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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계보학 - 니체 사상의 모든 것 동정과 동정 도덕의 가치에 관한 이러한 문제는 처음에는 단지 개별적인 문제, 의문부호 자체로 보일 뿐이다. 그러나 한번 이 문제에 매달려 의문을 던지는 것을 배운 사람은, 내게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일이 그에게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 어마어마하게 새로운 전망이 그에게 열리고 하나의 가능성이 현기증처럼 그를 사로잡으며, 온갖 불신, 의혹, 공포가 솟아올라 도덕에 대한, 모든 도덕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 마침내 새로운 요구가 들리게 된다. (니체 서문 344쪽)​오늘 새벽 낭독 여섯번째 텍스트인 를 다 읽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읽었다. 다 읽었는데 뭔가 좀 찜찜하다. 읽었는데 읽은것 같지 않은 느낌이랄까. 왜냐하면 이 책은 - 함께 낭독했던 친구들도 말했듯이 -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서 낭독성이 .. 2024. 7. 31.
'소수적인' 문학과 소설의 종말 "사실 문학 자체가 본래적으로 소수적인 것이지 않은가?"  들뢰즈/가타리의 카프카(1883~1924) 논의를 따라가다보니 자연스레 '소설의 종말'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표현만이 우리에게 방법을 제공한다."라고 말하면서 카프카 스스로가 문학-기계, 표현-기계가 되었던 것도 '소설의 종말'관 연결해보면 자연스러운 귀착으로 보였다. 동물들이 주인공이지만 결코 현실과 유리되지 않는 소설, 내용보다는 표현 자체를 통해서 말하려는 카프카. 카프카는 왜 그렇게 다른 표현에 집착했을까? 소설의 종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 특히 프랑스인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동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는 어불성설이나 다름없다. 책꽂이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을 꽂아놓고 어떻게.. 2024. 7. 10.
증명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은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다 9장 제목은 '고귀함이란 무엇인가'이다. 니체의 다른 어떤 책을 보더라도 이보다 더 명확하게(?) 고귀한 것에 대해 말해주는 텍스트는 없다. 여기서 고귀한 자란, 강자, 위버멘쉬, 차라투스트라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알듯말듯한 비유를 통해서 말하던 니체는 이곳에서 너무나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니체가 묘사하는 고귀한 자, 주인도덕의 모습은 점 당황스럽다. 여기에는 이전의 어떤 근거도 없고 논증도 없다. 선언, 선포만 있을 뿐이다.​"소크라테스와 더불어 그리스 취향은 변증법에 유리하게 돌변했다 : 그때 진정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무엇보다도 고귀한 취향이 정복되었다 : 천민이 변증법을 수단으로 삼아 상부로 올라섰다. 소크라테스 이전에는 변증법적인 수법이란 것은 건전한 사회에서는 거부되었다;.. 2024. 7. 8.
감각도 새로운 것을 적대시하고 혐오한다 세계는 텍스트이고, 세계는 그 자체로 오류다. 의식은 거짓이고 의식적 사유란 타락이자 위조이다. 그리고 의식은 질병이다.​니체가 하는 말을 읽고 있으면 이 말이 단순한 비유인지 진짜 세계가 오류라고 생각하는건지 헷갈릴때가 많다. 또한 이런말을 믿게 되면 내가 사는 세계에 대한 의심이 생기도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불확실하게 느낀다. 니체를 읽게 되면서 더욱 불안하고 혼돈 속에 있게 되는 이유다. 당연하게도 니체가 원한 것은 우리의 불안이 아니다. 혼돈 속에서 절망하면서 사는 것은 바라는 것도 아니다. 니체는 그저 세계와 자신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자신이 파악하고 경험한 대로 살아가는 자유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 출발은 바로 내가 경험하는 세계와 자기라고 믿고 있는 것이 대부분 오류이고 위조.. 2024. 6. 19.
