 2~3권 


니체는 왜 기존의 관습과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도덕에 대해서 이토록 통렬히 비판하는 걸까? 아니 비판을 넘어서서 그 기초를 통째로 뒤 엎어 버리려고 하는 이유는 뭐지? 도대체 왜?

 

그저 통념으로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생각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훈계하는 건 아니었다. 계몽과 호통을 넘어서 그렇게 뱉어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니체의 고독과 절망이 느껴졌다. 누구도 볼 수 없는 세상을 봐 버렸고, 보이지 않는 세상의 경전을 읽어버린 니체. 그것을 보았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시대에서 니체는 글을 쓸 수밖에 없었으리라! ‘지하에서 작업하고 있는 한 사람은 온전히 다른 사람들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극도의 절박함을 가지고, 계속해서 끝을 알 수 없는 깊음 속으로 내려가고 있다. 자신을 이해할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환상이나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안개가 아니다.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더 우리를 조여오고 있는 세상의 편견들과 나사와 같은 존재로 변해져 가는 기계적인 사람들의 모습. 더욱 더 이상한 것은 니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돈을 더 많이 번다는 것이 자기 자신을 더 잘 파악하는 것이 아님이 확실하지 않은가? 도덕과 규칙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는 우리를 판단할 힘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믿어보라. 우리가 자신을 악한 존재로 여기지 않을 때 우리는 악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최고의 경찰이며, 이성, 열망, 독립욕의 발전을 저지하는 노동을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노동은 극히 많은 신경의 힘을 소모하고 성찰, 고민, 몽상을 위해 쓰일 힘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또한, 너무 많은 것을 알아가려고 하지 마라. 그것들 모두를 평가 할 필요도 없다. 무대의 주역은 합창에 끼어들거나 나아가서 어떻게 합창하는지를 알 필요가 없다. 그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고유한 일들을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하는 행동들과 판단이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병자를 대할 때처럼극히 조심스럽게. 여전히 우리가 실천도덕이라고 부른 것을 자신의 의술과 의학의 일부분으로 바꿀 수 있는 의사들이 없기 때문에 죄인을 병자라고 말할 수는 없고, 아직 어떠한 사상가도 사회와 개인의 건강을, 그것이 얼마만큼 많은 기생 동물들을 견딜 수 있는지에 따라 평가하려는 용기를 갖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하기는 이루다. ‘악한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통해 삶과 사회에 대해 무수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 질 것이다. 이제는 행동과 사상과 관련해 도덕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이상 해로운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민족들이 자신들의 결함으로 인하여 윤리적인 명령을 반복해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을 보면 ,이미 이 비밀을 알고 있는 소수의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2013. 12. 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