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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일리치

무능력에 저항하다 - 이반 일리치

by 홍차영차 2016. 3. 15.

삶 -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

<<학교없는 사회>> 이반 일리치



세기의 대결이라고 떠들고 있는 AlphaGo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이 한창이다. 그리고 지난 10년동안 세계최고의 바둑 기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이세돌의 2연패는 사람들로 하여금 두 가지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것 같다. 인간의 지성을 훌쩍 넘어버리는 기계의 탄생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은 계산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는 듯하다.


학교화Schooled
이반 일리치는 근대사회를 경험하면서 점점 더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힘을 잃어가는 사
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이런 삶의 자율권을 되찾기 위해서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비판 하고 분석했던 것이 학교이다. 학교는 단순히 사람으로 하여금 제도에 종속되게 만들뿐 아니라 이 사 회에서 삶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방식의 사회, 소비사회를 재생산하는 장소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학교화된 사회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분석을 학교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학교에서는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과 목적을 혼동하도록 한다. 즉 여러가지 단계를 거치는 것이 능 력을 획득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자신에게 배움이 일어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오랜 기간 학교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중등, 고등을 거쳐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대학원으로 박사과정으로 좁아진 문을 비집고 들어사 다른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희소성을 획득하 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학교화의 문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이나 교육을 받는 사람들 모두가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 (1926~2002)


가치의 제도화와 근원적 독점
학교화된 사회가 보여주는 바는 가치의 제도화이다. 배움이라는 가치는 학교에 종속되고, 자유라
는 가치는 법에 종속된다. 자기 몸을 보살피는 것은 이제 병원에서만 가능하고, 어디로 이동할 때는 당연히 자동차를 타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제도에 물음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우리는 배운다고 할 때 더 좋은 교육 서비스를 생각하고, 건강해진다는 것은 체계적인 의료체계와 건강검진을 떠올린다. 실제로 쉽게 말해 더 많은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을 더 많은 배움이 일어나는 것 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으로 이해한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와 서비스에 의존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심 리적 불능화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 즉 비물질적인 요구가 물질적인 것의 수요로 충족될 수 있다는 믿 음이 생겨난다.

학교라는 것은 단순하게 교육만 일어나는 장소가 아니다. 이 곳에서는 배움에 관한 모든 의무와 권리를 쟁취한다. 그리고 다른 어떤 곳에서도 교육에 관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한다. 즉 배움에 관한 근원적 독점이 발생한다. 병원이나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율권의 상실

학교에 다닌다는 것이 뭐가 그리 문제이겠는가? 한 끼 식사를 밖에서 사 먹고, 헬스장을 다니고, 감기 에 걸렸을 때 병원을 찾는 것이 정말 문제가 될까? 이반 일리치가 학교화에 집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교에서 소비사회라는 신화가 생산되고, 재생산된다는 것. 학교화를 통해서 가치의 제도 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훈련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한 사회를 지탱하는 신화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다만 일리치가 말한대로 이렇게 길고 지루한 방식으로 신화가 만들어지는 사회는 없었다는 말이다. 12년이나 되는 기간동안 훈련받고 각 인시켜야만 되는 것이라면 가히 반-인간적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다시 인간에게로
다른 방식으로 질문해보자.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더 빠른 자동차를 타고, 시간을 아껴가 며, 더 오래 공부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지는 말자. 이제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우리는 학교에 다니고, 법을 지키며,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에 한 번도 물음을 제기한 적 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정말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사람이 삶을 살아간다는 것 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는 앞서 말했던 인간에 대한 존재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때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AlphaGo와 이세돌의 대결이 5대0의 완패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합리성의 총체라고 그렇게 자랑하던 인간이 극단의 합리성으로 치달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할 것인지를 고민 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인간이란 단순히 지성이란 부분만으로 판단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을. 어떻게 보면 AlphaGo가 두는 바둑에 당황해 하고, 그렇기에 실수하고, 패할 것을 알면서도 그 길 을 걸어갈 수 있는,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인간이라는 것으로 다시 새기는 기회가 되었 으면. 



2016.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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