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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그리스철학] '엄친아'에게도 필요한 자기 배려!

by 홍차영차 2015. 11. 7.

엄친아에게도 필요한 자기 배려!

 

내가 알키비아데스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푸코의 책 <주체의 해석학>을 통해서였다. 푸코는 <주체의 해석학>에서 데카르트의 순간-‘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 이후 서구인들은 오직 인식만을 통해서 진실을 만나게 된다-이후 사라져 버린 자기 배려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푸코는 알키비아데스 1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대화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는 그리스 고대철학의 원리를 재조명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알키비아데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여러 명의 대화 상대 중에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플라톤의 대화편을 계속해서 읽다 보니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소크라테스와의 관계는 정말 어땠는지 더욱 더 호기심이 생겼다. 향연에서 나오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알키비아데스의 애증(?) 섞인 투정과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 나타난 알키비아데스의 흔적들로 인해서 그의 존재가 더욱 궁금해졌고, 마침내는 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플라톤의 대화편 <알키비아데스>를 읽게 되었다.

 

1. 아테네의 엄친아, 알키비아데스



  푸코는 왜 소크라테스의 핵심 철학-영혼에 대한 돌봄, 무지의 자각에 대한 강조-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그래서 위작이라고 논쟁[각주:1]이 되는 대화편에 알키비아데스를 선택한 것일까? 먼저 작품의 배경을 잠시 살펴보자. 다른 대화편과는 달리 알키비아데스 1는 아무런 대화 설정이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에게 대화를 건네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플라톤의 향연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당시의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관계는 아테네의 누구라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나와 있듯이 소크라테스가 기소되어 사형을 당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인데, 소크라테스가 타락시킨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되던 이가 바로 알키비아데스였다.이런 배경을 생각해 보면 알키비아데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먼저 알키비아데스의 생애를 살펴보자. 그는 거의 '완벽한 외적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외모가 출중해서 아테네의 뭇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이후에는 그리스 여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를 여리고 심약한 모습으로 상상해서는 안 된다. 그는 운동경기에서도 뛰어난 모습을 보였는데, 기원전 416년경의 올림피아에서는 7대의 마차를 출전시켜 1, 2, 4등을 차지하기도 했다.[각주:2] 지금으로 치자면 노래와 연기, 그리고 체육까지 만능인 아이돌을 상상하면 비슷하지 않을까?

  이 뿐만이 아니다. 그의 가문 역시 아테네에서 가장 훌륭한 집안중의 하나에 속하였다. 예로 어머니인 데이노마케의 조부는 기원전 510년경 당시 참주였던 히피아스를 몰아내고 아테네 민주정의 기초를 확립한 클레이스테네스였다. 당연하게 그의 가문은 알키비아데스가 사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아버지를 살펴보면 그는 전쟁 영웅으로서 전쟁터에서 알키비아데스의 나이 세 살 때 죽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 후에 당대의 대정치가이자 친척이었던 페리클레스-기원전 460년에서 죽을 때(기원전429)까지 아테네의 민주주의, 아테네의 제국을 전성기로 이끌었던 정치가-가 그의 후견인이 되어서 가문의 명성과 부를 배경으로 누가 보더라도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의 상류층 일원을 상상한다고 해도 그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인물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엄친아계의 엄친아, 알키비아데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의문이 생긴다. 소크라테스는 왜 이런 완벽한 환경을 가진 알키비아데스를 통해서 자기를 돌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고 했을까? 아니, 이렇게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외적 환경을 가진 알키비아데스에게 더 필요한 돌볼 것이 남아 있단 말인가? 현재의 우리들이 그토록 바라는 것은 바로 알키비아데스가 가지고 태어난 가문, 외모, 재산과 권력이 아닌가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환상적인 조건을 가진 알키비아데스에게 자기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 자기 배려의 시작 무지(無知)의 무지(無知)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에게 대화를 시도했을 때, 그는 천부적인 자질과 배경을 바탕으로 모든 일에 굉장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그는 자신의 후견인 페리클레스처럼 혹은 그보다도 더 위대한 정치가가 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조만간 정치의 무대에 뛰어들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상상할 수 있듯이 이런 자만으로 가득 찬 청년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를 만난 후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제가 가능한 한 가장 훌륭한 자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제가 아무것도 없으며, 이 일에 있어서 저를 도와 줄 사람으로 선생님(소크라테스)보다 더 권위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없다고 전 생각합니다.”(향연, 218d) 타고난 재능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알키비아데스는 어떻게 이런 겸손한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가 언급한 훌륭한 자가 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알키비아데스와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과 정치적인 야망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철학으로 나아갈 것을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강요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의도하는 부분으로 대화를 바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대화 상대방인 알키비아데스가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를 시작해 나갔다. 즉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가 현재 희망하는 일들-정치적인 성공-은 친족과 페리클레스와 같은 후견인을 비롯하여 누가 도와주더라도 자신 없이는 성취해 낼 수 없다고 장담하면서 말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좀 황당하지 않았을까? 그의 배경과 재능을 생각해 보면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 당연할 텐데, 소크라테스 자신이 없이는 아무 일도 성취해 낼 수 없다고 말하다니!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다소의 충격과 호기심으로 반응했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모르는 비법을 알려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화를 이어갔을 것이다.

