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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그리스철학] 용기, 기술이 아닌 훌륭함(덕)의 문제

by 홍차영차 2015. 1. 9.

용기, 기술이 아닌 훌륭함의 문제

라케스(LACHES)


예나 지금이나 부모들의 고민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바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울 수 있을까라는 문제. 하지만 현재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는 문제는 오직 더 높은 성적에만 초점이 몰려 있는 상황이다. 최초의 학교가 발생했던 플라톤 시대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 학교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대에 사람들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했는지 알게 된다면, 지금 우리가 중요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들을 조금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중무장 전투술은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배움인가

기원전 4세기 아테네 제국은 20년이 넘게 스파르타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당연히 이 시대 시민들은 언제든지 자신이 중무장 보병으로 전쟁에 나가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연스레 많은 이들이 전투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라케스>는 이런 시대적 상황을 가지고 대화를 시작한다.


                                     영화 <300>의 스파르타군 전투 장면


아테네 시민 뤼시마코스와 멜레시아스는 당시 유명한 장군이었던 니키아스와 라케스를 초청해서 중무장 전투술시범을 함께 본다. 이후 그들은 자신들이 장군들과 함께 이 시범을 본 이유를 말해준다. 즉 자신들은 온 힘을 다해서 자식들을 돌보기로 결심했는데, 자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하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중무장 전투술을 배우는 것이 자식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인지 문의한다.

이 질문에 대해서 니키아스와 라케스는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한다. 니키아스는 중무장 전투술을 배우게 되면 계속해서 전투대형, 장군의 지휘술 같은 앎에 대한 욕구가 생길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전장에서 아주 유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라케스는 실제 전투에서 중무장 전투술 덕을 본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이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배움이라고 주장한다.

니키아스와 라케스의 대답이 갈라지자, 질문자들은 함께 있었던 소크라테스에게 의견을 요청한다. 소크라테스가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말하면서. 이 때 소크라테스는 다른 대화편에서도 그랬듯이 이런 문제는 다수의 문제로 결정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중무장 전투술에서 용기의 문제로

소크라테스는 중무장 전투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 그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에 앞서 우리들이 찾는 그 이 무엇인가를 다시 점검하자고 제안한다. 중무장 전투술을 배우면 자식들이 훌륭해질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 - 소크라테스는 먼저 이 질문의 목적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방법과 목적을 혼돈하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이 문제의 핵심은 중무장 전투술이 필요한가라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자식들의 영혼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문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제 이 문제는 단순히 어떤 기술을 배울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훌륭함(arete, )에 관한 문제가 된다. 소크라테스는 덕 전체를 살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될 테니, 지금까지 논의했던 중무장 전투술이 지향하는 훌륭함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논하기로 다시 정리한다.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를 통해 토론에 참석한 모두가 덕은 절제, 정의, 용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 이제부터 함께 논의하는 덕은 용기의 문제로 좁혀진다.


용기, 앎인가 행동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용기란 무엇일까? 라케스와 니키아스는 이 문제에 대해 또 다시 다른 정의를 내린다. 델리온 전투에서 자신과 함께 싸웠던 경험을 언급하면서 소크라테스를 이 문제의 토론자로 적극 지지했던 라케스는 이렇게 정의한다. 대오를 지키면서 적들을 막아 내고자 도망치지 않는 것이라고.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리를 지키지 않고서도 용감하게 싸웠던 다양한 사례들을 들면서 좀 더 총체적이고, 일반적인 용기의 정의를 질문한다. 라케스는 영혼의 현명한 인내가 용기라고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소크라테스는 만족하지 못한다. 무서워서 싸우기를 참는 비겁한 인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적인 면을 강조했던 라케스와는 달리 니키아스는 용기를 지적인 측면으로 새롭게 정의한다. 그는 용기를 두려워할 것들과 대담하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앎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결국 모든 시점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에 관한 앎이 되고, 이것은 용기라기보다는 덕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 되어버린다. 결국 소크라테스를 포함해서 모두는 대화편이 끝날 때까지 처음에 제기했던 질문, 젊은이들의 영혼을 위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용기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확한 답을 찾지 못한다.

 

영혼을 성장시키는 방법과 현재적 용기

라케스와 니키아스가 말해주는 용기의 정의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모든 시민이 뛰어난 전사였던 스파르타가 아니더라도 다른 민족과의 전투가 일상적으로 벌어졌고 누구든지 전투에 참가하는 군인이 될 수 있었던 당시를 잘 반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정의는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니키아스와 라케스가 정의한 용기가 현재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까?

바로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라케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용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대화를 마무리 한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에 영혼을 성장시키는 방법의 핵심이 담겨있다. 소크라테스는 대화자들을 막다른 골목(aporia)으로 몰고 가서, 그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어떤 사실이나 기술을 아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의 영혼을 위해 중요한 점은 알고자 하는 마음이고,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소개했던 니키아스와 라케스의 용기는 현재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2000년이 넘는 시간적 거리를 가지고 있고 직접적인 전투가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이 고민한 용기에 대한 정의는 지금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자리를 지키면서 떠나지 않는 것(실천적인 면)은 무엇이고, 두려워할 것들과 대담하게 할 수 있는 것(이론적인 면)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이 대화편의 제목이 니키아스가 아니라 라케스가 된 것은 말(logos)이 범람하던 아테네 시대에 행동하고 직접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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