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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코로나19가 구성해낸 일상 매너

by 홍차영차 2020. 3. 17.

코로나19가 구성해낸 (이전에 누구도, 어떤 것도 강제할 수 없었던) 일상 매너





기침

단순히 담배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기침, 무례한 기침들! 동네를 산책하거나 둘러보다보면 여기 저기서 기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리적 현상으로 나오는 기침도 있지만 어색함을 이겨내기 위한 기침도 있고 여기가 내 구역이라고 말하려는 기침도 있다. (들뢰즈라면 이런 기침을 ‘리토르넬로’라고 말했을 것)  길거리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식당에 앉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손으로 가리지 않고 거침없는 기침을 자신있게 해대는 사람들이 많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잘 공감하지 못했다. 도리어 이렇게 기침을 조심하면 조심할수록 사람들은 매너있게 입을 가리며 기침하는 사람을 소심하게 볼 때가 많다. 물리적 접촉 이외에 갑작스러운 소리가 상대방에 대한 공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 같았다.

놀랍다! 코로나19의 전염성과 심각성이 커질수록 누구도, 아니 그 어떤 (법칙과 제도) 것도 하지 못했던 기침 예절이 형성되었다. 길거리에서 기침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혹여나 기침이 나오더라도 소매 혹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조심 조심하며 기침한다. 아무도 대담하게 침이 튀도록 기침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물론 아직은 사람들의 시선과 전염에 대한 공포때문이겠지만.


핀란드에서 버스 줄 서는 모습(이라네요.)



사회적(?) 거리

이상하게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를 걸을 때 일명 ‘어깨빵’을 당할 때가 많다. (‘어깨빵’은 방송에서도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한국에서 받은 불쾌한 경험이었다.) 자신이 걷던 방향과 속도를 바꾸는 것이 자신감 부족 혹은 주체성의 약화라고 생각해서인지 거리에 충분한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깨를 부딪히거나 거의 부딪힐 것 같은 사이를 두고 교차할 때가 많다.

뒤에서 함께 오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충분한 거리를 두고 걸을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됨에도 바짝 바짝 따라올 때가 많고, 마치 내가 가려는 길을 막고 있다는 듯이 스쳐가거나 지속적으로 뒤에 붙어서 걷는 사람들. (건장한 남성이 여성의 뒤를 이런 방식으로 걸을 때의 공포감을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것!)

사람들 역시 알고는 있었다. 사회적(?)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는, 걸을 때는 최소한의 거리/공간이 필요하다. 현재의 ‘사회적 거리’는 코로나19로 인해서 기침으로 인한 비말이 튀지 않을 물리적 거리를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사람은 이런 물리적 이유뿐만 아니라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이유로 각자의 거리가 필요하다. 최소한의 거리를 넘어가는 것은, 물리적 접촉이 없다고 할지라도, 서로간에 긴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북유럽 사람들의 줄서는 사진이 유명했었다. 그때의 반응은 “왜 이렇게까지 거리를 두면서 서 있을까?” 조금 과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누구든지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 정서적/심리적 거리가 필요하다.



손 씻기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보태보자. 정말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이 사람들의 손씻기 습관이다. 남자여서 그럴까?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후에 손을 씻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개인적 경험으로 보면 열에 여덟은 씻지 않는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여자들 역시, 아니 좀 더 심하게 손을 씻지 않는다고 한다. 화장이 지워질 것을 염려해서일까? 또한 공중 화장실이 더럽다고 생각해서 발로 물을 내리거나 물도 내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겉은 멀쩡하게 차려입었음에도 손은 씻지 않는 이상한 습관들.

코로나19로 손세정제가 바닥이 났고, 어떤 공간을 들어가든지 사람들은 손씻기를 한다. TV 여기 저기에서 ‘누구라도 알고 있는’ 손씻기의 비법들을 전해준다. “손 가락 사이사이를 30초 정도는 씻어줘야 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코로나19가 전해준 지구의 메시지인지는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사스, 메르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손씻기, 개인간 거리 두기, 기침 하지 않기(매너 있는 기침)는 일상 매너가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전세계적으로도 고통받고 있지만 이번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진짜 마지막.

요즘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몇년 전부터 걷기에 빠져서 자주 걷고 있는데, 요즘처럼 사람들이 많았던 적이 없다. 얼마전 경안천 습지로 산책을 다녀왔다. 평일 오후였으니 사람들이 많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경험상으로도 늦겨울, 초봄이었으니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 맞다. 그.런.데 사람들이 꽤 많았다. 바글바글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족끼리 부부끼리 나와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평소에 자주 갔던 실내(백화점, 이마트, 커피숍, 영화관, 학원, 학교)를 갈 수 없으니 갈 수 있는 곳은 하나 실외! 게다가 사람들은 걸으면서 서로 서로를 배려(?)하면서 거리를 두고 걸었다. 지나칠 때면 말을 멈추거나 부딪히지 않으려고 주의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서 지내고 있지만, 이번을 계기로 걷기(를 비롯한 신체적 활동)에 대한 좋은 경험들이 쌓였기를 기대해본다. 스피노자 말대로 우리는 정말 우리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신체 능력이 좋아지고 유연해질수록 우리의 정신 또한 다양하고 낯선 것에 대해서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역량이 생긴다. 자주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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