위대한 사냥, 위험한 사냥터 - 의지의 심리학 '선악의 저편'은 블루오션이다.​이전에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광대한 영역이고, 거기서 사냥할 것들은 무한하다. 학자들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들이 지금까지 갈고 닦은 시각과 후각은 이 지역에서는 쓸모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술은 이 지역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힘에의 의지, 무의식적 주체, 충동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이성적 감각으로는 보이지 않고, 인과적 사고로서는 추론할 수 없다. 새로운 감각과 시선이 필요하다. 한 번도 체혐해보지 못한 것들이기에 위험하고 상처를 입고 고통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곳에서 얻을 사냥감(보물들)에 비교할 수는 없다. 블루 오션! 수백의 몰이꾼과 사냥개가 필요한 이유다. ​미래의 철학자들, 자유정신의 소유자들에게 이곳은 '위대한 사냥터'.. 2024. 6. 16.
책의 시각적 형태가 사고방식에 주는 영향 (feat. 각주) 이전에 썼던 ​낭독의 사유와 묵독의 사고라는 글에서 낭독과 묵독의 차이에 대해서 말했다. 그때도 낭독과 묵독의 차이를 조금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은유와 경구들로 가득한 에 이어서 연속으로 이라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두 책이 서로 다른 출판사였다는 것도 큰 이유였다. 에는 박찬국이라는 번역자의 각주가 양적으로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오늘 처음으로 을 낭독했는데, 이전과 달리 읽는데 뭔가 좀 서걱서걱하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이전에 읽었던 텍스트가 이기도 했고, 과는 다른 출판사의 번역본으로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881)은 니체의 사상의 연대기로 보면 중기 초반에 쓰여진 책이고, (1889)은 이후에 쓰여진 책이다.내용이나 문체(style)로 보더라도 은 직관적 사고에 가까.. 2024. 6. 10.
2024 양평문화재단 길위의인문학 - 예술의 정치로 읽는 그리스 비극 2024. 6.27(목)부터 양평문화재단에서 길위의인문학을 진행합니다."예술의 정치로 읽는 그리스 비극" 그리스 비극이라고 했지만, 호메로스의 부터 3대 그리스 비극작가를 거쳐서 소크라테스까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총 14회, 중간에 3회는 음악감독의 영화음악분석이 있고, 1회는 미술관탐방하여 작품 감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소개:"현재 우리는 말만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명료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체적인 감각과 몸의 사유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신체적인 사유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다만 너무 오랜 가뭄에 비틀어진 나무처럼 이성적 과학적 통계적인 논리에 메말라버렸을 뿐입니다. 현재와 비슷하게 말(logos)이 넘쳐나는 시대였던 그리스 시대(호메로스-그리스 비.. 2024. 6. 8.
사물과 대화를 시작해봅시다 숲속을 산책한다.계속 걷다보면 어느 순간 나무가 말을 걸어온다.나무가 전하는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면 불안은 사라지고근심걱정의 무게도 줄어든다.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러한 정신공간은 지금 인정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믿어주는 척하면서 센치하다고 말할뿐이다. 조금 더 진진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정신과에 가볼것을 권유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오로지 인간만이 생각한다고 믿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렇게 인간만이 정신적인 것을 가졌다고 말하는 순간 삶은 점점 더 왜소해지고, 타자(사물)과의 관계 역시 더 어려워진다. 우리는 이제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도 시선을 느낀다. 책장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고, 기하학적 무늬의 벽이 나를 감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건 그냥 벽일 뿐이야!.. 2024. 5. 31.
"육지"는 이제 없다 ""육지"는 이제 없다."라는 문장이 현재 우리의 마주한 상황을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 같다. 니체를 읽다보면 들뢰즈가 리좀적 사유나 기관없는신체, 노마드와 같은 개념을 말한 이야가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된다. 리좀적 주체로 살기는 너무 어려운 것 아닌가? 기관없는신체가 되라는 것은 '나'로서 살지 말라는 것 아닌가? 부랑자처럼 살아갈 수 없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런 불평은 마치 돌아갈 "육지"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향수'에 사로잡힌 것과 같다는 것.​"가장 성스럽고 강력한 자"를 죽이고 나서 "신은 죽었다"라고 자유를 외쳤을지 모르지만 실상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지평선"을 지워버린 것이고, 태양으로부터 벗어난 지구에 타고 살게 된 상황이다. "누가 우리에게서 이 피를 씻어줄 것인가? 어떤 물.. 2024. 5. 29.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도록 광기를 주소서! 은 말 그대로 서광(曙光), 새벽 동틀 무렵의 빛을 말하는데 직접 경험해보면 아침놀의 느낌은 저녁놀과 상당히 흡사하다. 그래서 아침놀을 맞이할 때는 이제 하루가 끝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혼란스럽게 느끼기도 한다. 이럴 때 다시 한 번 힘을 내야 한다. 더 이상 힘을 낼 수 없고 어둠이 걷히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만이 가득찬 것 같은 순간! '아침놀'은 이제 막 깨어난 새벽이다. ​은 1881년쯤에 씌어졌는데, 니체의 첫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1874), (1875)을 쓰고서도 몇 년이 지난 후이고 바그너와도 완전히 결별하고 자신의 질문을 명확히 갖고서 자신만의 대답을 하려는 첫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만큼 아주 힘차고 강렬하며 말에 냉기가 느껴질만큼 충격적이기도 하다.서문을 보면 자신이 .. 2024. 5. 28.
