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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읽기

<고독자>

by 홍차영차 2015. 10. 14.


혁명이 끝난 후

- <고독자> -


1919년에 일어난 항일, 반제국주의 5.4운동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중화민국이 세워지고, 1919년 5.4운동이 있었지만 루쉰에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루쉰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상을 꿈꿨고, 그 꿈을 행동으로 옮겼던 지식인들에게도 현실은 혁명 전보다 더 암울했다. 그저 윗대가리들이 ‘이름’만 바꾸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지식인들은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민중들이 보기에도 역시 지식인들은 ‘괴상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이 보기에 “서양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은 그동안의 모든 전통을 무시하고 뒤집어 엎는 과격한 행위를 할 것이 뻔한 사람들이었다. 쓸모가 없을뿐 아니라 그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졌다.

혁명 이후의 ‘새로운 세상’ 역시 지식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름만 바꿔 단 이들에게 혁명을 만들었던 지식인들은 필요없는 존재였다. 단지 그들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만 그들의 이름과 글들이 필요했을 뿐이다. <고독자>의 웨이롄수는 이런 지식인의 암울함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적막한 상황을 보여주는 듯하다. “일생동안 스스로 만든 고독 속에서 살아온” 할머니의 죽음에 통곡하며 울 때조차 아무도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익숙한 것은 전통과 관습에 따른 ‘형식적인 울음’이었지 롄수처럼 “마치 상처 입은 이리”가 울부짖는 것같은 울음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고향 사람들은 그를 그저 신기하고 특이한 ‘외국 사람’처럼 바라볼 뿐이다. 롄수는 아이들을 희망이라고 부르며 좋아하지만, 결국에는 아이들 역시 무능하고 아무런 힘이 없는 웨이롄수를 따르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가 주는 음식조차 받지 않았다.

웨이롄수가 극중 ‘나’에게 보낸 편지는 혁명 이후 그의 의지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나는 아직 좀 더 살아야 하니까…….” 예전과 달리 자신이 좀 더 살아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살아가려고 한다는. 이제 혁명 이후의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웨이롄수는 깨달았다. 혁명이란 한 순간의 사건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상을 살아나가는 것이 바로 혁명이고 이런 일상적 삶이 있을 때에 혁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이들을 바라보는 롄수의 시선은 바로 혁명에 대한 그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롄수에게 혁명은 중국을 개혁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혁명에 무슨 나쁜 씨앗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처럼. 하지만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혁명이 일어난 이후 롄수가 겪었던 것은 자신을 모략하고 힘들게 하는 현실이었다. “아직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이”가 자신을 죽이려는 모습을 보면서 롄수는 이제 혁명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 생명을 살리는 것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그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아이들에 대한 태도 역시 바꾼다. 현실과 타협한 롄수는 이제 아이(혁명)들을 놀리면서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지위가 올라갔고 어떤 사람은 떨어졌다. 어떤 사람은 계속 전진했다. 나는 전장에서 같이 싸웠던 전우들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경험하고서 어쩌다 붙여진 ‘작가’라는 직함을 갖고 여전히 사막 속을 걷게 되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루쉰과 웨이롄수의 차이점이 드러나는 것 같다. 루쉰과 다른 혁명가들과의 차이점. 루쉰은 자신이 누누히 이야기했던 것처럼 혁명은 한 순간의 열정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쉬광핑을 비롯해 아끼는 제자들에게 헛된 피를 보지 않도록 자제시켰던 루쉰. 그 역시 5.4 운동 이후에 심한 적막감에 빠져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했다. 24년과 25년에 계속되는 그의 소설들이 바로 이런 그의 의지였을 것이다. 과정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고독자>의 웨이롄수가 고백하는  “좀 더 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은 바로 루쉰의 고백일 것이다. 23년에 일어난 철도노동자 학살과 25년에 발생한 5.30 사건을 경험하고 루쉰의 이런 생각은 좀 더 확고히 치열하게 하지 않았을까. “이전처럼 담배연기가 문틈으로 새어나가는 것까지도 조심하게 되었다. 조심한다는 것은 숨 가쁜 고통이었다.” 매순간 이런 고통 속에서도 루쉰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루쉰은 사람들의 심경이 좋아질 수 있도록 그래서 계속된 겨울 속에 있는 중국에 봄바람이 불기를 바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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