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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그리스철학] 이소노미아(무지배)의 회복

by 홍차영차 2015. 6. 8.

무지배의 회복

- <철학의 기원> 가라타니 고진 -


가라타니 고진은 <철학의 기원>에서 그리스 철학에 새로운 관점을 던져준다. 그리스 철학은 항상 아테네 중심으로 논의되었고,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는 지금까지도 본받아야할 정치체제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고진은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에서 아테네 민주주의(democracy)와 다른 형태의 삶의 원리를 찾아내었다. 이소노미아(isonomia)가 바로 그것이다. 이소노미아는 법(nomos) 앞에서 동등한(isos)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고진은 이소노미아를 무지배, 비지배라는 말로 해석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이소노미아가 뜻하는 ‘법 앞에서 동등한’이라는 것은 지배의 한 형태라기보다는 ‘무지배’의 삶의 체계이다. 



이오니아 지방은 식민지 형태로 타지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이오니아는 혈연 중심의 씨족 전통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는 아테네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보다도 앞선 것이고, 고진은 여기에서 이소노미아(무지배)의 전제 조건을 발견했다. 이오니아에서는 독립 자영농민이 주를 이루었고, 대토지를 가진 소유자는 없었다. 일을 시킬 타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토지가 없는 자는 타인의 토지에서 일하기보다 다른 토지로 이동했다. 아테네, 스파르타와 달리 이오니아는 노예에 의지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어떤 폴리스에 불평등이나 지배-피지배가 생겨난다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된다. 고진이 보기에 이오니아에서 이소노미아 정신이 작동한 것은 바로 이런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혈연에 매이지 않고 자유 의지로 어디로나 나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있었기에 경제적 빈부 격차가 발생할 수 없었고, 그런 이유로 대중이나 한 개인의 지배가 아닌 이소모미아(무지배)가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고진이 말했듯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려면 ‘열린 공간’, 미국 서부개철 시대와 같은 프론티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공간은 벌써 고갈되어 버린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이소노미아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 대안으로 고진은 이제 물질적인 공간을 넘어서는 ‘아고라’를 새로운 대안으로 말하고 있다. 과연 아고라만으로 이소노미아를 구현할 수 있을까?

그 기원을 떠나서 민주주의(democracy)의 실질적인 문제를 계속해서 경험하는 지금 고진이 말하는 이소노미아는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가 말하는 무지배란 결국은 다양한 개개인의 욕망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소노미아’의 발생 자체가 혈연에 의지하지 않는 다양한 욕구를 가진 개인들이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으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현대 대의민주주의와 이어진다고 보면, 이오니아의 이소노미아는 분명 그것을 넘어서는, 고진이 제안한 ‘아고라’를 넘어서는 무엇을 찾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고진이 말하는 이소노미아는 자유와 평등이 상호 연동된 상태를 말한다. 이오니아의 이소노미아는 자유(로운이동)에 의해서 가능해지는 평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런 자유로운 이동이 계속해서 가능해지는 ‘열린 공간’이 중요해지는데, 고진아 제안하는 것처럼 무지배가 존재하는 아고라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사회 곳곳에서 무지배를 만날 수 있는 더 많은 공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공공 공간이라고 불리우는 대형 공원, 체육관, 학교시설, 미술관, 전시관, 공연장과 같은 다양한 곳에서 이소노미아의 원리가 통용될 수 있다면 어떨까? 소수만의 것으로 전락해버린 이런 공간들에 다시 생기를 찾아주는 것은 더 많은 제도와 법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 안에 있는 무체계성, 무지배성을 다시 회복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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