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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전체주의, 나치즘의 발생 이유

by 홍차영차 2013. 7. 4.



철학 VS 철학 by 강신주(그린비)

 

독일의 나치즘은 절대 악이라고 불릴 수 밖에 없는 히틀러, 혼자서 만들어 낸 것일까? 수백 만명의 유태인을 죽인 히틀러만이 너무나도 극악한 존재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나치 정권 초기 독일에서 생활했던 한나 아렌트1)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전체주의만이 아니라, 현재 자본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도 나름의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한나 아렌트가 유태인 학살과정의 총책임자였던 아이히만(Adolf Eichmann)의 재판과정에 참여하여 전체주의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서술한 책이다. 아이히만 재판을 통해 아렌트가 주목한 것은 악에 대한 평범성이었다.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엄청나게 극악한 사람이기보다는 그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성실한 관료였다. 만약, 그가 히틀러가 아닌 훌륭한 상관을 만났더라면 아이히만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리라는 것이다.

 

[현역 시절의 아돌프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가 발견한 것은 아이히만이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무사유에 대한 책임을 제기했다.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으로 사유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수립하고, 이러한 사유는 개인의 천부적인 능력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의무라는 것이다. 아이히만은 상부의 명령을 받았을 때, 명령 수행의 결과가 유태인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했어야만 했다.

 

이러한 근거로 한나 아렌트는 악에 대한 평범성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이러한 의무를 지키지 않을 때 우리 중 누구라도 제2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악은 우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친근한 이들로부터 출현할 수 있다는 사실. 두렵지 않은가?

 

세계화 되어가는 자본의 운동 속에서 사회는 갈수록 분업화, 전문화, 그리고 체계화되어 가고 있는데,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의 사유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져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전문화, 분업화야말로 첨단의 현대 세계가 사랑하고 자랑하는 시스템인데, 이로 인해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책임 있는 개인의 사유에 앞서, 이런 극단의 자본주의적 사회구조와 시스템을 변형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힘, 질문을 던지는 힘) 좀 더 능동적으로 지켜나가길 노력한다면, 우리의 인생과 인류의 삶을 좀 더 즐거운 축제로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추가적으로, ‘철저한 무사유라는 정의를 기업의 경영원리에 적용해 보자. 기업은 대다수의 노동자들을 분업, 자동화,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철저한 무사유속에 매몰되어 있도록 배치하여, 노동자에게 극단의 효율성만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경영자의 경우, 타인의 입장(재무, 생산, 유통, 관리 등)에서 생각하는 힘을 갖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처럼 보인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자랑하며 점점 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끓어가려고 하고, 반대로 경영자들은 이러한 재정의된 사유의 힘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하려는 모습,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결국, 우리 각자의 인생 속에서 자신을 주체로서 이끌어가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화, 분업화된 능력이 아닌 사유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13. 07.03


*참조

1)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 현대의 대표적인 정치철학자로 공공성에 대해 탐구

2) '철학 VS 철학'은 다양한 철학적 주제에 대해, 대표적 철학자들을 앞세워 서양편 28장, 동양편 2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문은 서양편 21장인 '전체주의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정리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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