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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프롤레타리아트를 향한 마르크스의 외침

by 홍차영차 2016. 11. 28.

프롤레타리아트를 향한 마르크스의 외침

-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



1848년 혁명은 자본주의 경제공부를 시작한 맑스로 하여금 책상에서 나와서 지금 당장 혁명에 필요한 글들을 쓰도록 만들었다. 그만큼 1848년 혁명은 이전의 판들을 모두 뒤집어 엎을 것만 같은 분위기에서 만들어졌다. 엄청난 프롤레타리아트의 인원에 식겁한 귀족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압도적인 힘의 승리! 분명 그들은 “혁명적 지진의 순간에 빠리를 지배”했다. 자유, 평등, 우애를 기초로 한 프랑스 공화국의 선포했지만, 그 뿐이었다. 역설적으로 보통 선거권에 기초한 공화국의 선포와 더불어, 부르주아지를 2월 혁명으로 몰고 갔던 제한된 목적과 동기는 그 기억조차 사라져 버렸다. 프롤레타이라트는 임시 정부에게 그리고 임시 정부를 통해 프랑스 전국에 공화국을 명함으로써 즉각 독자적 당파로서 전면에 등장했지만, 이로써 동시에 부르주아적 프랑스 전체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 되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쟁취한 것을 그들의 혁명적 해방을 위한 투쟁의 지반이었을 뿐 결코 해방 자체는 아니었다.


부르주아적 노동 부처들과 나란히 서 있는 프롤레타리아트 노동부란 하나의 무력한 부처, 천진난만한 소망의 부처일 수밖에 없었다. 혁명을 승리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도리어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라는 공화국에서 다시 ‘황제’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혁명의 패배! 쓰러진 것은 2월 혁명 이전까지 혁명 당이 벗어나지 못했던 인물들, 환상들, 관념들, 계획들이었으며, 2월의 승리가 아닌 패배들이 이러한 것들로부터 혁명당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 혁명은 그 직접적이고 희비극적인 성과물을 통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결속되고 강력한 반혁명을 산출함으로써, 적을 산출함으로써 그 전진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맑스)


맑스는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을 것 같아보이는 절망적 상황인 1849년말과 1850년에 <프랑스에서의 계급 투쟁>을 썼다. 1789 프랑스 대혁명 이후, 1830년의 7월 혁명 이후 유럽 전역을 혁명의 분위기로 뒤덮었던 1848년의 2월 혁명. 분명 많은 노동자들은 혁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실제로 바꾸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2월 혁명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보면 현실은 마치 1789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바뀌었다. 이보다 더 큰 절망이 있을 수 없다. 누구도 여기에서 ‘다시 힘을 내자’고 ‘다시 한 번 혁명을 읽으키자’는 말을 언급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의 계급 투쟁>은 마르크스의 날카로운 정세 분석이지만 또한 이는 파리와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외침이기도 하다. “산업 부루주아지의 지배가 비로소 봉건 사회의 물질적 뿌리를 뽑아 내며, 프롤레타이라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을 다져 준다”는 말은 혁명의 단계론적 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 낙망 속에 있을 전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마음에 다시금 혁명의 불씨를 놓기 위한 그의 노력이다. 다시 한 번 인간적인 맑스를 보게 된다.



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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