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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스피노자의 상상 이론

by 홍차영차 2018. 10. 4.

스피노자의 상상 이론[각주:1]







성실함이 아니라 상상력이 최고의 능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기발한 상상의 힘으로 시작되었고, 상상은 인간을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집단적 상상력’인 이데올로기에 갇혀 끔찍한 전쟁을 선포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을 착취하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우리는 상상을 피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어떻게 해야 ‘상상’에서 ‘적합한 관념’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우리에게 상상이 올가미가 아니라 날개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상상을 피할 수 없는 존재

인간 정신이란 관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 정신을 구성하하는 관념의 대상은 현행적으로 실존하는 신체다. [각주:2]우리는 신체의 변용들에 대한 관념들을 갖고 있다.

인간 신체 그 자체는 매우 많은 방식으로 외부 물체들에 의해 변용된다[각주:3]. 외부 물체에 의한 자극은 신체에 흔적을 남긴다.[각주:4] 

그런데 우리가 외부 물체들에 의해 갖는 관념들은 외부 물체들의 본성보다는 우리 신체의 상태를 더 많이 가리킨다.[각주:5] 스피노자는 이러한 자극들로부터 생긴 신체의 흔적을 이미지라 하며, 우리 정신에서는 이러한 변용작용과 동시에 상상(imagination)이 일어난다. 우리 신체가 외부자극으로 변용되면 그와 동시에 반드시 정신에서도 어떤 관념이 형성된다.[각주:6]

우리는 바다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그것의 본성에 입각하여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체의 상태를 더 많이 반영하는 방식으로 지각한다. 울적한 날에 바다는 더욱 검고 무섭게 보이며, 사랑에 빠져서 기쁜 감정에서 바다는 연인과 함께 즐겼던 상큼한 대상으로 다가온다.

정신에 생겨난 이미지로부터 생겨난 관념, 그로부터 일어난 감정은 한 사람의 기억을 형성하고, 기억의 다발이 마주침의 현장에 즉각 소환되어 새로운 상상과 감정을 생산한다. 마주침의 순간에 생겨나는 상상과 감정은 외부 사물과 우리 신체의 본성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신체에 남긴 흔적, 기호, 혹은 지시일 뿐이다.





상상이라는 올가미 - 확실성의 유혹

인식의 자연학적 과정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상상을 올바른 인식이라고 오해할 때 상상은 올가미로 작동한다. 상상은 자유롭다고 말하지만, 이 자유롭다는 것의 진실은 알고 보면 나의 상상이 어떤 원인으로 생겨나는지 모르는 ‘무지’의 결과이다.

집단적 상상의 동일시 - 이데올로기로 형성되는 배타성,  개인의 수준에서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무시와 편견은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는 상상의 올가미로 작동한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상상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상상, 새로운 마주침은 적합한 관념의 형성에 필수적이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상상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방법은 수학적, 기하학에서처럼 목적을 배제하고 오직 원인을 인식하려는 것이다. 


상상이라는 날개 - 변용능력의 확장

상상의 결핍은 다른 상상으로 해소된다.

외부 자극에 의해 신체에 남겨진 흔적으로서의 이미지. 외부사물과의 교류를 멈출 수 없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상상할 수밖에 없다. 삶이란 끊임없는 자극을 주고받는 과정이고, 그 과정마다 외부 사물은 우리 신체에 흔적을 남기고, 정신은 관념을 형성한다.

정신의 상상은 그 자체로 고려될 경우에는 어떤 오류도 포함하지 않는다.[각주:7] 우리와 태양과의 거리는 실제 거리가 1억 5천만km라는 것을 알더라도, 여전히 200 걸음 떨어진 것으로 인식된다.[각주:8] 태양과의 거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기하학, 레이더의 원리, 빛의 속도와 같은 다른 상상들과 비교 분석되는 가운데 1억5천만km라는 적합한 인식에 도달한다.

상상의 오류는 다른 상상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어떤 원인으로 그런 상상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는 것, 새로운 마주침으로 형성된 다른 상상과의 비교와 연결 등을 통해 그것들 사이의 대립과 합치의 지점을 찾는 과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다행히 우리는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고 많은 것들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내가 뭔가를 해야만 하는 실천적 영역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진리들에 관해서 우리는 너그럽다. 가령 인류는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인간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와 같은. 반면 나의 삶에 밀착된 부분에 관해서는 감정을 일으키는 한 가지 상상에 고착되어 다른 상상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도 상상의 힘을 근거로 착각과 오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벗어날 수 있다.


적합한 인식은 곧 실천

상상의 오류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다른 상상의 도움을 받아 적합한 관념, 공통개념에 도달해야 한다. 이때 공통개념은 실천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왜냐하면 공통개념은 상상과 다른 상상이 만나서 대립과 합치의 지점을 찾는 과정에서 형성된 신체합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곧 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이 적합한 개념에 도달하는 동시에 신체는 그러한 행위를 한다. 공통개념에 도달한다는 것은 다른 마주침이 없어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천은 새로운 변화를 촉발한다. 따라서 적합한 인식은 고정된 확정적 사실이 아니라 매번의 마주침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다. 인식은 곧 행위가 된다.

우리 신체의 구조가 우리 인식의 조건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상상은 적합한 인식의 조건이다. 우리는 상상이 가진 특성 때문에 편견과 착각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반대로 수많은 상상들로 인해서 우리는 상상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적합한 인식, 공통개념을 형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상상이 ‘상상들의 경합의 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계속해서,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고 낯선 것들과 만나야 한다. 수많은 좌절 가운데 찰나의 성공이 있을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삶에 변용을 만든고 역동성을 부여하는 것은 흔히 말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로서의 상상력이 아니라 부단한 성찰을 지속해내는 성실함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2018. 10.4

  1. 2018.스피노자와 글쓰기 시즌1의 달팽이샘의 에세이를 바탕으로 정리 [본문으로]
  2. <에티카>, 2부 정리 13 [본문으로]
  3. 2부 정리 13과 정리 14 사이의 요청 3 [본문으로]
  4. 2부 정리 13과 정리 14 사이의 요청 5 [본문으로]
  5. 2부 정리 16 따름정리2 [본문으로]
  6. 2부 정리7 평행론 [본문으로]
  7. 2부 정리 17 주석 [본문으로]
  8. 2부 정리 35 주석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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