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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이야기/Self-motivation

'몸'은 생각보다 빠르다

by 홍차영차 2016. 6. 10.

‘몸’생각보다 빠르다

- 드라마 워크샾, 악어떼와 극단 <동동>의 꼴라보레이션-



몸은 느리다?

얼마전 민들레출판사가 문탁에 놀러왔습니다. 식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민들레는 요즘 ‘춤’에 빠져 있다고 했습니다. 매주 한 번씩 모여서 춤을 추고 있다고. 그러면서 현병호 선생님과 몸의 유연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한치의 의심 없이 오랜 세월 체득된 몸의 습관을 바꾸기는 것은 쉽지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몸을 바꾸기 위해서 ‘공부’를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선생님은 여기에 다른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몸은 생각보다 유연합니다.”라고.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던 몸도 몇 주 동안만 산길을 걸어도 몸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2달 정도만 꾸준히 꾸준히 움직여도 살이 오르고 탄력이 붙는 ‘몸의 유연성’에 놀랄 것이라고. 이 말에 갑자기 뭔가를 알 것만 같았습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우리는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너무 오랫동안 해온 습관때문에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고도 말합니다. 공부법의 한 방식인 낭송에도 역시 같은 질문이 던져질 때가 많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외우고 암송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저 소리내어 외운다고 뭐가 달라질까. 아이들이 잘 암송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유연한 몸 때문이라고, 어른이 된 뒤에 암송으로 공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몸은 정신보다 느리게 움직인다고, 마음이 움직여야 몸이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악어떼, 생각보다 빠른 몸들

악어떼가 연극을 한다? 악어떼와 함께 <드라마 워크샾>을 하겠다고 말하고 준비했지만 반신반의했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악어떼의 몸이 이렇게나 ‘유연하게’ 움직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 극단 <동동>의 선생님들이 고생을 하시겠구나! -.-;; 어떻게 도와드려야 할까, 아이들이 선생님들에게 버릇없이 행동하지는 말아야 하는데 등등의 걱정이 앞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합창, 대본낭동, 흙작업, 족구까지 다들 시큰둥하다가 억지로 움직였던 경험들이 뇌리 속에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 시절 연극을 해 보신 여울아 샘의 걱정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행이었던 점은, 여울아 선생님이 전체 리딩을 한다는 사실. ^^;;

그런데 이런 생각은 첫 시간부터 비껴나갔습니다. 우려와 달리 악어떼 아이들은 <동동> 선생님들 뿐 아니라 여울아, 지금, 물방울, 히말라야 그리고 찬결, 세빈, 은우, 상우, 시우와 함께 게임을 즐겼습니다. 혹시 싸움이 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첫 시간부터 아이들에게서 즐거움의 비명 소리가 들렸고, 여기 저기서 시원한 웃음 소리가 끊기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분명 연극을 하겠다고 처음 말했을 때, 악어떼들은 절대로 몸을 움직이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머리 속으로는 ‘내가 문탁에 와서 연극을 할 것 같아? 천만에 말씀!’이란 생각들을, 표정으로는 언제나 그렇듯 ‘불만에 가득찬 표정’들을 보여주었죠. 그런데 첫주부터 악어떼들은 ‘자기이름대기’,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이야기완성하기’와 같은 몸풀이 게임에서부터 작은 ‘연극’에 이르기까지 스스럼 없이 몸을 움직였습니다. 정말 놀라웠던 점은 매주 마지막 순서로 아무런 극본도 없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작업을 스스로, 자발적으로, 아무런 댓가(맛있는 간식의 흥정)도 없이 만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악어떼는 원래부터 연극을 좋아했던 걸까요? 무엇이 악어떼를 바꾸었을까요?



몸의 유연성=생각의 유연성

악어떼가 이렇게 움직일 수 있었던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드라마 워크샾이 끝나고는 역시나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 악어떼로 돌아갔으니까요. -.-) 악어떼들은 그저 몸을 움직였을 뿐이고, 그들의 몸은 머리보다 빨랐습니다. 악어떼가 먼저 움직이지 않았더라도 다른 선생님들과 어린 친구들이 몸을 움직이다 보니 생동이 넘치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동동>의 선생님들도 한 분이 오셔서 지도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이끌어주는 선생님 외에 항상 2~3분의 극단 회원들이 함게 해주셨고, 문탁의 어린이 회원과 어른(?)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런 분위기를 생성하는데 일조한것 같습니다. 몸들이 서로 부딪히고, 만나면서 예상치 못한 기운들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이 움직이니 생각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간식 준비가 끝나면 함께 게임을 하고, ‘극’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딱딱하게 움직였던 ‘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극을 만들 때도 서론-본론-결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뭔가 교훈을 주어야 할 것 같은 관념들… -.-; 하지만 악어떼들은 달랐습니다. 극에서 랩을 하거나, 표현하고 보여주고 싶은 장면과 퍼포먼스에만 집중할 뿐입니다. 열린 결말이라고 해야할까?

김영민은 <공부론>에서 공부란 자신의 ‘박자’를 아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나와 나 아닌 것이 서로 겹치고 헤어지는 리듬”을 파악하는 것이 공부라고. 몸이 앞서가는 것인지 아니면 머리가 앞서가는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굳어진 우리의 ‘고정관념’을 드러내줄 뿐입니다. 문탁에서는 많은 분들이 텍스트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바꿔나가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악어떼와 동동의 드라마워크샾은 바로 그런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문탁 회원들이 공부를 통해서 자신의 삶과 몸을 바꾸려고 하듯이 악어떼들도 끊임없이 다른 방법으로 몸을 바꾸는 시도를 할 예정입니다. 지난 주에는 하반기 연극 대본을 찾기 위해 악어떼들과 구미도서관을 방문했습니다. 오고 가는 도중 스마트폰에만 몰두했던 악어떼의 신체들! 악어떼들이 졸업하기 전까지 새로운 자신만의 ‘박자’들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굳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속도를 내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박자들이 함께 리듬과 템포를 맞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좋겠네요.


2016.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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