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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그리스철학]덕(arete)의 충돌

by 홍차영차 2015. 2. 26.

(arete)의 충돌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플라톤 대화편 <프로타고라스>의 핵심은 (arete)이란 무엇인가이다대화는 주로 당대 최고의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를 통해 이루어지는데두 사람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대화하면서 대립을 일으킨다이런 대립이 일어나는 이유는 두 사람이 덕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좀 더 살펴보기 전에 이러한 생각의 대립이 왜 발생했는지 당시의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헤라클레스와 생각하는 사람


영혼을 위한 배울 거리

   덕은 훌륭함에 대한 것인데이에 대한 논쟁이 발생한다는 것은 무엇이 훌륭한 것인지에 대해 사람들마다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호메로스의 시대에서는 주로 영웅이나 귀족들의 덕이 칭송되었고이는 주로 용기()에 대한 문제였다하지만 페르시아 전쟁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더 이상 전쟁은 개개인의 능력에 좌우되기보다는 집단적인 협동심이 중요하게 되었고페르시아 전쟁의 승패를 가른 살라미스 해전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참여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이제 덕은 영웅들만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 전체를 포함하는 것으로 변해야만 했다. 시민들 각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서 덕을 찾아야 했고많은 소피스트들은 귀족의 덕과는 다른 자신만의 덕을 선전하고 전파하고자했다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청년 히포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를 찾아와 당대 최고의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를 함께 만나러 가기를 청한다.

   소크라테스 역시 프로타고라스와의 대화가 유익하다고 생각했지만우선은 히포크라테스와 대화를 시작한다히포크라테스는 왜 프로타고라스를 만나고 싶은지그리고 그는 히포크라테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자고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플라톤 대화편처럼 히포크라테스는 정확하게 그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난관에 봉착한다히포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와의 대화를 통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자신의 영혼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정작 프로타고라스가 자신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함을 소크라테스에게 토로한다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먹는 것을 구할 때와는 다르게 배울 거리를 구입할 때는 매우 주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먹을 것을 사올 때는 그릇에 담아오지만배울 거리를 담아올 때는 자신의 영혼에 담아 와야 하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한다이후 소크라테스와 히포크라테스는 곧바로 프로타고라스가 머물고 있는 칼리아스의 집으로 향한다.

 

덕은 가르칠 수 없다! - 소크라테스

   칼리아스의 집에서 소크라테스는 히포크라테스를 대신해서 프로타고라스와의 대화를 시작한다프로타고라스와 함께 있으면 히포크라테스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의 문제를 시작으로프로타고라스는 자신을 소피스트(sophistes, 지혜를 사랑하는 자)’이며 교육하는 자라고 소개한다또한 자신과 함께한다면 시민적 기술(politike techne)인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주장한다여기서 말하는 시민적 기술은 정치적 기술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앞서 언급한대로 당시 아테네는 시민의 정치참여가 자유로워진 상태였다자연스럽게 정치적 기술은 아테네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훌륭한 지도자 혹은 훌륭한 시민이 되는데 모두가 배워야할 덕목이었다.

   바로 여기서 둘 사이의 논쟁이 발생한다소크라테스에게 시민적 기술은 덕이고덕이란 가르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소크라테스는 주장하기를 건축할 때는 건축가의 조언음악에는 연주자의 조언을 받지만 나라와 가정의 경영과 같은 영역()에서는 배우지 않은 모두가 조언할 수 있다고 말한다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건축이나 가죽공과 같은 직업적 기술(지식)과 달리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을 기초로 하는 덕은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또한 우리가 위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예를 들어 페리클레스와 같은 자들을 가리키며 그의 아들은 페리클레스처럼 위대하기 보다는 지극히 평범하다는 것을 지적한다만일 덕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면 왜 그는 자식들을 위대해지도록 가르치지 않을까라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의 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을 기초한다.

