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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읽기

루쉰이 사람을 기억하는 법

by 홍차영차 2015. 11. 4.


루쉰이 사람을 기억하는 법

- <후지노 선생>, <판아이눙> -


루쉰이 사람을 기억할 때는 그 사람을 통해 현재를 되돌아보고 또한 비판적 입장에서 미래를 다시 생각하기를 원할 때다. 





<후지노 선생>은 루쉰이 샤먼대학에 있을 때 쓴 잡감문이다. 그곳에서 그는 “황량하던 섬에 처음으로 신문화의 분위기를 전파하”기 위해서 학생들의 원고를 평가하고 교열했고, 여러차례 강연을 하면서 ‘자유평등과 반항의 사상’을 전파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도중에도 루쉰은 샤먼에 있는 것이 편치 않았다. 수완은 좋을지 모르지만 허위의식과 교활함으로 가득찬 “썩은 수원” 구제강을 비롯해서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하나의 고도(孤島)였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 그가 떠올렸던 사람은 “억양이 뚜렷한 어조로 말을 하려는 것 같아 양심의 가책을 받고 용기를 북돋우곤” 했던 후지노 선생이다. 센다이의과대학에서 공부할 때 자신의 필기장을 직접 살펴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문법적 오류까지 교정해주던 스승. 구국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도, 그리고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 것도 아니지만 그가 보여주었던 태도는 루쉰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가장 나를 감격시키고 고무해 준” 사람이었다. “열렬한 기대와 지칠 줄 모르는 가르침”으로. 

어쩌면 가장 힘든 순간일지 모르는 1926년 루쉰은 후지노 선생을 떠올렸다. 왜? 겉으로 보이는 것에 치우치지 않고 사실을 사실로 바라볼 수 있는 그의 태도 때문이 아닐까. 말하는 것이 있어도 그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사람. 그는 자신의 겉모습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넥타이를 메지 않을때도 있었고, 매번 초라한 외투를 입고 다녀 도적으로 몰리기도 했다. 해부도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루쉰은 해부도 그림을 보면서 자신이 그린 모습이 더 좋다고 말했지만, 해부도는 미술이 아니다. 보기 좋은 것은 필요치 않다. 실물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야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루쉰이 자신의 마음속에 ‘위대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항상 그를 생각한다는 루쉰. 루쉰은 후지노 선생과 함께 하던 기억으로 자신의 제자들을 사랑하고, 투쟁하고, 싸워왔던 것 같다.


반면 <판아이눙>은 루쉰이 계속해서 견지하는 죽음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서석린이 죽었을 때 그의 제자였다고 하는 판아이눙은 그에 대한 항의 전보를 보내야하는지를 논쟁할 때 이렇게 말했다. “죽일 것은 죽여 버렸고, 죽을 것은 죽어 버렸는데, 무슨 개떡 같은 전보를 친단 말이야.” 루쉰이 말했듯이 그의 말은 따지고 보면 무례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냉철해 보이는 이런 대답은 ‘막혀버린 벽’에서 멈추어버린 판아이눙을 떠올리게 한다. 

광복 후 그토록 “밝은 얼굴”을 보였는데, 아무것도 변한 것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자살’을 택한 판아이눙. 루쉰이 1926년 정부에게 청원하러 가는 쉬광핑을 저지한 이유를 판아이눙의 죽음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루쉰에게 고민을 남겼다. 3.18 참사 이후 루쉰이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개혁이 유혈을 면할 수는 없지만 유혈이 바로 개혁은 아니다. 피의 응용 효과는 돈과 마찬가지라 절대로 인색해서도 안되고 낭비해서도 안된다. 


루쉰은 판아이눙이 “발을 헛디딘 탓인지 아니면 자살한 것인지” 모른다고 썼지만, 그의 죽음은 루쉰에게 3.18에 죽은 류허전, 양더췬과 다름없게 느껴졌다. 루쉰은 <후지노 선생>, <판아이눙>을 쓰면서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말하고 싶었다. 처음 쉬광핑에게 말했던 것처럼. 루쉰에게 지금은 “성급하게 굴지도 말고, 맹목적으로 희생하지도 말며 끈질기게 투쟁”에 임하는 것이 필요할 때이다.


2015. 1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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