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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되기devenir : 사이 존재들

by 홍차영차 2019. 9. 5.


되기devenir : 사이 존재들

: 들뢰즈/가타리, <천개의 고원>, 10고원



되기(=생성)는 결코 관계 상호간의 대응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사성도, 모방도, 더욱이 동일화도 아니다. …… 그러나 생성한다는 것은 계열을 따라 진보하는 것도 아니고 퇴행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특히 되기는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 동물-되기는 꿈이 아니며 환상도 아니다. 되기는 완전히 실재적이다. …… 이 되기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 실제적인 것은 생성 그 자체, 생성의 블록이지 생성하는 자가 이행해가는, 고정된 것으로 상정된 몇 개의 항이 아니다. p. 452



유사성도, 모방도, 동일화도 아니다

들뢰즈를 공부하지 않았음에도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그가 발명해낸 개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주변에서 사용되고 언급되기 때문이다. ‘되기’가 그 대표적인 개념이 아닐까. 동물-되기, 아이-되기, 여성-되기, 곰-되기, 늑대-되기부터 분자-되기까지. 하지만 알듯말듯한 이 ‘되기’가 어떤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곰처럼 되라는 것인지, 곰의 특성을 취해서 현재를 강화하라는 것인지. 들뢰즈가 ‘되기’에 대해서 반복해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되기’는 결코 모방이 아니고, 동일화도 아니라는 것이다.


결연alliance

‘되기’는 점이 아니라 선적인 사유와 연결된다. 되기란 지금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 뿐더라 다른 점에 도달하는 것도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곰-되기, 여성-되기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과 본성들을 모두 버리가 ‘곰’이 되라거나 ‘여성’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되기는 결연alliance와 관계된다.” 즉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다른 것들과의 결합에서 생성되는 그 무엇이다. 일단 ‘결연’을 맺어야 한다. 결연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마치 점이 선이 되려면 이웃항이 필요했던 것처럼.

“모든 동물은 특성보다는 무리의 양태들을 갖고 있다”는 말은 자주 한다. 패거리, 무리, 떼와 되기는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되기란 단독자로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물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들과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하는 존재자. 스피노자가 양태를 “다른 것 속에서 발견되는”, 즉 항상 다른 것의 변용affect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들뢰즈가 말했던 것처럼 되기란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이 존재

“개체도 종도 아니라면 이 특이자란 무엇인가?” 분명 이는 꿈도 환상도 아니다. 현실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어떻게?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동물-되기란 인간과 동물 그 사이의 존재이고, 여성-되기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존재이며, 분자-되기란 사물과 완전히 사라지는 분자 그 사이의 존재라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되기’는 비정상을 거부하고 항상 특이자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되기에서는 다른 그 어떤 것과의 비교가 불가능하기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모든 동물은 일차적으로 패거리이며 무리라는 점이다. 모든 동물은 특성들보다는 무리의 양태들을 갖고 있다. …… 무리에 대한, 다양체에 대한 매혹이 없다면 우리는 동물이 되지 못한다.”(p.455)

"요컨대 모든 동물은 <특이자anomal>을 갖고 있다. …… 동물-되기를 위해서는 언제나 모비딕이나 요제피네와 같은 특이자와 결연해야 한다.” (p.464) "어떤 경우에건 이 가장자리나 특이자 현상이 없는 패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p.467)

"우리들이 매혹된 <자아>의 위치를 상상했다면, 이는 그 자아가 파괴에 이를 정도까지 마음을 쏟는 그 다양체가 내부에서 그 자아를 작동시키고 팽창시키는 다른 다양체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아란 두 다양체 사이에 있는 문턱, 문, 생성일 따름이다. 각각의 다양테는 ‘특이자'로 기능하는 가장자리에 의해 규정된다."(p.474)






동물-되기 1 : 무리

스피노자의 존재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동물-되기가 가능하려면 우리는 우리를 단독개체로 보기보다 부분들로 이루어진 떼, 무리, 패거리로 봐야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동물-되기' "이렇게 해!"라는 명령이 아니라 전염의 방식으로 이루진다는 것. 아니 그렇게 이뤄질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동물-되기란 이성적 이해가 아니라 흡협귀나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듯 전염으로 가능하다. 그래서 들뢰즈는 "무리에 매혹되지 않는다면"이란 말을 쓰는 것 같다. 동물-되기란 나를 개인-단독자가 아니라 떼거리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시시 때때로 나 자신을 "무리"로 바라본다. '내'가 친구를 만나지만 나는 항상 문탁네트워크의 일원으로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가족의 일원, 동아리의 일원으로 나를 보고, 나 또한 그를 그가 속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동물-되기 2 : 특이자anomal

특이자와의 결연 역시 <무리>의 중요한 특징이다. 하나의 무리가 특징짓는 것은 중앙이 아니라 사실 경계이다.  그 경계에 서 있는 마법사, 추방당한 추장, 괴물, 악마…. 백인들을 백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갈색피부를 거무스름한 피부를 가진 경계자 때문이고, 문탁네트워크의 공동체성은 매일매일 문탁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라 간혹가다 강좌에, 단기 세미나에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애매모호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그 경계가 만들어진다. 어떤 공동체에서도 특이자가 없다면, 가장자리 경계에 위치해 있는 저 사람(사물)이 우리 공동체의 일원인지 의심되고, 헷갈리는 사람이 있을때에야 공동체가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는 것.

들뢰즈의 언어로 말하지만 괴물, 악마와 같은 기괴한 자를 통해서 말들어진다.



2019.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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