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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석습3

<들풀> 1 생명 자체에 달라붙어 있는 ‘죽음’- 루쉰 , , , 왕후이 4장 - ‘무쇠방’에 대해 이야기할 때, 루쉰이 보여준 태도는 뭔지 모르게 모호한 면이 있었다. “희망은 미래 소관이고 절대 없다”라고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글을 쓴다니. 희망을 갖고 있다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은 믿지 않지만 그저 도와주겠다는 것인지. 그가 보여주는 삶의 태도는 항상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계몽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콕 집어서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면이 있고, 개인주의자 같지만 항상 사회문제를 놓지 않는 루쉰의 독특한 면모. 이처럼 서문에 쓰여진 ‘희망’에 관한 혼돈스러운 루쉰의 말은 에 와서 조금 더 구체적인 해석의 단초를 주고 있다. 특히 의 전체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죽음’에 대한 루쉰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왕후이가.. 2015. 11. 12.
루쉰이 사람을 기억하는 법 루쉰이 사람을 기억하는 법- , - 루쉰이 사람을 기억할 때는 그 사람을 통해 현재를 되돌아보고 또한 비판적 입장에서 미래를 다시 생각하기를 원할 때다. 은 루쉰이 샤먼대학에 있을 때 쓴 잡감문이다. 그곳에서 그는 “황량하던 섬에 처음으로 신문화의 분위기를 전파하”기 위해서 학생들의 원고를 평가하고 교열했고, 여러차례 강연을 하면서 ‘자유평등과 반항의 사상’을 전파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도중에도 루쉰은 샤먼에 있는 것이 편치 않았다. 수완은 좋을지 모르지만 허위의식과 교활함으로 가득찬 “썩은 수원” 구제강을 비롯해서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하나의 고도(孤島)였기 때문이다.이런 곳에서 그가 떠올렸던 사람은 “억양이 뚜렷한 어조로 말을 하려는 것 같아 양심의 가책을 받고 용기를 북.. 2015. 11. 4.
[루쉰읽기] 아침꽃 저녁에 줍다 1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 1924년은 군벌간의 전투가 가장 극심하게 일어났던 해였다. 그리고 1921년 창건된 중국공산당은 부르주아 세력과 연합하여 제국주의와 대항하라는 국제공산당의 요청에 따라서 1923년 국민당과 국공합작을 하게 된다. 당시 323명의 당원밖에 없던 공산당과 5만명의 당원을 가진 국민당과의 합작. 처음부터 불리한 합작이었던 국공합작은 결국 1927년 장제스가 주도하는 국민당 세력이 중국 초기 공산당 진영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5000여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4.12 상하이 사건으로 마무리 된다. 이처럼 중국이 괴이하고 난잡한 정치 상황을 겪고 있던 것과 마찬가지고 루쉰 역시 이 시기에 그의 생에 있어서 겪어야 할 끔찍한 사건들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1925년 베이징여사대 사건에서.. 2015.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