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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엄격한 학문에서 즐거운 학문으로

by 홍차영차 2020. 4. 16.

엄격한 학문에서 즐거운 학문으로 - 음악과 예술

: <즐거운 학문> 2부

 

오로지 창조하는 자로서만! - (…) 사물이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 사물이 어떻게 불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더 중요하다는 것을 통찰하는 것이다. 어떤 사물의 소리, 이름과 외양, 유효성, 관습적 척도와 무게 등 원래 의복처럼 사물에 덧입혀 진 것일 뿐, 그것의 본질은 물론 피부에도 낯선 것들이 그것에 대한 믿음과 세대를 거친 성장을 통해 그 사물에 유착되고 동화되어 신체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128)

시의 기원 - “인간이 모든 시대에 걸쳐 유용한 것을 최고로 신성한 것으로 존중한다면, 도대체 시가 왜 세상에 생겨났겠는가? 이 운율을 붙인 말은 명료한 전달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하고, 게다가 모든 유용한 합목적성을 조소하기라도 하듯이 세상 모든 곳에서 솟아나오고, 또 솟아나고 있지 않은가! 시가 지닌 야생적 아름다움의 비합리성은 너희들 공리주의자들을 반박하고 있다. 유용함에서 풀려나고 싶어 하는 것 - 이것이 인류를 고양시켜왔고, 인류에게 도덕과 예술의 영감을 불어넣었다!” (149)

 

 

 

바그너와의 결별 때문이었을까. “나는 바그너와 일종의 동맹을 맺었다.”라고 말했던 니체는 그와의 결별 이후 급격히 건강이 나빠졌다. 1877년과 1880년 사이에 심한 두통, 어지러움, 눈통증, 거의 실명에 가까운 시력 약화들으로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다. 바젤 대학에서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반시대적 고찰> 4권은 1876년에 출간되었고, 거기에서 이미 니체는 그와의 결별을 행간에서 선언)

신체적 건강은 그의 정신역량과 평행하게 이어져가는 듯 했다. “인식의 실험으로서 삶”이라는 것을 니체에게 결코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엄격한 학문이라고 말해진 북유럽의 학문은 니체에게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기독교라는 형식으로 고착화된 그 학문에 틈을 내는 것이 필요했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필수적이었다. 니체는 독일이 아니라 스위스 제네바로 가서 <아침놀>(1881)을 썼다. 

<즐거운 학문>(1882)이 <아침놀>의 후속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니체 자신의 편지에서 스스로가 말하기도 했지만, 1부에서 나타난 비슷한 비판적 논조(망치질)때문이다. 그런데 2부에 드러서면서는 조금 다른,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관점이 드러난다. 음악과 예술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 (인식론적 객관성의 반대편에 있는 관점주의?)

예술, 특히 시(음악)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다. 합리성과 실용성의 관점에서 ‘시’는 정말로 쓸모없는 것인가? 문헌주의자의 면모가 나타난다고 할까. 니체는  “시가 생겨난 저 오래전 옛날, 말에 운율을 끌어들였던 당시 사람들은 시가 지닌 유용성, 그것도 매우 커다란 유용성을 안중에 두고 있었다.”고 전한다.

누구도 (경험상으로) “운율에는 어떤 강제력이 있다.”는 말을 부정하기 어렵다. 흥겨운 노래가 들려오더라도 이성은 멈추라고 하지만 내 발가락은 리듬을 맞추고 있으며, 지나가다 듣게 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한 구절에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운율의 강제력은 이성에게 명령하기 보다 신체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신천지’의 ‘정식교인’들은 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설득에도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않을까). 자신들을 집에 가두었다고 부모를 고소하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들에게 동조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데올로기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신체에 새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차라리 니체가 이야기한 ‘운율’, ‘예속된 도구로서의 노래’로서의 음악을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음악은 신체적이며, 이성으로 움직이기 이전에 발로 손으로 움직이는 의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내 발이 달리기를 원하다”거나 “내 심장이 피를 원한다”는 말을 되새겨봐야한다. 

 

엄격한 학문이 아니라 즐거운 학문이 삶을 구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즐거운 학문의 중심에는 예술이, 음악이 위치해 있(어야 한)다. 니체가 생각하기에 힘에의 의지란 비스마르크(의 전략과 무기)가 아니라 헤겔(의 철학)과 베토벤(의 음악) 그리고 괴테(의 문학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물론, 여전히 그들의 예술은 니체의 ‘영원회귀’를 설명해줄 만큼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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