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양 고전/장자

장자는 반지성주의자인가

by 홍차영차 2019. 7. 18.

장자는 반지성주의자인가

: <장자> 양생주, 인간세





양생주(養生主) : 吾生也有涯,而知也无涯 (오생야유애 이지야무애) 以有涯隨無涯(이유애수무애) 始已(태이) 已而爲知者殆而已矣(이이위지자태이이의) 우리 삶에는 끝이 있지만 지식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서 끝이 없는 것을 좇으면 위태로울 뿐이다. 그런데도 알려고 한다면 더욱 위태로울 뿐이다.

인간세(人間世) : 德蕩乎名 知出乎爭 名也者 相軋也 (덕탕호명 지출호쟁 명야자 상알야 ) 知者也 爭之器也 (지지야 쟁지기야) 덕은 명예심 때문에 녹아 없어지고, 지식은 경쟁심에서 생긴다. 명예란 서로 헐뜯는 것이며, 지식이란 다투기 위한 도구이다.




‘참된 삶’을 논한다는 양생주의 첫 시작부터 장자는 ‘지식’에 대한 염려를 보여준다. 지식을 좇는 것은 위태롭고 위태롭다고. 양생주의 구절만 보면 장자는 배움을 두 가지로 나눠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 장자는 지식 자체 혹은 배움의 무가치함을 주장하는 것 같지는 않다. 장자는 각각의 자신의 위치, 역할에 맞는 지식을 넘어서 지식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가진 지식에  대한 오만한 자세를 경계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장자가 지식 자체, 배움 자체를 미워하는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장자를 반지성주의자라고 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설마……

그런데 장자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지식 자체에 대한 염려 혹은 혐오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특히 인간세에 나온 안회와 공자의 이야기는 조금 충격적으로까지 들린다. “명예란 서로 헐뜯는 것”이고, “지식이란 다투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니. 장자는 이 부분에서 너무나 간결한 문장으로 지식에 대한 결연한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정녕 장자는 반지성주의자였단 말인가?


공자와 제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논어>를 보면 공자는 똑같은 질문에 서로 다른 대답을 들려줄 때가 많다. 한 제자에게는 신중하게 행동하라고 말하는 반면 다른 제자에게는 고민하지 말고 실행하라고 말한다. 또한, 어떤 친구에게는 돈에 대한 탐욕을 버려야 한다고 비유를 들어주다가 다른 친구에게는 돈을 더 잘 챙기라고 말한다. 공자는 하나의 정답을 말한 적이 없다. 공자의 논의는 항상 그 대상과 상황에 시의적절한 모양새를 갖는다. 항상 나쁜 것이거나 항상 좋은 것은 없다. 그렇다면 <장자>에서 말하는 지식에 대한 언급도 이렇게 볼 수 있을까?

하지만 <논어> 속에 펼쳐진 여러가지 대화 속에서 공자가 거의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이 있다. 바로 지식에 대한 태도이다. <논어>를 배운 사람도 배우지 않은 사람도 알고 있는 구절들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이 구절은 단순한 <논어>의 첫 구절이 아니라 <논어>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공자의 철학이자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지속적인 배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서라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자의 관점을 알 수 있다.

3편밖에 보지 않았지만, <장자>는 이 점에 있어서 정확히 <논어>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 같다. 알듯 말듯한 <장자>의 비유들은 계속해서 서로 다른 형태를 가지고 지식 그 자체’만’을 추구하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장자를 반지성주의자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 당시에는 지성을 반지성적 태도로 자신의 지식만 옳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 아닐까.

공자의 시대는 춘추시대라고 불리고, 이때 이미 주나라는 힘을 잃고 있었다. 주나라가 약해지면서 제후들의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지배하려는 경향이 생기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제 단순히 자신의 가문과 혈통만 가지고서는 권위를 세울 수 없는 시대였다. 나라를 안정되게 운영할 철학과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공자는 배움을 통해서 새로운 정치관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공자에게 배움과 지식에 대한 추구는 단순한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서 시대가 요구하는 바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자보다 200년 뒤, 전국 시대에 태어난 장자의 시대는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공자 이후로 유가의 계열 뿐 아니라 묵가, 도가, 법가와 같은 다양한 배움(?)의 방식으로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장자는 지식에 반대했다라기보다는 새롭게 시도된 정치와 전쟁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지식’에 대한 삼가함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섣불리 시도된 제도들 혹은 자신의 지식을 믿고 어디라도 가서 자신의 운을 실험해보고자 했던 사람들!

쓸모와 쓸모 없음에 대한 이야기, 불완전한 외형을 가진 왕태, 애태타, 신도가, 숙산무지의 이야기들 역시 이런 배경 아래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리 잘린 수많은 지식인들이 왜 생겼겠는가? 몸이 성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장자가 말해주는 비유는 한편으로는 지식에 대한 삼가와 신중함을 이야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당시 수많은 장애인들, 전쟁에서 발이 잘리고, 팔이 잘리고, 꼽추였던 사람들에게 진짜 쓸모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진짜 삶이란 보이는 것이 아닌 것으로 구성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장자는 지성이라고 말하면서 지성적이지 못했던 시대에 어떻게 자신의 삶을 돌볼 것인가를 말했던 것 같다.


2019. 4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