하나의 '질병'으로서 의식 첨언이 필요 없는 글이 있다. 니체의 354번이 그 중 하나다. 옮겨적다보니 전체의 반 이상을 그대로 발췌했다. 이성적인 생각이라는 의식은 "스스로를-의식하게-되는것"이다. 슬쩍 살펴보면 의식을 갖는다는 것, 의식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자신의 특성을 점점 더 잘 알게 되면서 정체성을 갖는 개인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역설이 들어있다. 분명히 의식적이 되는 것은 '개인'이 되어가는 과정이지만 정반대로 의식적이 될 수밖에 없던 압력은 우리들이 너무나도 '집단적'이기 때문에 발생했다.​우리의 의식은 언어(문자)와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고, 비슷한 발전 과정을 거쳐왔다.우리는 원래 단어가 의미하는 그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의욕하고 기억하며 행동할 수 있었다. 아니 조금 근본적으로 우리는 단어 없.. 2024. 5. 25.
사유 안에서 행사된 폭력 진리는 결코 미리 전제된 선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사유 안에서 행사된 폭력의 결과이다. - 이것만큼 프루스트가 강조한 테마는 거의 없다. … 진리는 어떤 사물과의 마주침에 의존하는데, 이 마주침은 우리에게 사유하도록 강요하고 참된 것을 찾도록 강요한다. 마주침의 [속성인] 우연과 강요의 [속성인] 압력은 프루스트의 두 가지 근본적인 테마이다. 대상을 우연히 마주친 대상이게끔 하는 것,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 - 이것이 바로 기호이다.사유된 것의 필연성을 보장하는 것은 마주침의 우연성이다. 질 들뢰즈 41쪽​  사유란 기호와의 우연한 마주침이자 폭력의 결과라는 것을 오늘 아침 새삼스럽게 경험했다.새벽낭독을 함께 하고 있는 한 분이 후기를 쓰시면서 김영민샘의 에 나오는 한 구절을 언급했다. 오랜만에.. 2024. 5. 22.
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124 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 우리는 태양이 솟아오를 때 방에서 나와 “나는 태양이 뜨기를 원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비웃는다. 그리고 우리는 바퀴를 멈출 수 없으면서도 “나는 바퀴가 구르기를 원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비웃는다. 그리고 우리는 격투에서 져 쓰러져 있는 사람이 “나는 여기에 누워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해서 누워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비웃는다. 우리는 이렇게 비웃지만, 우리가 ‘나는 원한다’라는 말을 사용할 때 저 세 사람과 다른 의미로 그 말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는가? (니체 142쪽)   마당이 있어서 좋은 점은 뭔가를 불태울 수 있다는 것.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마을마다 절기마다 뭔가를 태우는 의례가 있었다. 논에 남은 풀들을 불태우기도 하고, 쥐불놀이를 하면서 .. 2024. 5. 12.
[PS] 정말 예술의 기호는 다른 모든 기호들보다 우월한가? 4, 5장을 계속해서 보다보면 예술에 대한 특권, 그것도 절대적인 특권을 언급하는 들뢰즈에 살짝 의심이 들기도 한다.예술만이 비물질적이라고 하고, 여전히 물질적이라고 여전히 삶의 기호들이라고 하면서 감각적 기호들을 폄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유물론적인 사고를 부인하는 걸까? 또한 예술 기호를 이야기하면서 계속해서 차이 그 자체가 예술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차이 그 자체를 강조하던 들뢰즈가 여기서 왜 갑자기 본질, 본질 하는 걸까? 예술이 본질 그 자체라는 말이 도대체 뭘까? 동일성이 아닌 본질로서의 차이 그 자체.​일단 예술의 기호로 넘어가는 징검돌로서의 감각적 기호를 발견해야 한다.평생을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비자발적 기억과 마주친다. 달리던 기차에서 우연하게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의.. 2024. 5. 2.
