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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이야기

공부, 남자를 구하다 - 2

by 홍차영차 2013. 11. 28.





공부, 남자를 구하다 - 2

2. 퇴직의 최적 조건

나의 직장 생활을 돌이켜 보면 초기 RA(Research Assistant)라는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지낼 때도 있었으나 이후에는 전문연구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원하는 연구 주제로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환경에서 지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이 잦은 야근과 월화수목금금금을 할 때에도 나는 초기 7~8년정도는 6시 이후에 퇴근해 본 횟수가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회사에서 저녁을 먹을 때면 나를 알고 있는 동료들이 의아해 하고,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엄~청나게 바쁘구나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후 새롭게 시작한-정말 될까 하는 의구심으로 시작했던- 신기한 공명(resonance)방식의 무선전력전송 연구[각주:1]가 의외의(?)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대학원 때도 해 보지 않던 밤샘 연구와 56시간 연속실험과 같은 신나는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다. 운이 좋았던지 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도 받았다.

 

이런 생활 속에서 불현듯 입사 초창기부터 퇴직을 고민했던 내가 편안한 생활에 젖어버렸구나, 이러다가 회사에서 정년을 맞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덜컥! 책 읽기를 좋아하던 터라 이 시기에도 여러 책들을 즐겁게 읽고 있었고, 공부방, 과학교실 등 회사 차원이나 혹은 개인적으로도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양식 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자기 위안에 불과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독서와 봉사 행위들은 진짜 나의 생각과 삶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에게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던 것.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없다면 공부한 것이 아니다[각주:2]라는 김영민의 말에 비추어 보니 수년 동안 나는 그저 관념으로만 책을 읽었을 뿐, 내 몸과 근육의 상태는 전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 삶에는 공부를 통해 아무런 불화와 균열이 생기지 않았던 것. 이후 나는 나를 바꿔가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생각과 삶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내가 부딪치는 관계의 배치에 변화를 주어야 했다. 그래서, 회사에서 가장 바쁘고, 자신의 시간을 전혀 내 맘대로 조정할 수 없는 부서로 자리 이동을 시도했다. 연구원에서 전략팀 팀원으로. 전략팀 혹은 기획실은 회사 전반을 실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리이다. 그래서, 거의 매일 야근에 예고 없이 떨어지는 일들, 그리고 밤 11시 업무 지시 후 다음날 8시 리뷰처럼 언제나 ASAP[각주:3]를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제야 편안함에서 빠져나와 퇴직할 수 있는 조건 하나가 완성되었다.

 

내가 퇴직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동료들과의 마찰, 재정적인 문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 아니라, 지금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너무나도 명확해지는 암울한 미래의 모습 때문이었다. 한 기업의 기획실과 같은 부서에서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무, 전무, 사장과 같은 조직의 임원들을 가까이서 보게 되는데, 눈물 흘리는 후배들을 다독이고 함께 매일 매일 야근을 하면서까지 10년 후에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는- 엄청 열심히 해도 임원이 되긴 쉽지 않지만- 않았다. 수 억원의 연봉을 받고, 골프 회원권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아무런 감동과 흥분도 없는 일로 하루 하루를 꽉꽉 채워가는 그들의 모습이 나에게는 의미 없고 무가치하게 보였다. (다들 아시겠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회사에서는 더욱 더 비인간적이고 몰상식한 일들을 시키고, 외적 보상을 경험하게 하면서 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 곳에서는 내가 생각한 가치관을 이루며 살 수 없다는 생각을 극명하게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이런 공부와 실천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직장에서 대학생들에게 직장 생활을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직장 선배로서 멘토링을 하는 기회를 통해서였다. 핵분열을 통해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 폭탄도 초기의 핵분열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지 않으면 그저 고철에 불과한 것인데, 대학생 멘토링은 그들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나의 인생 변화를 위한 실천의 뇌관이 되었다. 그들을 위해 어떤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까 고민하고 공부하면서 선택한 3가지의 토론 주제는 현실 직시의 필요성과 방법, 가치관의 정의와 자신만의 삶의 기준 만들기', 그리고 '자신의 꿈을 위한 실천 방법'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3가지 항목을 정리해 보면서 나라는 사람이 했던 일과 하고 있는 일의 현실을 파악하게 되었고,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를 정리해 보면서 !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나의 비전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 보니 푸코의 이야기처럼 현재에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에 미래에 자신이 어디에 있을지 무엇을 사유할지에 대해 더 이상 정확히 알 수 없는[각주:4]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인생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인생이 잘 풀린다고 해 봐야 내가 혐오했던 모습의 프로토타입(prototype)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퇴직 날짜를 얼마 앞두고 몇몇 선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저 공부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아무리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다들 믿지를 못하고 내가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퇴직하고 몇 개월 만에 만난 동료가 진지하게 말하기를 히피처럼 꿈만을 바라보고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고, 미래에 대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건 너무한 것이 아니냐고 나에 대해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주었을 때, 사람들의 시선을 좀 더 확실히 체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 속에서 아무런 가치와 즐거움을 느끼지도 못하고, 1년 후, 2년 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이는 자신의 미래를 보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야 말로 사실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라고. 퇴직, 그것 그리 어렵거나 심각한 일 아니다.

