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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다른 퇴근길(3) - 전쟁 기계

by 홍차영차 2019. 10. 19.


전쟁 기계 - 절대적 폭력과 절대 속도

: <천개의 고원>, 12고원 1227년 - 유목론 또는 전쟁 기계



“전쟁 기계는 국가 장치 외부에 존재한다.”(671쪽) 어쩌면 이 문장에 깜짝 놀랄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국가를 국가의 중요한 요소로 꼽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사유 형식'이 모두 국가 모델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718쪽) 공인된 폭력, 군대가 국가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국가의 구성 이후의 사유 형식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생각해본다면 전쟁과 국가가 대립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전쟁이 계속되는 국가를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전쟁 중간에 임시 정부가 수립될 수 있지만, 실질적인 국가의 기능이 작동되는 것은 전쟁이 끝나고 난 이후의 반복 재생산을 통해서이다. 사실 국가 속에 군대가 있는 것은 국가적 동일성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막기 위해서이지,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들뢰즈/가타리가 말했듯이 군대는 항상 국가 속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 나라 이외의 다양한 나라에서 군대를 통핸 쿠데타가 발생하지 않았던가. 당연히 국가는 국가 내부 장치로서 군사조직을 가지고 있더라고 항상 경계의 눈빛을 줄 수밖에 없다.


국가 자체는 전쟁 기계를 갖고 있지 않다. 국가는 단지 군사 제도 형태로서만 전쟁 기계를 전유할 수 있지만 이 전쟁 기계는 끊임없이 국가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처럼 외부에서 유해한 전쟁 기계를 계승하고 있는 군사 제도를 국가가 경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678쪽)


그렇다면 들뢰즈/가타리가 찬양하는 ‘전쟁 기계’라는 개념 속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전의 되기, 얼굴성 해체, 기관 없는 몸체, 리좀을 떠올려보면, 이것 역시 생성과 창조과 연결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국가와 대립되는 것으로서의 전쟁 기계는 동일성과 불변성에 대항하는 모든 행위들을 말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어떤 존재, 행위, 모임, 놀이, 책, 개념이든 전쟁 기계가 될 수 있다. 현재의 영토를 벗어나 탈영토화를 만들 수 있는 어떤 것이든지 전쟁 기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쟁 기계라고 해서 항상 폭력으로 물드는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언제든지 현재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생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로 머문다면, 그 존재 자체는 ‘절대적 폭력’ 혹은 ‘폭력 없는 폭력’이 될 수 있다. 공자는 일평생 공부만 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언제나 긴장감이 돌았고, 그와 함께 했던 제자들은 새로운 사상과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는데 한 몫하지 않았던가. 소크라테스의 경우는 더 극명히 자신의 존재 자체가 ‘전쟁 기계’였음을 보여준다. 그가 한 일이라곤 시장바닦에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밥을 먹었을 뿐인데,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행하고 있던 소크라테스의 위험성에 시민들은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았던가?




유목민이 전쟁 기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절대 속도를 발명하고 속도와 “동의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불복종 행위, 봉기, 게릴라전 또는 행동으로서의 혁명이라는 반국가적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전쟁 기계가 부활하고 새로운 유목적인 잠재 세력이 출현해 매끈한 공간이 재구성되거나 또는 마치 매끈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공간 속에 존재하는 방식이 재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742)


절대 속도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운동이 점에서 점으로의 이동이라면, 속도는 그 순간의 방향과 운동, 영토와 연결되어 있다. 어디로 가지 않으며, 어떤 방향성도 보여주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 매끈한 공간을 구성해낼 수 있으면, 그것은 멈춰있더라도 어디나 존재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멈춰서는 것은 가장 고도의 비행 기술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저 하늘 한 자리에서 멈춰있는 듯이 보이는 매는 사실 가장 강렬한 속도를 보여주는 사례이지 않은가? (<노마디즘>, 이진경)


국가 바깥에 존재할 수 있을까, 무정부주의자가 되야하는 것인가? 자본주의 바깥에 존재 할 수 있을까, 자연인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 자본주의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다른-퇴근길-되기’가 가능할지 막막했다. 전쟁 기계는 뚤리지 않는 천장, 헤어나올 수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한 것에 구멍을 낼 수 있는 도구, 무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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