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 9장 제목은 '고귀함이란 무엇인가'이다. 니체의 다른 어떤 책을 보더라도 이보다 더 명확하게(?) 고귀한 것에 대해 말해주는 텍스트는 없다. 여기서 고귀한 자란, 강자, 위버멘쉬, 차라투스트라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알듯말듯한 비유를 통해서 말하던 니체는 이곳에서 너무나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니체가 묘사하는 고귀한 자, 주인도덕의 모습은 점 당황스럽다. 여기에는 이전의 어떤 근거도 없고 논증도 없다. 선언, 선포만 있을 뿐이다.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그리스 취향은 변증법에 유리하게 돌변했다 : 그때 진정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무엇보다도 고귀한 취향이 정복되었다 : 천민이 변증법을 수단으로 삼아 상부로 올라섰다. 소크라테스 이전에는 변증법적인 수법이란 것은 건전한 사회에서는 거부되었다; 이것은 나쁜 수법으로 간주되었고 조롱받았다. ... 품위 있는 사람이 그러하듯 품위 있는 것들은 자신의 근거를 그런 식으로 내세우지 않는 법이다. ... 스스로를 먼저 입증시켜야만 하는 것은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다. ... 다른 수단이 없을 경우에만 변증법이 선택된다. 변증법으로 인해 불신이 조장된다는 것, 변증법이 설득력이 거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을 알고 있는 것이다."(<우상의 황혼> 책세상 90~91쪽)
니체(의 텍스트)를 읽는 어려움이자 또한 가장 큰 특징이다.
"니체의 텍스트는 결코 변증법적이지 않다. ... 니체는 자신을 변증법적 성격이나 변증법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드러내는 사상가"이다. (<알랭 바디우 세미나 : 니체> 22~23) 변증법이라는 것은 이성을 토대로 하며 곧이어 변증법은 문자적인 정신공간에서 태어난 기술이다. 구술성의 세계에, 신화적 정신공간에 변증법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선악에 저편'에서 태어날 고귀한 자들의 덕은 그저 선언될 뿐이다. "충만한 느낌, 넘쳐흐르려고 하는 힘의 느낌, 고도의 긴장에서 오는 행복함, 베풀어주고 싶어하는 풍요로움"만이 고귀한 자들의 도덕이다. 도와준다거나 해준다(service)는 개념은 없다. 오로지 "넘쳐나는 힘에서 비롯된 충동"으로 행할 뿐이다.
한 마디로 고귀한 자는 "고귀한 행위"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고귀한 행위에 앞서 고귀한 인간이 먼저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긍지로 넘치는 자, 그가 바로 고귀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가 하는 모든 행위는 고귀한 행위라고 이름붙는다. 어떤 규범을 따르는 자가 아니라 고귀한 인간이 먼저라니!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역시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증명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은 별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계속해서 변증법적인 이야기, 핑계는 대는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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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고대 그리스에서 귀족들은 자신들을 ‘우리 진실된 자들’이라고 불렀다. 어디에서든 도덕적인 가치 표시가 먼저 인간에게 붙여지고 나중에 비로소 파생된 방식으로 행위에 붙여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 고귀한 종류의 인간은 자신을 가치를 규정하는 자라고 느끼기 때문에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363
... 그는 가치를 창조하는 자다. 그는 자신에게 속하는 것을 존중한다. 그러한 도덕은 자기에 대한 친미다. 충만한 느낌, 넘쳐흐르려고 하는 힘의 느낌, 고도의 긴장에서 오는 행복감, 베풀어주고 싶어하는 풍요로움의 느낌이 그런 도덕의 전경에 드러나 있다.
고귀한 인간도 불행한 자를 돕지만 동정에서가 아니라 넘쳐나는 힘에서 비롯된 충동에서 돕는다. 고귀한 자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강력한 자를 존중하는바, 이 강력한 자란 자신을 제어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말하고 침묵하는 법을 알고 있고, 자기 자신을 엄격하고 혹독하게 다루는 데서 기쁨을 느끼며, 엄격하고 혹독한 모든 것은 존경하는 자다. 고대 스칸디나비아 전설에는 “보탄(Wotan) 신은 내 가슴속에 냉혹한 마음을 심어놓았다”는 말이 있지만, 이 말이야말로 자긍심에 가득 찬 바이킹의 영혼에서 우러난 것으로서 적절한 시적인 표현이다. … 이렇게 생각하고 고귀하고 용감한 자들은 동정이나 타인을 위한 행위 또는 무사무욕을 도덕적인 것의 특성으로 보는 저 도덕[노예도덕]을 가장 낯선 것으로 느낀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긍지, ‘무사무욕’에 대한 근본적인 적개심과 경멸은 공감과 ‘온정’에 대한 가벼운 멸시와 경계와 마찬가지로 고귀한 도덕에 속한다. 강한 자들은 존경할 줄 아는 사람이며, 이것이 그들의 재능이고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독창적인 것이다. 364
... 쉽게 은혜를 잊지 않고 쉽게 복수를 단념하지 않는 능력과 또한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의무감, 정교한 보복, 고상한 우정 개념, 적을 갖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 이 모든 것이 고귀한 도덕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 노예 도덕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366
... 노예의 눈은 강자의 덕을 호의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회의하고 불신하며, 강자가 존중하는 모든 ‘선’을 교활한 방식으로 불신한다. 그는 강자들의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고 자신을 설득하고 싶어 한다. 반면에 고통받는 자들의 생존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는 특성들이 부각되고 각광을 받게 된다. 따라서 여기서 존중되는 것은 연민, 호의적이고 도움을 주는 손길, 온정, 인내심, 근면성, 겸손, 친절함이다. ... 노예도덕은 본질적으로 유용성의(공리주의적인) 도덕이다. 바로 여기에 저 유명한 ‘선’과 ‘악’이라는 대립 개념의 기원이 있다. 노예에게는 권력, 위협적인 것,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 세련된 것,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힘 등이 모든 악한 것으로 느껴진다. 따라서 노예도덕에 따르면 ‘악한’ 인간이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인간이다. 이에 반해 주인도덕에서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거나 불러일으키려는 사람이 바로 ‘훌륭한’ 인간인 반면에 ‘저열한’ 인간은 경멸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이다. 367 (니체 <선악의 저편> 26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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