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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정치 - 조직화된 기억체

by 홍차영차 2020. 12. 5.

정치는 행위로 구성되는 ‘조직화된 기억체’

: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5장







우리의 정체는 이웃나라들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남을 모방하기보다 남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소수자가 아니라 다수자의 이익을 위해 나라가 통치되기에 우리 정체를 민주정치라고 부릅니다. 시민들 사이의 사적인 분쟁을 해결할 때는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합니다. 그러나 주요 공직 취임에는 개인의 탁월성이 우선시되며, 추첨이 아니라 개인적인 능력이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가난이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위해 좋은 일을 할 능력이 있다면 가난 때문에 공직에서 배제되는 일도 없습니다.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권 페리클레스의 추도사)






한나 아렌트는 페리클레스의 연설을 ‘사후의 슬픈 지혜’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 중에 행해진 추도연설은 분명 아테네인들의 내적인 확신과 일치하고 그것을 명료하게 표현한 것이지만, 아테네를 비추던 찬란했던 태양은 중천을 지나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낮의 기온이 가장 높이 올라갈 때는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올랐을 때가 아니다. 가장 높은 곳을 조금 지나간 후에야 그 열기가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사람들은 이런 열기를 느낄 때에야 태양의 높이를 의식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행위와 말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며, 인간이 인격적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말과 행위로 드러나는 인격의 표현은 아무리 뚜렷하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명료하게 표현될 수 없다. 이는 고대 신탁처럼 계시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탁은 말로써 드러나지도 은폐하지도 않으며 오직 기호만을 제공한다.” 신탁처럼 한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수많은 행위들과 말들의 해석, 타인의 해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허구의 이야기에서 작가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재의 이야기에서 이를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타자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어떤 작가도 갖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삶에 대한 영속성, 세상에 대한 영속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고, 한 순간도 참아낼 수 없다. 노동의 필연성에서 제작의 영속성으로의 이행이 필요하다. 하지만 제작 역시 자신의 생산품의 무의미성을 떨쳐버릴 수 없다. 언젠가는 그 모든 생산품 역시 사라지지 않겠는가. 로마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우리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스인들은 하나의 해결책을 보여준다. 그들은 사람들이 행동할 구체적 공간으로서의 폴리스와 구조로서의 법률을 확립했다. 현재의 생각으로 폴리스는 영토/국민/주권이고, 여기서 법률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입법가의 위치는 지금까지도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지만 그리스에서 법률이란 영토가 있다고 해서 외부로부터의 침략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 것처럼, 법률 역시도 정치에서의 방패막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이를 아주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법률이란 행위와 말의 결과로서 적혀진 것에 불과하다. 현재 행위와 말이 활동력을 갖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갈 수 있다면 법률에 적혀 있는 것이 조금 미비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행위와 말이 힘을 잃어갈수록 우리는 법률에 집착하고, 잠재력으로 가지고 있지 못하는 권력을 보이는 것으로 치장하려고 한다. 마치 아테네가 더 이상 잠재력으로 권력을 갖고 있지 못하면서 더욱 더 물질적인 치장과 법률에 힘을 쏟았던 것처럼 말이다.


폴리스 이전에 행위와 말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위대성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시인들이었다. 호메로스가 없었다면 우리는 트로이 전쟁의 위대한 영웅들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문자가 발명된 이후 시인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형식을 고안해냈다. 형식(형태)로서의 폴리스 그자체! 폴리스는 건물이나 영토가 아니라 아테네 시민들 그 자체이다. 폴리스는 사람들이 함께 행위하고 말함으로써 발생하는 사람들의 조직체다. 폴리스 사람들은 언제든 행위와 말을 통해서 자신의 적당한 위치를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할 수 있었다. 폴리스라는 형식을 통해서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위대성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폴리스는 ‘일종의 조직화된 기억체’로서 작동했다.

공동체의 기억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조직화된 기억체’는 완벽한 물질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반복해서 행위와 말로써 실현되지 않는다면 쉽게 무너지게 된다. 여기에서 행위하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의 잠재적 현상 공간인 공론 영역을 존재하게 하는 권력이 중요해진다. 권력이란 관계를 침해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확립하고 새로운 실재들을 창조하는 곳에서만 실현된다. 언제라도 권력이 한 사람에게, 정당에게 쏠린다면 이 조직체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권력의 발생에 유일하게 필수적인 물질적 요소는 함께함이다. 또한 행위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곳에서만 사람들은 권력을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에 영향을 주는 것은 고립된 개인이 가진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세력이다. 


역사적으로 행위를 생산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플라톤의 철인왕은 행위의 어려움이 마치 인식 문제인 것처럼 자신의 ‘지혜’로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는 인간들 사이의 공론 영역을 사라지게 할 뿐이었다. 노동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초기 노동운동은 분명 권력을 형성하고, 행위와 말이 사람들 사이에 오고가는 역할을 행했다. 하지만 현재의 노동운동은 자신을 하나의 계급(당)으로 형성하고 더 많은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렸다.


행위의 예측불가능성과 환원불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두 가지 곤경을 인정하면서 용서하고 약속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용서가 종교적 맥락과 사랑과의 연관성 속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공론 영역에는 비실재적이어서 허용될 수 없지만, 약속의 능력은 전통적으로 항상 인식되어왔다.

약속의 능력은 정확히 비주권의 조건에서 주어지는 자유를 긍정한다. 계약과 약정에 의존하는 모든 정치체제에 내재하는 위험이자 장점은, 인간사의 예측불가능성과 인간의 신뢰불가능성을 그대로 내버려두며, 그것들을 단순히 매개체로 사용하여 그 안에 예측가능성의 섬을 만들고 신뢰성의 이정표를 세운다는 점이다.


인간사의 영역인 세계를 그것의 정상적이고 ‘자연적’ 황폐화로부터 구원하는 기적은 궁극적으로는 다름 아닌 탄생성이다. 기적은 새로운 인간의 탄생과 시작, 즉 인간이 탄생함으로써 할 수 있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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