 

덕은 가르칠 수 있다! 프로타고라스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완전한 소크라테스의 승리를 예상하겠지만 대화는 그렇게 쉽게 결판나지 않는다프로타고라스 역시 당대 최고의 소피스트로서 소크라테스 못지않은 논증을 펼쳐낸다우선 그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통해서 기술적 지혜()와는 다르게 시민적 기술은 제우스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분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필멸의 종족인 인간이 다른 짐승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라를 구성해야했고이런 이유로 모든 사람이 함께 살 수 있는 시민적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이런 신화 이야기를 전제하면서 덕은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첫째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덕을 돌보는 일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것가정은 자식들에게 좀 더 나은 배움을 위해서 노력하며이후에는 학교와 나라의 법을 통해서 자식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시도한다덕이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면 이런 모든 노력들은 무엇 때문에 하는 걸까그리고 누군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우리는 징계를 하게 되는데 잘못에 대한 처벌 이외에 우리는 처벌 받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징계를 통해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그렇지 않다면 징계는 매우 잔인한 보상 방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아버지와 평범한 아들에 대한 프로타고라스의 논증 역시 매우 논리적이다프로타고라스는 시민적 기술(politike techne) 역시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재능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모든 시민들에게 아울로스 연주를 가르친다고 할 때위대한 연주자의 아들이 필연적으로 위대한 연주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다시 말해 평범한 사람의 자식이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아울로스 연주자의 아들보다 뛰어난 연주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덕에 대한 배움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기에 가르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다시 말해 모국어를 배울 때 거의 모든 사람이 선생이 되기 때문에 그리스어 선생이 따로 보이지 않는 것처럼덕을 가르치는 사람 역시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말한다.

 

덕이란 무엇인가 기술 vs 지혜

   플라톤 대화편에 많은 소피스트들이 나오는데 이렇게까지 멋진 논리로 대화를 이어갔던 소피스트는 없었던 것 같다프로타고라스가 이처럼 당대 최고의 소피스트이고논리적이며 설득력 있는 대화술을 보여주고 있지만 소크라테스와는 계속해서 대립할 수밖에 없는데이는 바로 덕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이다프로타고라스에게 있어서는 정치적 기술(역시 직업적 기술과 마찬가지로 지식/정보의 획득(구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하지만 소크라테스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politike techne)은 다른 어떤 사실(지식/정보)를 얻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자신에 대한 앎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이러한 대립은 바로 이어지는 덕의 단일성 문제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난다.

   소크라테스는 덕은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프로타고라스의 논증이 매우 설득력 있었음을 고백하면서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덕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과연 덕이란 무엇인가라고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덕이란 한 가지인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인지 아니면 여럿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 것인지이에 프로타고라스는 덕이란 얼굴 전체와 부분처럼 구성되어 있다고 대답한다즉 덕은 정의분별경건지혜용기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고이는 덕의 부분이라는 것이다하지만 이런 프로타고라스의 대답은 조금 허술해 보인다정의경건이 다른 것이라면 경건한 것은 정의롭지 않은 종류이고정의로운 것은 불경건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니까.

   소크라테스의 반론에 프로타고라스는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지만 좋은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즉 사람들에게는 해가 되지만 다른 것에는 이득이 되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예를 들어 퇴비의 경우 식물의 뿌리에 뿌려주면 이로운 것이지만새순이나 어린 가지에 준다면 해가 된다는 것프로타고라스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자 소크라테스는 이런 방식으로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고 대화를 중단해 버린다소크라테스 자신은 이런 방식의 긴 이야기는 능숙하지 못하니간단하게 말하는 방식으로 대화하지 않는다면 대화를 할 수 없다고그러면서 자신은 마라톤 선수처럼 긴 거리를 빠르게 달릴 수 없지만반대로 마라톤 선수라면 속력을 늦춰서 자신의 속도에 맞춰줄 수 있다고 말한다.


덕의 충돌- 인간은 만물의 척도 vs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중단하는 이유는 궤변적이지만이러한 대립이 일어나는 이유는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덕에 대한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다프로타고라스는 덕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말했지만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덕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덕을 정의분별경건지혜용기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모든 덕은 지혜(자기 자신에 대한 앎)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프로타고라스와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를 새로 해석하는 소크라테스의 대립을 보여준다즉 영웅으로 대표되던 상고시대의 덕(용기)에서 건축가의 덕가죽장이의 덕과 같은 개개인의 직업적 기술로 변해버린 상황의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상대성 Relativity>, 에셔, 1953


   인간 개개인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주장하는 프로타고라스의 상대주의는 지금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어쩌면 이런 상대주의를 극한으로 밀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영웅의 시대에서 시민의 시대로 바뀌면서 덕에 대한 개념도 변화가 있었다그렇다면 그리스 사람들처럼 무엇을 덕이라고 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소크라테스가 던지는 질문을 다시 숙고하는 것은 지금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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