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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의식과 도덕의 댓가

by 홍차영차 2020. 4. 9.

의식과 도덕을 가진 대가(代價)

: <즐거운 학문> 1부




아무런 목적 없이 음악을 들어보았던 적이 언제였지?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 학습을 땡땡이 치고, (그리 멀리 도망가지도 못했다. -.-;) 학교 운동장 옆에서 소니워크맨(SONY) 한 대에 이어진 이어폰 한 쪽씩을 끼고 몇 시간씩 노래를 듣고 불렀던 적이 마지막이지 않았을까.




대학 졸업 이후부터는 목적, 가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공부를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여행을 가는 것조차 의미와 가치에 매여서 움직였던 것 같다. “아무리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를 머리 속에 넣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76)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목적과 가치, 의미를 규정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전통적으로 가치있다고 여겨지는 것,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으로 판단되지 않았을까.

문탁에서 처음 공부를 하러 왔을때 느꼈던 감정이 딱 이랬다. 아무런 가치도 없어 보이는 어수선하고 시간만 요구하는 활동들(바느질, 천연화장품, 에세이발표 등)을 보면서 ‘돈도 벌지 못하면서 뭘 이렇게까지 거창하게 사람을 모으고 즐거워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제야 조금씩 함께 하면서 품이 많이 들지만 함께 밥을 먹고, 세월호방석을 만들고, 청소하고, 함께 노래하는 것은 어떤 의미의 생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이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임을 경험하고 있다. 물론, 순간 순간마다 이전의 가치들과 목적들이 목밑까지 올라오곤 한다. “오늘날 도덕적인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광범위한 영역의 연구를 개척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아직까지도 “사랑, 소유욕, 질투, 양심, 경건, 잔혹의 역사”, “하루를 구분하는 다양한 방식, 노동과 축제와 휴일을 규범적으로 확정해놓은 결과”, “음식의 도덕적 영향”, “섭생의 철학”, “결혼과 우정의 변증법”(76)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과 이 요구들에 익숙해진 신체뿐이다.





“사람들은 의식에 인간의 핵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지속적이고, 영원하고,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것에! 사람들은 의식이 확고하게 일정한 단위라고 여긴다! …… 의식에 대한 이러한 가소로운 과대평가와 오해”를 직시해야 한다. “의식은 유기체에서 가장 뒤늦게 발전된 것이며 따라서 가장 미완성이고 가장 무력”하다. 우리는 여전히 의식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하나의 기능(의식)은 충분히 교육되어 성숙하기 전까지는 유기체에 위험하다.” “지식을 체화하여 본능적으로 만드는 것은 여전히 전적으로 새롭고, 인간의 눈에 희미하며, 전혀 명료하게 인식되지 않는 과제이다.”(81)

의식을 가진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내면성은 인간이 가진 독특성이자 어려움이다. 의식에서 파생되는 속마음을 갖게 되면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기 어려워졌다.(는 핑계를 대지만 실상은 신체적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감정이란 신체의 변용이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하는 ‘즐거운 학문’이란 결국 의식과 도덕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래서 니체는 자신의 글을 이렇게 음악적으로, 아니 글을 가지고 음악을 연주하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서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방식으로의 음악, 펼쳐진 그 순간에 벌어지는 신체의 변용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방편으로서의 즐거운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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