 

3. 직장 없는 남자, 나는 누구인가



직장을 그만 두면서 먹고 살 것에 대한 부분을 가족과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래를 위해 가입했던 보험들과 저축들, 그리고 이외에 부가적으로 들어갔던 부분들을 제하고 나니 한 달에 150만원 정도면 우리가 생활하기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가정 하에 몇 년간은 공부에만 집중하기로 하였다. (실제로 이 정도가 우리 가족이 2~3년 후에 함께 벌고자 하는 액수이다.) 하지만, 퇴직을 하면서 드는 진짜 두려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직장 없는 남자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와 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 직업이 없는 상황이 되니 나를 무엇으로 바라봐야 할지 어려움에 빠졌다. 예전에 나는 00에 살고, 00기업에 다니는 연구원으로 독서와 테니스를 즐기는 나름 쿨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나의 본체가 되어버린 직장에서 나오게 되니 나를 무엇으로 나타내야 하는가의 문제가/두려움이 발생했다. 문탁에서 처음 자기 소개를 할 때, 오랜만에 대학원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나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당혹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말 나를 나타내는 것이 직장밖에 없었는가 되돌아보게 되었는데, 이런 정답 없는 질문에 쫓겨 다시금 직장을 찾아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생기게 된다. 또한, 무엇이 자기로 하여금 자기를 구축하게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하는 일(직업) 외에 나는 누구일까? 멋진 시계, 자동차, 내 집이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인지. 내 안에서 계속되는 질문과 고민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 자신조차도 직장 없는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게 되는데, 계속되는 타인들의 시선은 남자를 더욱 힘들게 만든다. 특히 직업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나를 누구라고 소개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고, 멀쩡한 대낮에 집 주변을 산책하거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조깅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날 사로잡는다. 오로지 돈을 벌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만으로 자기의 정체성을 구축시켜왔으니 다른 모습의 자기를 상상할 능력을 상실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모임이나 만남을 피하게 된다. 또한, 직업을 가지고 있을 때는 내가 책을 읽든지, 피아노 연주를 배우든지, 목공 설계를 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좋은 취미를 가지고 있고, 진정으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간다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직장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문제는 180도 달라진다. 똑같은 독서, 피아노, 목공을 하는 건데 사람들의 시선이 묘하다. 돈 많이 드는 목공은 해서 뭣에 써 먹을 거고, 음악은 돈을 벌고 나서 해도 된다고, 돈도 안 되는 책은 읽어서 뭘 할 것이냐고 보이지 않는 시선들이 날카롭게 내 목을 죄어 온다.


이런 정체성 혹은 사회성의 문제가 두드러지는 것은 변화된 상황과 관계에 대해서 자신을 변형시키는 변용능력의 부족 때문인 것 같다. 특히, 남성은 여성에 비해 새로운 환경과 관계에 대처하여 자신을 새로운 주체로 만들어가는 자기기술이 부족한 종족이므로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더욱 철저한 자기 수련으로서의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다시 말해서, 공부를 통해 기존 체계의 관습과 자아의 관성에 포박되어 생각과 의도보다 느리고 굼뜬 상태로 변해 버린 몸의 문제와 첨예하게 대치해야 하고, 그 몸을 이--고 가는 공부[각주:5]가 필요하게 된다.


공부, 남자를 구하다 - 3

공부, 남자를 구하다 - 1


  1. 자기공명방식 무선전력전송(Magnetic resonance wireless power transmission), 니콜라 테슬라(1856~1943)에 의해 제안된 아이디어로 그는 1894년에 최초로 라디오를 통한 무선 통신을 성공하였고, 전력을 무선으로 전송하는 실험을 1900년 전에 실행한 인물로 그의 과학적 실험과 테마는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본문으로]
  2. 김영민, 김영민의 공부론, p24 [본문으로]
  3. ASAP : as soon as possible (‘가능한 빨리’라는 뜻으로 회사에 다닐 때 동료들은 흔히 아삽이라는 말로 불렀다. “이것도 아삽인가요?”) [본문으로]
  4. 프레데리크 그로 외, 『미셸 푸코 진실의 용기』, P31 [본문으로]
  5. 김영민, 공부론, p209, 김영민은 이를 ‘몸이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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