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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파지스쿨, 네트워크 학교 맞아?

by 홍차영차 2015. 8. 23.

파지스쿨, 네트워크 학교 맞아?




우리가 미니학교를 만들 때 품었던 생각은 문탁에서 경험한 공부의 기쁨과 즐거움을 아이들과 함께 느끼고 싶다는 아주 간단한 것이었다. 이렇다 보니 문탁 세미나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파지스쿨에서도 당연하게 일어났다. 매 수업시간마다 시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공적인 것이 아니라 ‘공통적인 것’에 대한 감각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파지스쿨은 사람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 역시 상상도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14년 파지스쿨에서도 그랬지만 15년 파지스쿨에서도 제일 강조했던 것은 기본적인 윤리 지키기였는데,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그냥 해결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우리의 공부를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한 것 같다.


요가, 시쓰기, 암송 그리고 시험?

우리는 기존의 학교태와 다른 방식으로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 다니는 학교를 실험하고 있다. 1년을 지나고 보니 아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4과목 조차도 힘들고 시간이 없다고 한다. 텍스트가 아이들이 읽기에 너무 어렵고, 그래서 읽고 쓰는데 일주일의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그런데 정말 그런가? 생각해보면 파지스쿨러들이 일주일에 1번 혹은 세번 나온다고 하더라도 차이는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공부의 발명에 있는 것 같다.

함께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이런 점에서 N프로젝트로 진행된 요가와 시쓰기는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준 것 같다. 각자 시를 읽고,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서로에게 읽어주는 경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요가를 통해서 자신의 몸을 써보는 것. 실내에서 뿐 아니라 햇볕이 내리는 곳에서 소리내어 책을 읽어 본다는 것. 스쿨러들에게 힘이 되는 수업이었을 것 같다. 그리고 여울아쌤의 정성으로 가능한 것 같지만 외국어 수업에서 에세이 쓰기와 프리젠테이션을 병행한 것 역시 그랬던 것 같다. 2분기 마지막을 학생과 교사 모두의 암송 테스트로 마친 고전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외국어 프리젠테이션과 고전 1분기의 암송은 문탁의 동학들을 초청해서 발표회를 진행했는데, 아이들과 교사 모두에게 좋은 지적 긴장감을 주는 방식인 것 같다.

14년과 다르게 15년 인문 수업에서 새롭게 이루어진 것은 ‘서술시험’을 통한 세미나 마무리 방식이었다. 문탁 세미나, 파지스쿨 수업에서 주된 마무리는 에세이를 쓰는 것이다. 에세이를 쓰면서 세미나에서 부딪친 개념을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보는 것은 아주 큰 공부가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에세이를 쓰다보면 혹은 한 번에 2~3편의 에세이를 쓰게 되면, 형식만을 맞추면서 에세이가 마무리할 때가 있다. 즉 에세이의 밀도가 떨어지게 된다.

문탁에서 시험은 본다? 시험을 본다는 것이 스트레스를 주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일단 파지스쿨러 각자가 자신이 맡은 부분에서 중요한 개념을 자신의 말로 요약하도록 했다. 그리고 서로가 정리한 요약을 가지고 공부하고 시험 문제를 만들었다. 정리하고, 시험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시험 본 내용을 함께 점검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어렵다고 여겼던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에 나왔던 다양한 개념들에 대해서 각자가 시험 답안으로 작성한 것을 읽어주고 토론하는 것은 색다른 공부 경험이 되었다. 이런 방식이 집단 지성을 드러내는 새로운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한 방식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일주일에 두 번 나오는 학교로, 영/수/사/과 중심이 아닌 것을 시도했듯이. 언제든 더 좋은 방식의 배움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서로 서로를 의지해 가면서.





인문교사, 고전수업 학생으로

파지스쿨의 출발점은 공부하는 교사에 있다.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기 위해서 가르치는 것. 물론 이렇게 편 가르기처럼 구분될 수 없겠지만, 파지스쿨에서는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함께 공부하는 교사가 있을 뿐이다.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치는 순환이 일어나는 곳, 파지스쿨!