[PS] 들뢰즈는 왜 '프루스트'와 '기호들'에 주목했을까 들뢰즈는 왜 기호들에, 프루스트에 집착하는 걸까?사실 처음 (PS)를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뜬금없이 에는 4가지 기호들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기준을 가지고 4가지 기호들에 대해서 말한다. 사교계의 기호, 사랑의 기호, 감각적 기호, 예술 기호! -.-;갑작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고, 뜬금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기호들은 모두 프루스트의 에 대한 여러번의 탐독을 통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들뢰즈는 프루스트의 소설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보았길래 10년동안이나 계속해서 그의 소설을 다시 읽고 또 자신의 책을 쓰고 다시 쓰는 작업을 했을까?​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지만 먼저 결론을 내려본다면 들뢰즈는 프루스트의 소설 속에서 현재까지의 사유와 다른.. 2024. 5. 2.
[PS] - 비표상적 사유로의 탐색 들뢰즈 (PS) 1,2,3장을 읽으면서 작성한 정리 및 메모  비표상적 사유로의 탐색 ​​우선 책의 전체 구조를 살펴보자. ‘기호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1부는 제목 그대로 다양한 기호들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표상적 사유와 다른 사유의 이미지를 탐구한다. 처음 이 책이 나온 것은 1964년이지만 계속해서 다시 쓰면서 2부까지 늘어났다. 역자(이진경) 말대로 이 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점점 더 증식해갔다. 이 쓰여진 기간을 보면 주저라고 할 수 있는 1968년의 부터 1980년의 까지 연결되어 있다. 말 그대로 들뢰즈는 여러번에 걸친 ‘프루스트 읽기’를 통해서 지금과 다른 ‘사유의 방식’을 탐구하고 조명했다. 2부는 ‘문학기계’라는 제목을 갖고 있고 서문에 ‘기호들의 증식과 생산’이라고 쓰여져 있지만 1976.. 2024. 5. 2.
니체의 신약성서 해석 지하로 파고들어간 니체가 처음으로 마주친 것은 기독교라는 바위였다.어마어마한 두께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를 가진 기독교라는 토대를 부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갈 수 없었다. 다른 도덕들과 기준들도 인간을 옭아매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종교로서의 기독교였으니까. 니체는 여기서 유럽의 근원적인 도덕으로, 절대적인 도덕으로 여겨지는 기독교 교리를 깊이있고 세심하게 다룬다. 니체는 할아버지부터 목사였던 목사집안이었고, 니체가 어릴적부터 공부했던 것 역시 신학이었다.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또한 개인적으로도 이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었다. "최초의 기독교인"이라는 제목을 가진 68번은 바울신학의 요약이자 현재 기독교 교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신학적으로 보여준다. (.. 2024. 5. 2.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도록 광기를 주소서! 오늘부터 을 읽기 시작했다.다행히 이번에는 세분이나 신청해서 나를 포함해서 4명이 함께 을 읽어나갈 예정이다. https://cafe.naver.com/afterworklab/924 은 말 그대로 서광(曙光), 새벽 동틀 무렵의 빛을 말하는데 직접 경험해보면 아침놀의 느낌은 저녁놀과 상당히 흡사하다. 그래서 아침놀을 맞이할 때는 이제 하루가 끝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혼란스럽게 느끼기도 한다. 이럴 때 다시 한 번 힘을 내야 한다. 더 이상 힘을 낼 수 없고 어둠이 걷히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만이 가득찬 것 같은 순간! '아침놀'은 이제 막 깨어난 새벽이다.  은 1881년쯤에 씌어졌는데, 니체의 첫 저작이라고 할 수 있는 (1874), (1875)을 쓰고서도 몇 년이 지난 후이고 바그너와도 완전.. 2024.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