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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이야기

공부, 남자를 구하다 -1

by 홍차영차 2013. 11. 28.



공부, 남자를 구하다 -1 

 

요즘 나는 매주 월요일 아침 문탁에서 마을교사아카데미, 저녁에 남산강학원에서 자연학세미나, 그리고 토요일 같은 곳에서 논어를 배운다. 일주일동안 이 외의 스케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주 심플하고 단조로워 보이는 생활이다. 시간이 남을 것 같지만, 오히려 각각의 세미나에서 보는 책들과 개인적으로 선정한 공부 커리큘럼을 따라가다 보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12시간이 모자라게 느끼며 지내고 있다.

여기서 나는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서 왜 이런(?) 생활을 하게 됐는지와 어떻게 문탁을 기웃거리게 됐는가, 나의 퇴직 사례를 통해 어떻게 하면 회사를 나올 수 있는지의 조건, 그리고 짧은 백수 기간 동안 느꼈던 정체성 혼란을 남성의 입장에서 공부라는 관점과 연결 지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나에게 이 선택은 특별하거나 선구자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질문을 하면서 나온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박진영의 고백처럼.

 

나 놀만큼 놀아봤어

나 놀만큼 놀아봤어

왠지 몰랐어 뭐 때문에 열심히 살지

돈을 벌어서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

둘러보았어 무엇으로 나를 채울지

먹고 먹어도 왜 계속 배가 고프지

난 놀만큼 놀아봤어 또 벌만큼 벌어봤어

예쁜 여자 섹시한 여자 함께 즐길 만큼 즐겨봤어

결국엔 또 허전했어 언제나 그때 뿐이었어

아침에 술 깨 겨우 일어날 때

그 기분이 싫어졌어

안정이 되면 다시 불안해지고 싶고

불안해지면 다시 안정이 되고 싶어

생각해봤어 정말 갖고 싶은 게 뭔지

근데 가져도 왜 계속 배가 고프지

눈 감을 때 두렵지 않기를

눈 감을 때 웃을 수 있기를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 내딛는

힘찬 발걸음으로 살기를

 

이젠 사랑을 하고 싶어 baby

혼자 집에 오는 길이 싫어 lately

이런 날 어서 구원해줘 baby 제발

꺼지지 않을 음식으로 나를 배 불려줘 Save me


JYP박진영, 놀만큼 놀아봤어(Had enough parties)





 

1. 마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에 참 좋은 나이

마흔이 넘어가기 전에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별 고민 없이-고민할 수준도 환경도 되지 않았고-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는 경제적, 사회적인 압력에 자동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회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제는 지금이 아니면 영영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그런 인생으로 이곳에 눌러 앉을 것 같은 심연의 두려움이 생겼다. 이제부터의 인생은 다른 사람의 기준과 시선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지고, 아니 그냥 내 맘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12년 직장 생활을 그만두었다.

 

비논리적이고, 무책임하게 보이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내가 워낙 이기적인 사람이기에 손해 보는 결정은 잘 하지 않고, 웬만해서는 위험을 감수하지(risk-taking) 않는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나의 선택이 최선의 것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보면 어떤 가치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의 적성이 무엇인지를 전혀 고민하지 않는 20여년 전의 상황에서 부모, 선생님,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학교 성적만으로 결정된 인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잘 살아오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이제야말로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 깊게 생각하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한다면 이후의 인생은 당연히 더 나아지지 않을까? 20대 대학에서 보냈던 4년 정도의 기간을 그때와는 다른 밀도와 경험을 가지고 다시 한번 공부하면서 보낸다면, 이제까지 살아왔던 인생보다 나빠질 수는 없을 것. 벌써부터 나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될지 기대가 된다. 20대의 젊음에 비해 부족한 열정과 패기는 더 치열한 공부를 통해서 커버하면 된다. 경험적인 면으로나, 지적인 면, 그리고 시기적인 면으로 나쁠 수가 없는 선택이다.

 

퇴직해도 별 수 없구나, 뭔가 다른 척 하더니만 봐라 결국 다 그렇게 사는구나라는 말을 듣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공부를 통해서 제대로 된 나만의 철학 만들기를 진행해 보려고 한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 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아직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 모르니까, 가치 있게 살면서도 즐겁고 흥미진진한 삶을 살고 싶으니까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나의 공부가 놀이처럼 취미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공부는 생존이며,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삶으로 구현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하는 토론장이고, 생활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공부는 이런 내 각오와 수련이 무너지지 않도록 매일 매일을 지적망명인[각주:1]처럼 삶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방법이며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주체를 만들어가는 자기기술[각주:2]을 연마하는 길이다.


공부, 남자를 구하다 - 2 


  1.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p59~77, 망명자적인 지식인의 역할은 지적 긴장감 속에서 대담한 용기를 가지고 관습의 논리에 따르지 않으며 변화를 표상하는 일에 멈추지 않고 전진해가는 것이라고 사이드는 이야기한다. [본문으로]
  2.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푸코는 현재 국가와 법에 예속된 자기 인식 개념과 다르게 고대에는 예속되지 않은 자기로서 자기를 구축하는 자기 기술들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이러한 자기 기술을 통한 새로운 주체성 회복 혹은 발견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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