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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스피노자 읽기와 공동체

by 홍차영차 2019. 7. 31.

스피노자 읽기와 공동체

: 2019년 퇴근길대중지성 2학기



1학기 : 관계적 개인의 발견 - 일상의 리듬을 구성하자

2학기 : 공동체적 자아의 회복 - 새로운 무리짓기(의 기술)



20세기에 푸코가 근대를 구성하는 중요한 근대적 개념들(광기, 감옥, 성, 개인, 국가, 권력)에 대해 회의주의적 시선으로 비판적 성찰을 시도했다면, 17세기 스피노자는 종교에서 과학으로, 신정에서 근대국가로의 변화 속에서 ‘공동체와 개인’에 대한 전혀 다른 개념을 ‘발명’해냈다. 근대의 탄생과 동시에 反근대적인 정치철학을 혹은 근대를 통과하지 않고서 탈근대적인 철학을 시도했다.


스피노자의 개념을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까다롭다. '기하학적으로 증명된' <에티카>를 보다보면 쉽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스피노자 철학에는 개념들의 보물이 차고 넘치기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스피노자 철학의 숲에서 잠시동안만 머무르더라도 이전과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발명한 개념을 안다는 것은, 스피노자의 철학으로 말하자면, 생각의 변화뿐만 아니라 행동과 실제적인 신체 모습의 변화까지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반복해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S라인과 식스팩이 아니다. 하지만 꾸준한 운동을 통해서만 건강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신체를 구성할 수 있다. 스피노자 읽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스피노자 철학이 아무리 복잡하고 어렵더라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피노자 매뉴얼>을 적극 활용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해본다면 조금씩 스피노자 철학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피에르-프랑수와 모로의 <스피노자 매뉴얼>, 원제목으로 보면 '스피노자와 스피노자주의'이다. 프랑스를 스피노자 연구의 중심지로 만든 학자라는 명성답게 모로는 스피노자 철학을 아주 간결하게, 무채색적으로 들려준다. 이게 중요하다. '무채색적으로'. ^^; 1학기에 봤던 폴 벤느의 <푸코, 사유와 인간>이 푸코라는 인간을 자신의 시각으로 보여준 책이라면, 모로의 책은 한국 제목처럼 '스피노자 매뉴얼'로 사용하면 될 것처럼 자신의 '입장이 없는 것 같은 입장'을 보여준다. 사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기하학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었기에 매우 딱딱해서 심심플이로 읽어나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2차 서적, 특히 리라이팅 방식으로 쓰여진 책들은 대부분 스피노자와 <에티카>에 관한여 매혹적이지만 아주 정념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아마도 모로는 이런 선입견이나 의견doxa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스피노자에 접근할 수 있기를 기대한 것 같다. 

성급하게 할 필요도 없고, 한꺼번에 모든 사용법을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현재 나의 수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사용처를 찾고, 조금씩 그 용법을 늘려가면 된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의가 되지는 않겠지만 스피노자 철학의 사용 사례라고 생각하면서 스피노자 철학의 중요한 개념들을 스쳐가보자.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을 쓰면서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한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자유로운 공동체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말하기에 앞서, 근본적으로 자유란 어떤 것인지 다시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사람들은 자유라는 말에서 ‘내 마음(감정)가는대로’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고 선택하는 것을 떠올린다. 말 그대로만 본다면 자유에 대한 이러한 통념은 스피노자의 정의와 정반대다. 스피노자의 자유는 ‘정념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스피노자가 ‘인간이 정념적(감정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메마른 인간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스피노자는 인간이 정념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 스피노자는 이성적으로 완벽한 이상적 인간이 아니라 질투, 증오, 사랑, 미움과 같은 수많은 정념들에 흔들리는 인간을 스피노자 철학의 토대로 놓는다.

자유에 대한 스피노자의 태도를 보면 이기적인 개인주의자가 떠오른다. 맞다! 한편으로 보면 스피노자는 “가장 위대한 개인주의자”라고도 불려 마땅하다.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코나투스(conatus)의 확장인데, 인간 개개인의 코나투스란 그 사람의 욕망, 욕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의 욕망을 강조하다보면 개인들간의, 공동체간의 충돌은 불가피해보인다. 그렇다면 스피노자는 홉스의 사회계약론(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동의하고 있는 것인가?

스피노자는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당대에 익숙했던 개념들을 버리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익숙한 개념들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면서 자기방식으로 개념들을 재정의해낸다. 실체, 속성, 양태, 사회계약론…… 스피노자는 사회계약에 동의하지만 계약 전이나 후에도 자신의 권리(자연권)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계약을 수립한 이후라도 자신의 코나투스를 축소시키는 사건에 대해서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뭔가 굉장히 모순적이다. 이런 방식으로 공동체가 가능할 수 있을까?

스피노자가 이렇게 모순적으로 말하는 이유가 있다. 스피노자에게 개인이란 존재론적으로 사회적일수밖에 없으며 인간이란 하나의 개체라기보다는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속에서 구성되는 관개체(trans-individuality)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스피노자의 세계에서 개인이란 없으면 항상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속에서 존재하는 관개체만이 있을 뿐이다.

한 편에서는 코나투스로서 개인의 욕망을 긍정하면서, 다른 한편에서 개인이란 없고 오로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관개체로 존재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스피노자는 이전의 상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의 공동체를 제안한다. 스피노자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어떠한 정답이나 법으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정서모방을 통해서 구성된다. 우리는 공동체를 구성함에 있어서 논리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것이, 다시 말해 참된 관념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다. 하지만 공동체 형성을 직접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정서이다. 사람들이 모이려면, 함께 뭔가를 꾸미려면, 정서모방을 통한 적합한 관념 혹은 공통 개념의 구성할 수 있을 때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짚어보자. 그렇다면 공통 개념이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가? 공통 개념은 통념과 달리 굉장히 신체적인 활동을 통해서 형성된다. 왜냐하면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이란 항상 ‘무엇에 대한 관념’이고, 정신은 외부 사물을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정신은 우리 신체의 변용신체 변용에 대한 관념만을 인식할 수 있다.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과 달리 정신이 신체를 이끄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체가 없다면, 신체의 변용을 통하지 않는다면 정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물 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물과 여러번에 걸친 마주침 속에서 적합한 관념을 형성했기 때문이고, 내가 자유롭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 역시 나와 자전거 사이에 구성된 공통적인 것을 통해서 구성된 공통 개념때문이다. 수영할 때 자전거를 탈 때 독립된(원자적) 나는 없다. 물과 결합된 새로운 몸체, 자전거와 연합된 새로운 ‘나’만이 존재할 뿐이다. 다시 말해 나는 언제나 다른 것들과의 결합 속에서만 존재한다. 세미나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에티카>를 읽으며 변용되고, 토론의 과정에서 친구의 변용과 합성을 일으킬 때 우리는 서로간에 공통개념을 갖게 된다.

스쳐지나가는 스피노자의 개념들에 많이 당황했겠지만, 염려할 것은 없다. 우리 역시 18주가 지난 후에는 말라무드의 ‘수리공’처럼 말하게 될테니. ^^;



얼마 후 몇 쪽을 읽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마치 돌풍이 등을 밀고 있기라도 하듯 멈출 수 없었습니다. 당신에게 말씀드리지만, 제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각을 접하게 되자마자, 우리는 마치 요술쟁이 빗자루를 타게 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나는 더 이상 이전과 동일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 서문에 나오는  '말라무드의 <수리공> '  재인용) 




2019.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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