  산파술이라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보면 대화 초반에는 상대방의 논리를 논박하는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다. 왜냐하면 대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본질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무지(無知)에 대한 무지(無知)를 깨달게 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로 핵심이 있다. 무지에 대한 무지! 알키비아데스는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정치, 훌륭함)에 대해서 소크라테스와 이야기 하면서 실상은 자신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 비로소 철학함의 과정, 자기배려가 시작되는 것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를 통해서 처음으로 재산, 명예, 권력, 가문과 같은 옷을 벗어 버리고 알몸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알키비아데스는 그의 외적인 환경이 너무나 황홀하게 빛나고 있어서 이제까지 그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자기 배려를 할 수가 없었다.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정치가 무엇인지, 올바름이란 어떤 것인지 한 꺼풀만 벗기고 들어가 보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알키비아데스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 마련해 놓은 정답을 그것이 왜 정답인지에 대해 아무런 비판적 성찰 없이 받아들이고 따랐던 것이다. 향연에 나오는 알키비아데스의 고백은 바로 이런 상황을 통해서 나왔던 것. 지금 알키비아데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외적인 환경을 의지해서 정치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전에 먼저 자신을 돌보는 것, 자신의 영혼을 살피는 것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3. 누구에게나 필요한 자기 배려!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어느 한 순간의 인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단회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데카르트의 주체인식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말을 개인적인 자기변형과 상관없는 자기인식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자기배려는 오직 인식만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지의 무지를 통한 자기인식을 통해서 자기배려가 시작되는 것이고, 지속적인 자기수련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에 점진적 변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자기배려는 어떤 것을 준비하는 특정 기간에만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서 전 생애를 통해서 계속되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자기 자신의 삶의 형태를 실험하고 모색하고 변경해가는 과정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를 만난 알키비아데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역사에 나타난 알키비아데스는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생을 마감했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를 만난 이후에 그를 따르고 그가 권하는 철학과 삶의 방식에 열중했다고 하지만 자신을 충분히 연마하고 정치에 나서라는 소크라테스의 충고를 끝내 지키지 못하고 정치에 뛰어들게 된다. 그는 정치 입문 초기 가문의 후광과 타고난 재능으로 성공하며 전쟁에서도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결국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배신 가운데에서 타국에서 살해당하며 삶을 마감했다. 펠레폰네소스전쟁사에 나오는 투퀴디데스의 말이 그의 인생을 잘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아테네 민중들은 알키비아데스의 상식을 넘어선 사생활의 문란함과 무도함, 기회 있을 때마다 행동으로 보여 준 야망의 크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가 독재자가 될 야심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는 그에게 적대적이 되었다. 비록 그가 공적으로는 최고의 장군이었으나 사적으로는 민중들 개개인이 그가 하는 일에 염증을 냈기 때문에 그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아테네의 운명을 맡겼다. 그리고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아테네는 패망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6154

 

  알키비아데스의 삶을 보게 되면 만약 그가 이런 자기배려의 모습을 지속했더라면 그의 삶과 아테네는 어땠을까 라는 역사 속 상상을 해보게 된다. 지금까지 아테네의 엄친아라고 할 수 있는 알키비아데스에게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이 필요한 이유를 확인했다. 또한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알키비아데스가 가졌던 외적 조건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니 그러한 완벽하다고 여겨지는 조건들로 인해서 알키비아데스는 자신을 돌보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고 그렇기에 그에게는 더욱 더 자기 배려가 필요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알키비아데스만이 자기 배려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자신을 돌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멋진 외모, 재산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선망하는 외적인 환경-재산, 외모, 가문, 재능-을 차고 넘치게 가지고 있었던 알키비아데스에게 필요한 자기 배려. 사실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1. <알키비아데스>는 플라톤 철학의 초기, 중기, 후기의 개념들이 함께 사용되어 있다는 이유로 플라톤 이후 다른 사람의 작품일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 [본문으로]
  2. 전차경주는 그가 운동에도 소질이 있다는 것뿐 아니라, 7대의 마차를 출전시킬만큼 부유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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