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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토리

김영민의 <공부론> 1

by 홍차영차 2016. 5. 12.

양식type이 아니라 스타일style

- 김영민, <공부론> 1 -


키워드 : 독해, 양식type, 스타일style, 만남, 영리한 사람과 고귀한 사람, 물듦


읽는다는 것

이번 시즌 첫 시간에 ‘외국어 독해’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대화할 때 굉장한 주의를 기울인다고.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말은 한다는 것은 단지 단어의 조합, 문장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고 관계맺기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멋지다, 흥미롭다”는 말은 그게 진짜로 멋지거나 흥미롭기 때문이 아니라 아주 도전이 되고 생각을 요하는 문제를 마주쳤을 때에 하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친구들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지만, 처음 만나는 친구에게는 똑같은 말이 ‘오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낯선 외국어로 말할 때는 더 긴장하게 된다. 말한 것이 제대로 전달이 될지 혹은 전달하고자 하는 뜻과 달리 오해하지 않을지 주의하게 됩니다. 

또한 외국인이 이야기할 때 역시 말할 때와 마찬가지의 주의를 기울입니다. 지금 그가 말한 독일어 “Was machen Sie?”라는 아주 단순한 말이 무슨 뜻인지,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그 뜻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외국인의 표정, 눈짓, 제스추어 하나하나에 관심을 두고 그가 처한 상황까지 고려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가 ‘모국어’로 말 할 때는 이런 태도를 취하기기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친구가 와서 “힘들다.”라고 말하면 우리는 이 말을 ‘독해’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너무나 쉽게 그 말 뜻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명한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으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친한 사이, 잘 안다고 하는 관계에서 오해가 벌어지고 관계가 틀어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진의眞意를 파악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언어라는 것은 단지 ‘소리’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화한다는 것, 소통한다는 것은 그 말을 할 때의 표정, 눈짓, 세상의 기운(?)까지 고려할 것이 아주 많습니다.


이제 공부를 생각해 봅시다. 말하는 것, 텍스트를 읽는 것과 공부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공부는 ‘대화’하고, 텍스트를 읽는 것처럼 ‘만남’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공부란 지식의 축적이 아닙니다. ‘공부’를 하게 되면 ‘나’를 발견하게되고 내가 나아갈 길을 발견하는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는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서 책을 읽는다고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도달해야만 하는 목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부를 통해서 어떻게 ‘나’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1) 양식type이 아니라 스타일style이다 : 자기표현의 형성은 나를 de-sign하는 것이다. 모두가 알 수 있는 sign이 아니라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 탈코드화하는 것 자체가 나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정체성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단순한 치기稚氣나 작은 차이의 나르시시즘과는 다르다. 여기에는 꾸준한 반복을 통한 자기기술의 획득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스승을 흉내내고, 반복하면서 양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기 원한다면 스승의 양식을 뚫어버려야 한다.


2) 만남이 없는 ‘나’는 없다 : 진정한 무사처럼 죽음을 걸고 나를 드러내는 것. 진정한 타자, 진정한 폭력과 만났을 때 ‘나’를 체험하게 된다. 


3) 영리한 인간과 고귀한 인간 : ‘근본’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을 영리하다고 말한다. 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도 수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자본주의 시대가 원하는 사람이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목표를 쟁취하는 사람.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조금의 어수룩한 면도 없이 얄미울정도로 민첩하고 약싹빠른 사람 - 반지빠른 사람! ‘영리한 사람’은 아무도 만날 수 없고, 그렇기에 변화할 수 없다. 이들에게 남는 것은 ‘변덕’ 뿐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람도, 책도, 선생도 만나지 않으면 단지 절취해낼 뿐이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공부를 하는 사람은 다르다. 공부하려는 인간은 몸에 물이 뭍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그는 물속에 자신의 몸 전체를 담그는 사람이다. 너무 오래, 너무 깊이 잠근 탓으로 몸에 지느러미가, 아가미가 생기기도 한다. 즉 공부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변덕이 아닌 변화를 추구한다면 우리는 책을, 사람을 만나야 한다. 단순히 읽는 것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공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4) 댓가eggue 없는 공부는 없다 : 좋은 글과 말일수록 한 문장, 한 단어를 고통스럽게 읽고, 듣고 이해하는 대가는 필수적이다.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 공부는 있을 수 없다. 무사들은 정직한 피를 뿌리면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한다. 현재의 공부가, 인문학이 아무런 힘이 없는 이유는 공부하는 사람 중에 ‘죽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5) 물듦 : 냉소와 허영이란 타인들이 얼마나 깊고 크게 자신의 존재에 구성적으로 관여하는지를 깨닫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우선적으로 나 혼자만의 독창성이라는 미망ate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의 존재는 오로지 너와의 관계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나의 독특성, 예술적인 모습으로 나를 만들어가는 것은 내 안에 너가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 때에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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