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스토리

<퇴사하겠습니다>

by 홍차영차 2017. 2. 5.

회사사회와 인간사회


"(고대)철학이란 이론이 아니라 생활양식이고, 실존의 선택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연구했던 피에르 아도가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주장했던 이야기다. 그러면서 중세 이후부터는 '생활양식'으로서의 철학이 단절되었다고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철학은 삶이 아니고 단지 '철학학파'들을 아는 것이 되었다고.



<퇴사하겠습니다>는 '아프로 헤어'라는 사소해보이는 계기로 28년동안 다녔던 대기업 아사히신문을 퇴사한 이나가키 에미코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나가키가 묘사하는 '회사사회'가 (강요되는) 나름의 '생활양식'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속하지 못하면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사회, 조금 더 쉽게 풀어보면 회사사회란  '월급'에 의지하여 살게 만드는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이다.

이나가키가 말했듯이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사는 삶 그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분명 회사인간은 현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기둥이다. 그리고 동등하게 회사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현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특히 세계화를 자랑(?)하는 근대 사회에서 '회사사회' 이외의 생활양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하나밖에 없을까. 고대로부터 살펴보면 공동체가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했다.


고대 그리스 국가들은 폴리스polis, 도시국가라고 불리웠다. 이는 작은 국가라기 보다는 각각의 폴리스 나름대로의 독특한 '삶의 양식'을 가졌다는 뜻이다. 대표적으로 스파르타는 폴리스 전체가 '전사'를 이상으로 가지고 있던 사회였고, 아테나이는 '이성'을 바탕으로 대화와 토론이 기본이 되었던 나라였다. 이 외에도 고대 민족들의 삶을 살펴보면 각자가 자신의 물질적 조건과 전통 속에서 다양한 삶의 방법을 드러내고 있다. 더 많은 선물을 한 사람이 더 높은 권위를 갖으며 선물하기를 경쟁했던 사회가 있었고, 자신이 사냥한 고기는 자신이 먹지 못하는 전통을 가졌던 사회도 있다. 여기에 좋고 나쁨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근대 이후의 세계는 오로지 회사, 월급에 매여 사는 인간만을 양산하게 되었을까?


이나가키가 질문하는 것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분명 함께 하는 것은 중요하다. 연대가 21세기의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공동체적 감각이란 스스로가 '개인'으로 바로 설 수 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이런 개인 역시 공동체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겠지만.


이 책이 던지는 질문 혹은 주장은 '회사인간'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방식 중 하나라는 것이다. 역으로 세상은 오로지 회사인간만이 살 수 있는 공간같지만 회사에서 나오는 순간, 회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 다양한 삶이 가능함을 알 수 있을 것.


추신. 예전에 나왔던 '퇴직' 관련 책들은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혹은 나는 이렇게 인생 2모작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나가키 에미코는 퇴직 후 어떻게 살겠다는 뭔가 확실한(?) 것이 없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내고, 가끔 글을 쓰기도 하겠지만. 그리고 이렇게도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질문하고 실험한다.




2017. 2. 5




'북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르바와 자유  (0) 2017.09.20
자유 - 리듬, 우연, 불확실성  (0) 2017.08.30
김영민의 <공부론> 1  (0) 2016.05.12
<들풀> 1  (0) 2015.11.12
[루쉰읽기] 아침꽃 저녁에 줍다 1  (0) 2015.11.0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