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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읽기

죽음을 슬퍼하며

by 홍차영차 2015. 10. 21.

 

사랑과 혁명은 일상을 꾸리는 것

- 루쉰 전집 2권, 방황 <죽음을 슬퍼하며> -

 

 

 

1925년은 루쉰과 쉬광핑의 교류가 시작된 해였으며, 이글이 쓰여진 10월은 베이징여사대 사건에 루쉰이 적극적인 개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즉 <죽음을 슬퍼하며>에서 나오는 쥐안성과 쯔쥔을 보면 루쉰과 쉬광핑의 관계가 떠오른다. 쥐안성과 쯔쥔이 어떤 관계였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이런 모습은 자신의 아내가 가족과 함께 있는 상태에서 쉬광핑과 교류하고 있는 루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전통과 규범에 저항하는 사람들. 하지만 <죽음을 슬퍼하며> 전체를 읽어가면서 통감하는 부분은 루쉰에게 혁명이란, 사랑이란 일상을 꾸리는 것, 자질구레한 일을 하고, ‘강물이 흐르듯 끊임없이’ 밥먹는 일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고 루쉰은 이런 혁명과 쉬광핑과의 관계에서 겪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이 작품에서 처절하게 해부하고 있다.

 

 

루쉰과 쉬광핑

 

 

쥐안성에게 쯔쥔은 혁명이고 자유였다. 초조함 속에서 쯔쥔을 기다릴 때면 “생기가 돌지만” 그녀를 배웅할 때면 “열 걸음쯤 떨어져서” 걸었다. 이상 속에서 그녀를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그는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내다보는 늙은이”의 시선조차도 감당하지 못했다. 자유와 혁명은 희망이 되고, 인생의 활력이 되기도 하지만 혁명을 이뤄낸다는 것은 책임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처음 쯔쥔과 함께 살기로 결정하고 난 뒤에 혈색이 좋아지고 살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조여오는 현실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 계속해서 드는 생각이란 “그녀의 죽음”을 떠올리는 일이었고, 이어서 참회하는 일이었다. 차라리 혁명이 없었다면 혹은 이제는 현실에 타협하여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혹은 속으로 생각하기로 타락하고 약해지고 변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쯔쥔이라고 자기기만적 생각에 빠진다. 일상을 꾸리느라고 ‘개와 닭의 중간’쯤에 위치하게 된 자신의 모습에 분노하면서.

희망 없는 현실 속에서 쥐안성이 생각해 낸 해답은 점점 더 생존만을 생각하면서 고립되는 것 뿐이었다. 닭을 잡아먹고, 아수이를 내다 버리고 마지막으로 쯔쥔에게 말하길 “함께 멸망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길”을 가자고 헤어지기를 주장했다. 그는 닭을 키우고, 아수이를 자신보다 먼저 챙기는 쯔쥔을 이해할 수 없었다. 회관에 있었을 때는 분명히 말이 통하고 이해가 되었는데, 이제 아무런 책도 읽지 않는 쯔쥔. 신기한 것은 쯔쥔은 이런 현실에서도 “그다지 야위지 않았다는 것”. 어쩌면 이런 현실 속에서 실질적으로 혁명을 이뤄나간 것은 ‘번역’을 하고, 글을 쓰는 쥐안성이 아니라 쯔쥔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나는 나 자신의 것이지, 그들 누구도 나에게 간섭할 권리가 없어요!”라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쥐안성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말해준 뒤 쯔쥔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떠나갔다. 떠났다는 말만 남긴채. 그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 뒤 얼마있지 않아 죽는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실이란 결국 ‘희망’과 같지 않을까.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 아무도 걷지 않던 곳에 길이 나는 것처럼, 결국 희망과 진실이란 내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헤어지는 것이 새로운 길이라고,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일상의 혁명은 가능하지 않다. 어떤 희망도 그 적막을 깰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죽을수밖에 없었다. 쯔쥔이 죽고 난 뒤 쥐안성이 느끼는 감정은 혁명이 일어나고 난 뒤의 지식인의 모습처럼 보인다. 쯔쥔을 만나기 전에 회관에 있을 때 역시 적막하고 공허했지만, 그때는 기대와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쯔쥔의 죽음 이후 실제 혁명을 겪어보고 나니 ‘잠에서 깨어나서 아무곳에도 갈 곳없는 사람’처럼 쥐안성의 적막함을 더해갔다.

 

 

<죽음을 슬퍼하며>는“사정없이 나 자신을 해부한다”고 루쉰이 말했던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자신이 경험하는 혁명, 사랑 그리고 현실을 적나라하게 투영하면서. 하지만 이러한 적막과 모순적인 삶 속에서 루쉰은 끝까지 걸어가려고 한다. “망각과 거짓말”을 길잡이로 삼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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