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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이야기

공부, 남자를 구하다 -3

by 홍차영차 2013. 11. 28.



공부, 남자를 구하다 - 3


4. 공부, 남자를 구하다?!

퇴직 후 5개월밖에 안된 신참 백수. 평일에 놀러 갈 수 있는 자유를 맛보고 있고, 여유 있는 아침 시간과 하고 싶은 것(여행하기, 공부하기, 영화보기)들을 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돌이켜 보면 4개월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문탁에서의 공부가 없었다면 과연 나는 지금과 같은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해주는 지식인의 표상은 나에게 지식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동시에 내가 선택한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었고, 그리스-로마시대까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푸코가 주장했던 자기 배려 개념을 통해서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이 이상향을 쫓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스스럼 없이 드러내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함께 공부했던 학우들을 보면서 같은 고민을 하는 동무들이 있다는 동질감은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나를 직장 밖으로 나오게 한 것도 공부요, 예술 작품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구축해 나가도록 하는 것도 공부이다. 지금 나는 나를 노는 남자로, 책 보는 남자로, 요리하는 사람으로 나를 새롭게 구축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노는 사람이 뭐 어떤가? 우리는 일주일에 40시간 이상을 일하면서 일년에 2~3주 휴가를 자랑스러워 하지만 아프리카의 부시맨 같은 수렵채취인들을 살펴보면 일주일에 12~20시간밖에 일하지 않고, 대부분 놀이를 하거나 운동, 예술, 음악, , 상호방문과 같은 여가시간을 즐기지 않던가 말이다.[각주:1]

 

그러면, 이런 저런 고민 없이 그냥 공부 안해버리고 다니던 직장 계속해서 잘 다니고 돈도 벌면서 지내면 되는 거 아닌가? 천만의 말씀이다! 지랄총량의 법칙[각주:2]이 있다고 했던가, 차라리 어릴 때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이 사고의 크기도 적고 내용도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 있게 되는 것. 하지만, 계속해서 현실 직시를 피하고 아무런 공부와 질문 없이 지내는 상황에서 지내게 되면 회사가 아닌 사회 속에서 자신을 변화시켜 갈 상상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제 회사에 입사하는 즉시 퇴직을 생각 하는 시대에 공부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해야 한다. 혹 자신이 정말로 공부에 취미가 없다면 주변의 누구라도 자신에게 있어 철학 공급자[각주:3]가 될 수 있도록 공부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처럼 공부는 우리들을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무언가에 대하여 자유하다는 것은 그것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선택권을 자기가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BMW가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생각, 에르메스 백을 사기 위해서 미칠 듯 일하는 것은 그 선택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통해 이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기 훈련 중 하나로 사물들을 아주 작은 시간 속에서 분해하여 보거나 미세한 시선[각주:4]을 통해서 사물들은 보는 것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부-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으로 가치를 두어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 가능해진다. 로마 시대의 황제처럼.

 

공부는 지적인 발견과 같은 기쁨을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세상과 나에 대한 진실을 대면케 하고 그 진실을 대면할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므로 공부는 계속되는 불화(不和)를 만들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지식을 가졌다 해도 내 인생에 아무런 변화, 동요, 간섭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헛된 공부일 뿐이다. 회사 근무 시절을 돌이켜 보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부가 너무 설렁설렁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방식으로 새로운 주체를 구축할 수 있을지 두려움과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나만의 과정과 질문들이야말로 부단히 자기 삶의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고 변경하는 경험 속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된다. 다른 사람과 똑같은 길을 걸어갈 필요는 없으니까. 다른 생각을 가지고 나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 자신의 삶을 유일하고 독특한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 가는 것, 한번도 되어보지 못한 나 되어보기! 흥미 진진하지 않은가? 사실, 여행의 묘미는 한 번도 가본적 없는 곳으로 떠날 때의 설레임과 또 그 준비과정이 아니었던가. 도착할 그곳을 상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공부가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먼저 지금의 현실과 공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면서 지금과 같이 문탁네트워크에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제도권 학교 혹은 학원에서 이제는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앎을 삶으로 경험하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인생 어떻게 펼쳐질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남자들이여 함께 공부해 봅시다. 아무도 던지지 않았던 질문들을 가지고.


2013. 11. 28


*본 글은 문탁네트워크 2013 인문학 축제(11/28~30) 북앤톡번외편에서 발표된 내용임.


공부, 남자를 구하다 -  1

공부, 남자를 구하다 -  2


  1. 제레미 리프킨, 엔트로피(entropy), P26 [본문으로]
  2. 지랄 총량의 법칙: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동안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라는게 정해져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사춘기에 그걸 다 쓰고 얌전히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릴 적 범생이로 살다가 뒤늦게 불현듯 찾아온 지랄을 주체 못해 여러 가지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는 것 (김두식, 『불편해도 괜찮아』, 창비) [본문으로]
  3. 2010년 문탁 인문학 축제 자료집 中 ‘돈 버는 남편이 있다면, 철학하는 아내도 있어야’ 스마일리 인터뷰 내용 참조 [본문으로]
  4.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p31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표상 점검 방식으로 보면 걸그룹의 멋진 동작들도 0.1초의 시간으로 잘라서 보게 되면 그저 이상한 동작(?)들을 취하고 있는 소녀들일 뿐이고 그들의 예쁘장한 외모도 현미경으로 보면 그저 땀구멍이 숭숭 뚤린 살들 혹은 단백질과 탄수화물로 만들어진 세포만 보이게 되므로 우리의 정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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