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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생각한다

by 홍차영차 2020. 8. 19.

현실을 있는 그대로 생각한다

: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니체를 읽을 때마다 나는 동시에 일어나는 두 가지 감정에 당황한다. 누구나 느끼고 있었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경험들에 적합한 표현과 비유들을 들어줄 때면, 친구들과 실랑이를 하다가 나타나서 한 방에 문제를 해결해주는 힘쎈 형아를 만난 것처럼 기쁘고 날아갈 것만 같다. 하지만 간혹 이 형아가 나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이야기를 해 줄 때면, (부끄러워) 모르는 채 지나가고 싶은 당혹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니체의 말은 매혹적이면서 두렵다.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표현하기에 그의 말이 곧 나인 것처럼 매혹되어 당위로 작동하지 않을까 두렵다.

또한 니체의 말에는 너무 많은 미사 여구들이 붙어 있다. 그 매혹적인 말들에 현기증을 느낄 때면, 내가 니체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때도 있다. 이 많은 형용사와 부사들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무수한 미사여구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니체의 말들은 아주 단순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생각한다.”


서로를 교란시켜서도 파괴시켜서도 안 되는 능력들의 대립이 무엇보다도 필요했었을 것이다. 능력들의 서열 ; 거리 ; 적대시키지 않으면서도 분리하는 기술 ; 그 무엇도 섞지 않고, 그 무엇도 화해시키지 않음 ; 거대한 다수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오스와는 반대되는 것 (<이 사람을 보라>, 370쪽)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사건을 마주칠 때 우리는 결코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현실의 조건으로는 “있는 그대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책을 만날 때면, 벌써 우리의 생각들은 그것들을 찬양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혹여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 때면 스스로를 책망한다. 조금이라도 유명한 사람을 마주칠 때 이런 점은 더욱 더 두드러진다. 그에게서 떨어지는 그 어떤 부스러기 아니 쓰레기라도 잡고 싶어하며, 성스럽게 여긴다. 분명 나는 현실에서 책을 읽고, 사람과 교제하며, 사건과 마주친다. 그런데, 우리는 책, 사람, 사건의 무엇을 경험하는 것일까?


한 개인이 아니고 한 민족도 아니라, 인류가 이 정도로 잘못 짚고 있었다니! …… 삶의 최고 본능을 경멸하라고 가르쳤다는 것 ; 육체를 모욕하기 위해서 ‘영혼’과 ‘정신’을 날조해냈다는 것 ; 삶의 전제인 성에서 어떤 불결한 것을 느끼도록 가르쳤다는 것 ; 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 불가결한 강력한 이기심에서 악의 원칙을 찾는 것 ; (중략)  …… 뭐라고! 인류 자신이 데카당이었단 말인가? 인류는 항상 데카당이었단 말인가? (465쪽)


내가 그 무엇을 만나든 그것을 더 좋게 볼 필요도 없으며, 또한 폄하할 이유도 없다. 그것 자체로 주어진 현실의 원인과 결과를 살펴보면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행한다고 거기에 발맞춰야할 이유는 없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멈춰서서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구멍 뚫린 사유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구멍들을 매꾸려고 (자신의 사유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학자들의 해답을 끌어 오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실상 “있는 그대로 생각”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자아)야말로 온갓 상념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가상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물리적 조건들과 생각들이 쏟어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나에게 속한 것인지 아닌지를 살펴봐야 한다.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완전히 잊고, “현실에서 소외되지도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 나를 자신을 사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야 삶의 실책들마저도 의미와 가치를 갖게”(369쪽)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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