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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스피노자 개념 확대경 2) 개체 혹은 복합개체

by 홍차영차 2020. 7. 1.

스피노자 개념 확대경 2) 개체 혹은 복합개체


 


 

개체(individual)는 보통 전체, 집단, 공동체와 상대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개념이다. 개체의 사전적 의미는 ‘단일하고 독립된 존재’다. 그러면 공동체란 독립된 개체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개체는 언제라도 전체를 떠나서 살아갈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 같다.

그런데 스피노자가 말하는 개체는 좀 다르다. 그는 『에티카』에서 신 즉 자연인 실체를 증명한 후 , 개체란 실체의 변용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 논리적 증명을 따라가다 보면 개체는 그 실존 자체도 확실하지 않은 것 같아 실망스럽다. 정의로부터 실존을 보증하는 것은 오직 실체뿐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실체는 다른 실체에 의해 생산될 수 없다. (1부 정리 6)

실체의 본성에는 실존함이 속한다. (1부 정리 7)

신에 의해 생산된 것들의 본질은 실존을 함축하지 않는다. (1부 정리 24)

 

 

스피노자에게 단독개체란 없다

스피노자 철학에 ‘단일하고 독립된’ 개체는 없다. 하지만 나는 분명 이렇게 숨을 쉬며 살고 있고, 멋지게 뻗어있는 나무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주변에는 수많은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제각각 살아 돌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모든 개체들이 스피노자에게는 단독 개체가 아니라 ‘복합개체’다.

 

모든 독특한 실재, 곧 유한하고 규정된 실존을 갖는 모든 실재는 역시 유한하고 규정된 실존을 갖는 다른 원인에 의해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되지 않는 한,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될 수 없으며, 이 후자의 원인 역시 유한하고 규정된 실존을 갖는 다른 원인에 의해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되지 않는 한 작업하도로 규정될 수 없으며, 이처럼 무한하게 나아간다. (1부 정리 28)

인간 신체는 매우 많은 수의 (상이한 본성을 지닌) 개체들로 합성되어 있으며, 이 개체들 각자는 매우 복합적이다. (2부 자연학 소론 요청1)

인간 신체는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매우 많은 수의 다른 물체들을 필요로 하며, 이것들은 말하자면 인간 신체를 계속해서 재생시킨다. (2부 자연학 소론 요청 4)

 

본질상으로 자신의 실존을 보장하는 것은 실체밖에 없다. 하지만 <에티카> 1부 정리 28을 보면 개체 역시 실존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실체와 다른 점이라면 조건부 실존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개체가 갖게 되는 조건이란, 다르게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조건부가 아니라, 항상 다른 개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조건부이다.

우선 인간 개체부터 생각해보자.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개체들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어머니가 주는 모유, 매순간 호흡을 위해 필요한 산소, 추운 날씨를 막아주는 옷가지 같은 것 없이 갓난아이가 살아갈 수 있을까. 성인 어른 역시 한 순간이라도 외부의 산소를 몸속으로 들여오지 못한다면 죽을 것이고, 12시간만 물을 마시지 못해도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인간은 자기 외부의 많은 타자들과 관계 맺지 않는다면 소멸될 수밖에 없다.

다른 한 편에서 인간은 내부적으로 수많은 개체들로 엮여있다. 인간 신체는 팔, 다리, 머리의 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은 눈, 코 입, 심장, 허파로, 또 이것들은 다시 세포와 뼈, 연골로, 그리고 그 작은 세포 하나하나에는 미토콘드리아, 핵, 세포질과 같은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방식으로 개체를 바라본다면, 공동체 역시 하나의 복합 개체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공동체는 인간 공동체뿐만 아니라 개미 군체,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공원, 나무와 풀, 흙으로 구성된 숲까지 포함한다. 수많은 인간 개체들은 함께 모여서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소통하면서 공동체를 살리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물론, 인간 신체가 죽고 썩어져 오랜 시간을 거쳐서 그 부분들이 다시 식물과 동물의 한 부분을 형성하듯이, 파괴된 공동체의 부분들 역시 일부분은 다른 공동체(복합개체)로 들어가서 전혀 새로운 복합개체(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하나하나 서로 분리된 단독 개체로 보였던 모든 것들은 사실 복합개체로만 존재할 수 있다.

 

개체의 고유성 혹은 코나투스

단독 개체는 없고 복합개체로만 존재한다는 말에서 우리는 뭔가 불편함을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나 전체 속의 일부로서 주어진 조건에 따라 살아야 하는 꼭두각시 인형 같은 존재란 말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모든 개체는 복합개체를 구성하는 동시에 각자의 고유성인 ‘운동과 정지의 비율’로 개체적 본질을 드러낸다.

 

같은 크기를 지니고 있거나 크기가 서로 다른 일정한 수의 물체들이 다른 물체들에 의해 압력을 받아 서로 의지할 때, 또는 그것들이 같은 속도나 서로 다른 속도로 운동하고 있을 경우에는 일정하게 규정된 어떤 관계에 따라 자신들의 운동을 서로 전달할 때, 우리는 이 물체들이 서로 연합되어 있으며, 이것들 모두가 단 하나의 물체 또는 개체를 합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개체는 물체들 사이의 이러한 연합에 의해 다른 모든 개체들과 구별된다. (2부 자연학 소론 (복합)개체 정의)

 

인간은 두 다리를 이용해서 걷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같은 방식으로 걷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8자 걸음을 걷고, 다른 사람은 11자 걸음을 걷는다. 같은 11자 걸음을 걷는 사람도 신발을 살펴보면 빨리 닿아 없어지는 부분이 서로 다르다. 즉, 모든 사람들은 각각의 개체로서 독특한 ‘운동과 정지의 비율’에 따라 움직인다. 비슷해 보인다고 동일한 것은 아니다. 또한, 인간의 100m 달리기 기록이 10초벽을 허물어 버린 지 오래지만 치타 혹은 오토바이처럼 4~5초 이내에 달릴 수는 없다.

이런 ‘운동과 정지의 비율’은 마치 외형에만 관계되는 것 같지만, 이런 외형이 단 한 번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개체가 실존하는 동안, 개체의 내부에서 작동하는 힘이 외부와 관계하면서 개체의 외형을 매순간 새롭게 구성해내고 있는 중인 것이다. 스피노자는 모든 개체가 지닌 ‘자기의 존재 역량 안에서 존속하려는 노력’을 코나투스라고 부르는데, 코나투스란 모든 개체들의 ‘현행적 본질’에 대한 다른 이름일 뿐이다.

 

신은 실재들의 실존의 작용인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본질의 작용인이기도 하다 (1부 정리 25)

주어진 그 본성으로부터 어떤 결과가 따라 나오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실존하지 않는다 (1부 정리 36)

각각의 실재는, 자신의 존재 역량에 따라, 자신의 존재 안에서 존속하려고 노력한다. (3부 정리 6)

각각의 실재가 자신의 존재 안에서 존속하려고 추구하는 노력conatus은 실재의 현행적 본질 자체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3부 정리 7)

 

모든 개체는 자신을 현실화하는 경향, 힘, 권리를 그 내부에 가지고 있다. 자연 안에 실존하는 모든 개체가 지닌 힘, 역량, 권리의 집합이 바로 스피노자의 신 즉 자연이다. 개체들은 모두 ‘일정하고 규정된 방식(속성)’으로 표현된 신의 부분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실체의 실존이 필연적인 것처럼 개체의 실존 역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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