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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이야기/Self-motivation

물음느낌표와 지-호-락의 정신에 대하여

by 홍차영차 2013. 8. 22.

물음느낌표(Interrobang)와 지호락(知好樂)의 정신에 대하여

 

우리는 언제부턴가 질문과 감동을 잊어버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니, 감동과 질문을 잊게 만드는 세상이라고 해야 올바를 것 같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작은 것에 감동하고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현재의 세상은 이러한 창조적 능력을 감당할 수 없어서(?) 초등학교서부터 계속해서 우리의 창의력에 자물쇠를 채우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질문의 주인은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이 되고, 엄청난 시각 효과로 인해서 우리는 이제 어떤 것을 보더라도 더 이상 감동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체제에 굳어져 버려 더 이상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창조성을 기르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 가지고 있었던 창조성을 되찾기 위해 힘쓴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젊음의 탄생 by 이어령 (생각의 나무)


질문을 한다는 것은 뭔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세상 누구나 에게 던져지는 질문지 앞에 서면 우리는 경쟁할 수 밖에 없고, 순위를 매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내가 나만의 질문을 찾아 낼 수 있다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질문을 발견한다면 굳이 그런 경쟁 속에 들어설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답이 있는 질문이 아닌 해답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질문을 통해서 없던 길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설령 해답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그 해답 없는 질문에 대한 고민을 통해서 남들이 느낄 수 없었던,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될 수 있는 것이다. , 질문하기는 바로 나의 꿈을 찾는 것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겠다. 질문의 크기가 바로 내 인생의 크기, 꿈의 크기가 되는 것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을 보면, 연인의 작은 모습변화에도 감동하고 그/그녀의 옷차림 하나하나가 탄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어린 아이들은 엄마의 손짓 발짓에 감동하고, 이제 막 결혼한 가정에서는 아내가 만들어 준 어떤 음식도 그리고, 남편이 도와준 작은 행동도 서로의 기쁨이 된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을 돌아보면 UHD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보여지는 영상은 우리의 시각을 압도하고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TV를 통해서 보여지는 아슬아슬한 곡예들은 현실의 어떠한 사건도 더 이상 감동의 대상이 될 수 없도록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켜 놓았다.

 

왜 이렇게 세상이 재미없어 졌는가?

 

우리는 언제부턴가 효과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높은 효율성에 집착하고 있으며, 그 존재의 이유보다는 방법론에만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족, 친구, 꿈을 비롯해 세상의 모든 것을 자본이 삼켜버린 사회에서 이제는 누구도 저항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 듯.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고, 세상은 4가지 요소로 만들어졌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들으면서 우리는 그리스 시대의 철학을 우습게 여기고, 21세기는 철학이 아니라 현대의 지식과 과학이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이야기할 지 모르겠으나, 지금이야말로 바로 과거를 돌아보고 유용성보다는 유의성에 우리의 관심을 회복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공자가 이야기 한 앎의 단계는 --으로 이어져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러한 공자의 문화권에 있으면서도 그저 아는 것(知)으로만 만족하는 단계에 너무도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 매슬로우의 욕구 5가지 단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누구나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그러한 시도들이 겪려받는 사회가 되기를 상상해 본다.


2013.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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