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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

by 홍차영차 2014. 1. 21.



배움으로부터의 도주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던 일본의 아이들이 이제 공부하지 않는 아이들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토 마나부는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로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꼽는다.

 

근대화 과정은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여전히 일본의 아이들은 세계 최상위의 공부성적을 보여주고 있으나 최근의 데이터에서 학교 교육 외 공부시간으로 바라본 공부의욕에 있어서는 비교 국가 중에서 최하위 권을 나타내고 있다. 이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일본보다 더욱 압축된 경제발전을 이룩한 우리나라 역시 동일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사토 마나부가 분석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교육 근대화 특징을 정리해 보도록 하자. 첫째 동아시아 국가 모두가 압축된 근대화 과정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런 빠른 근대화 과정에 대응하기 위해서 타이완, 싱가포르, 한국, 중국과 같은 국가들은 교육을 통해 사회 이동성을 높임으로써 국민 통합과 산업화를 추진했다. 사회이동유동성(social mobility)은 압축된 근대화를 추진하는 최대 동력이었고 이를 위해 자연스럽게 과격한 입시 경쟁이 유발되었다.

경쟁을 통한 압축근대화는 산업주의 사회의 급속발전과 평행하여 진행되었다. 다시 말해 급속한 산업화가 요구하는 소수의 지식인과 다수의 단순 노동자를 공급하기 위해서 피라미드형 학교와 학력 구조가 생겨났고, 이를 위해 학교는 대량의 지식을 획일적,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생산성, 효율성을 걸고 대량생산을 실현하는 공장 시스템의 모습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중앙집권적인 관료주의 통제, 교육의 내셔널리즘, 미성숙한 교육의 공공성을 공통적인 특징으로 보여준다.

 

사토 마나부는 여기에서 학력의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다시 한 번 질문하면서 현대 사회의 격심한 변화와 학력과의 관계를 말한다. 그는 학력이 화폐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학력은 화폐와 동일하게 평가기준으로 기능한다. 지금 우리는 음악, 영어, 과학 학습의 경험이 동일하게 점수로 종합, 비교되는 것을 아무도 의문시 하지 않는다. 또한 입시 시장이나 노동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교환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화폐와 같이 학력 역시 저축 자체를 원하는 교육 개념으로 저축욕망이 투자로 작용하여 교육 활동의 기반이 되었다. 이와 같이 형성된 교육의 개념에서 보자면 학력의 가치도 화폐처럼 사회와 경제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게 된다.

 

압축근대화가 종언으로 인해 발생한 학력 저하를 막기 위해 정부가 취하는 대책 역시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첫째 수준별 학습을 통해서 학력 수준을 높이려고 하지만 어떠한 체제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학력차이를 줄이지 못했고, 현재 수준별, 능력별 지도를 교육 개혁으로 추진하는 어떤 선진국도 없다. 역으로 다양한 능력이나 관심을 가진 아이들이 서로의 차이를 통해 배우는 협동학습이 교육개혁의 추세이다. Back to the Basics라는 생각 아래에 대부분의 교사들은 아이들이 막히면 아래 수준으로 내려가 가르치려고 한다. 하지만 학력은 기초부터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에서부터 끌어올려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친구와 교사의 원조를 통해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배움에도 역시 점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토 마나부가 배움을 이렇게 정의한다. 배움은 사물이나 사람과 만나고 대화하는 행위이며, 타자의 사고나 감정과 만나고, 자기 자신과 만나 대화하는 행동이다. 즉 배움이란 나만의 세계 만들기, 친구 만들기, 자기 만들기가 수행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공부로부터 사토 마나부가 주장하는 배움으로의 전환을 위해 교실에서 필요한 실천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교과서와 칠판에 비춰진 지식의 그림자가 아니라 도구, 소재, 사람을 매개로 하는 배움이 필요하다. 지식의 전달이 아닌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활동적인 배움을 실현해야 한다. 두 번째로 우리는 공부라고 할 때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학습한다.”는 것을 21세기의 배움으로 제기하고 있지만 진짜 공부는 타자와의 대화를 통한 협동적인 배움으로 가능하다. 계속해서 의존해서는 안 되겠지만 상호간 서로 의존하고 서로 자립하는 형태로 개인과 개인이 서로 부딪쳐가며 만나는 협동적 배움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지식이나 기능을 획득하여 축적하는 공부에서 탈피하여 지식이나 기능을 실현, 공유하여 음미하는 배움이 요구된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이해방식을 발표나 작품으로 표현하여 친구들과 공유하고 서로 음미하는 반성적 학습이야말로 21세기에 필요한 교육의 실천이라고 말한다.

 

일본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는 학력경쟁을 통해 사회 이동을 활성화시키는 특이한 방법으로 교육과 산업의 압축 근대화를 달성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육과 경제의 압축 근대화 정점에서 냉전 구조가 붕괴하고 정치, 문화, 경제의 글로벌화가 확대되는 상황으로 인해 동아시아는 아시아의 위기라는 미증유(未曾有)의 경제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한국 역시 대학 진학률이 60%이고, 국민 1인당 GDP1만불일 때 IMF를 겪었다. 동아시아 교육은 교육의 근대화가 정점에 달하고 저성장 시대로 돌입하면서 학력신화가 붕괴되자 순식간에 무너졌다.

 

사토 마나부가 주장하고 분석한 결과는 일본보다는 우리에게 더욱 유효하게 보인다. 압축된 근대화의 종언으로 이제 이런 방식의 공부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힘들었지만 희망이 있던 시기에서 먹고 살만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로, 기적은 이루었는지 모르겠지만 기쁨은 잃어버린 시대로 상황은 변했다.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그렇게 직장을 얻는 시대는 끝이 나 버린 것. 실제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다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되는 기초 학력 수준이 아니라 저마다의 개성과 독특함을 살려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배움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잃어버린 희망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가족, 학교, 국가의 표상을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 아닐까. 푸코가 말했던 것처럼 엄격하면서도 조심스럽지만, 실험적인 태도를 가지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014. 0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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