지난 1, 2분기에 나는 학생으로서, 교사로서 파지스쿨을 모두 경험했다. 인문수업과 달리 <논어>를 읽는다는 것은 내게 매우 새로운 경험이었다. 어른들이 함께 하는 세미나와는 한 차원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교사가 아니라 배우는 학생으로 참여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함께 배운다고는 하지만 항상 교사의 입장으로만 수업에 들어서다가 고전수업에서 학생으로 아이들과 함께 있게 되니 처음에는 사고의 전환이 쉽지 않았다. 머리로는 모두가 배우면서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고전수업에서도 문득 문득 가르치는 마인드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내가 인문수업에서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과 함께 고전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아이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아닌가? --;) 고전 수업 초반에 뿔옹은 교사인가 학생인가를 자꾸만 물어봤던 제윤이의 혼란이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더 인상 깊었던 것은 고전의 두 분 교사의 모습이었다. 고전 수업 전체적으로 <논어>의 원문과 해석을 지도하기는 하지만 선생과 학생으로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공부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논어> 원전이라는 특성이 그런 수업 분위기를 낳기도 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해석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과 선생님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스스럼 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멋지게 보였다. 이게 바로 파지스쿨의 장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2분기 마지막 테스트(?)는 위정편을 암송하는 것이었는데, 학생과 교사 할 것 없이 모두가 참여자로 모두의 앞에서 암송 테스트를 하는 모습은 참 아름답게 보였다. 이런 의미에서 어쩌면 파지스쿨의 인문 혹은 다른 수업의 텍스트는 ‘원전’을 갖고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더 자연스럽게 공부하면서 배우는 모습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파지스쿨은 네트워크 학교

14년 파지스쿨 6개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파지스쿨 수업이 아니라 76.5활동과 11월에 있었던 인문학 축제였다. 아이들은 76.5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처음 ‘시위’라는 것을 경험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교사와 친구들과 함께. 이런 경험들은 나에게도 새로운 사건으로 기억된다. 파지스쿨과 1:1의 관계에 있지는 않지만, 문탁과 마을이라는 관계망 속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 축제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 하지만 15년에는 아쉽게도 스쿨러들이 거의 아무런 활동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아니 참여하지 않았다. 파지스쿨의 배움은 오로지 수업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아이들은 파지스쿨을 넘어서 <주권없는학교>의 활동에도 별 관심이 없었으며 당연하게 문탁의 다른 활동들에 대해서는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마을 잔치에서 ‘매니저’ 역할을 제안할 때도, 밀양의 활동과 탈핵 광화문 시위에도 아이들은, 아니 우리들도, 거의 아무 반응하지 않았다. 가장 기본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탁 주방의 경험도 그들에게는 귀찮은 일처럼 보였다. 물론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이유를 댓고, 우리 역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변명이었다. 텍스트가 어렵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서 시간이 없다는 것. 하지만 돌이켜 보면 문탁에서도 텍스트는 어느 때나 어렵고,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뭘 간과한 것일까?

인문 수업의 경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텍스트 읽기와 쓰기이다. 그렇다면 어렵다고 느껴지는 텍스트를 읽을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지적인 호기심만으로도 가능할 수 있겠지만, 텍스트를 통한 배움이 바로 ‘현장’과 연결될 때 자신도 모르는 힘이 생겨날 것이다. 반대로 아이들이 텍스트 읽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그럴만한 동력을 자신의 현실에서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장과 끊어진 수업은 힘(dynamis)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지난해 인문 수업에 대한 평가에서 나는 ‘지능-지능’을 넘어서는 ‘의지-의지’의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배움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두 사람 사이에 의지-의지가 부딪쳐야 한다. 그리고 의지-의지의 만남이 있기 위해서는 지극한 마음, 간절함 그리고 절실함이 합쳐진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그 무엇’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관계망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볼 수 있는 경험이 중요하지 않을까. 파지스쿨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는 ‘작업장’이나 ‘파지사유’, ‘웹진’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설명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활동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것 같다. 왜 ‘파지사유’는 스쿨러들에게 50% 할인된 가격으로 음료를 제공하는지, ‘자누리 화장품’은 왜 아는 사람들에게만 화장품을 파는지와 같은 것. 돈이 있는데 굳이 ‘복’을 만들어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바로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관계망 속 자신을 경험하는 것은 이론적인 설명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시간당 6000원밖에 벌 수 없는 현실에서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청소년/청년들에게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파지스쿨에서 하는 공부와 활동들이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원리이기에 더욱 그럴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파지스쿨이 해야 할 것은 기본적인 삶의 윤리와 신체성의 회복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우리는 아마도 그것을 공부 중심으로 진행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파지스쿨이 하나의 사건이 되고, 우리의 수업이 현장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 자신이 자신의 공부를 활동으로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교사 스스로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활동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같이 이루어질 때 자연스럽게 파지스쿨의 배움은 더 찰지게, 밀도있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공부에서, 파지스쿨에서 횡단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보너스가 아니다. 그건 파지스쿨의 존재론적 기반이어야 한다. 


*문탁네트워크 웹진(116호)에 올렸던 글.        www.moontak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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