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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니체의 신약성서 해석

by 홍차영차 2024. 5. 2.

 

지하로 파고들어간 니체가 처음으로 마주친 것은 기독교라는 바위였다.

어마어마한 두께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를 가진 기독교라는 토대를 부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밑으로 내려갈 수 없었다. 다른 도덕들과 기준들도 인간을 옭아매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종교로서의 기독교였으니까. 니체는 여기서 유럽의 근원적인 도덕으로, 절대적인 도덕으로 여겨지는 기독교 교리를 깊이있고 세심하게 다룬다. 니체는 할아버지부터 목사였던 목사집안이었고, 니체가 어릴적부터 공부했던 것 역시 신학이었다.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또한 개인적으로도 이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었다.

 

"최초의 기독교인"이라는 제목을 가진 <아침놀> 68번은 바울신학의 요약이자 현재 기독교 교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신학적으로 보여준다. (기독교의 비판처럼 보이지만 아주 신학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니체가 보기에 2000년 전에 그리스도가 한 일은 니체가 하려는 일과 비슷했다. 예수 역시 당시에 절대적 진리로 여겨졌던 구약(모세5경과 십계명)을 부수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당시의 사제라고 할 수 있는 바리새인들을 독사의 새끼라고 말했고, 당시의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창녀를 친구로 여기셨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온 것은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고 선언했다. 예수님은 율법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과 행위를 통한 구원을 이야기했고, 실제로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서 그 일을 완성했다. 이제 (원)죄는 파괴되었다. 누구도 사제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었다. 니체는 죄 자체가 파괴되었다고까지 말한다.

그런데 19세기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마치 바리새인이 지금까지 살아남기라도한 것처럼 (율)법을 이야기한다. (율)법, 절대적 법칙,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니체는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고자 한다. <아침놀>을 비롯해서 니체의 다른 책들에서도 기독교의 이야기가 반복해서 철저하게 분석되는 이유다.

 

그는 단번에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된다. … 그는 사상 중의 사상, 열쇠 중의 열쇠, 빛 중의 빛을 갖고 있다. …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그가 율법의 파괴를 가르치는 선생이기 때문이다! 악에서 벗어나는 것, 이 말은 율법에서 벗어나는 것도 의미한다. …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 이것은 율법 역시 사멸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이것은 더 이상 율법을 위반하는 죄가 아니다. “나는 율법 밖에 있다.” “내가 이제 다시 율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르려고 할 경우, 나는 그리스도를 죄의 공범자로 만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를 범하기 위해 존재했기 때문이다. … 만약 그리스도가 죽지 않고도 율법의 이행이 가능했다면 신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결코 결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모든 죄가 제거되었을 뿐만 아니라, 죄 그 자체가 파괴되었다. (니체 <아침놀> 68 최초의 기독교인 중)

 

기독교를 직면했던 니체를 보면 루쉰이 생각난다. 루쉰 역시도 새로운 시대에 맞서 사회와 개인을 개혁하고자 했다. 루쉰이 마주쳤던 바위는 '공자'였다. 수천년동안 중국인의 생각과 행동을 옭아맸던 공자! 루쉰 또한 처음에는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공자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공자를 부수지 않는다면 어떤 변화도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루쉰이 중국의 니체 혹은 루쉰 그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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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공포가 달라지면 안전도 달라진다.

기독교로 인해 인생에 전혀 새롭고 무한한 위험성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새로운 안전, 향락, 휴양과 모든 사물에 대한 전혀 새로운 가치 평가가 생겨났다. 우리의 세기는 이 위험성을 부정한다. 그것도 전혀 양심에 거리낌 없이 말이다. 

 

59 청량음료와 같은 오류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기독교는 완전성에 이르는 지름길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도덕적 요구의 무거운 짐에서 해방하려고 했다. … 어느 것이나 오류였다. 그러나 사막에서 녹초가 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좋은 청량음료였다. 70

 

68 최초의 기독교인

세상 전체는 여전히 성경이 ‘성령’에 의해 씌어졌다고 믿거나 이러한 믿음의 영향 아래 있다. 이는 사람들이 ‘마음을 앙양하기’ 위해, 즉 자신의 크고 작은 개인적인 위기 속에서 위안의 암시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요컨대 사람들은 [성서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해석한다. 성서에는 가장 야심적이고 가장 뻔뻔스러운 영혼의 소유자들 중 하나이자 교활한 만큼 미신적이기도 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의 이야기, 즉 사도 바울로의 이야기도 씌어져 있다는 것, - 몇몇 학자를 제외하면 누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겠는가? … 그는 극단적일 정도로 광신적인 율법 숭배와 율법 옹오를 통해 자신의 양심과, 나아가 지배욕을 다시 달래려 했다. 그러나 “모두 헛되도다! 지킬 수 없는 율법의 고문을 극복할 수 없다”라고 스스로 말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 그리고 마침내 그를 구원하는 사상이 그에게 떠올랐다. 

… 그러나 율법을 제거하기 위해 그 죽음이 필요했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착상, 수수께끼에 대한 이러한 해답이 초래할 엄청난 결과가 그의 눈앞에서 소용돌이친다. 그는 단번에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된다. … 그는 사상 중의 사상, 열쇠 중의 열쇠, 빛 중의 빛을 갖고 있다. …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그가 율법의 파괴를 가르치는 선생이기 때문이다! 악에서 벗어나는 것, 이 말은 율법에서 벗어나는 것도 의미한다. …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 이것은 율법 역시 사멸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이것은 더 이상 율법을 위반하는 죄가 아니다. “나는 율법 밖에 있다.” “내가 이제 다시 율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르려고 할 경우, 나는 그리스도를 죄의 공범자로 만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를 범하기 위해 존재했기 때문이다. … 만약 그리스도가 죽지 않고도 율법의 이행이 가능했다면 신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결코 결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모든 죄가 제거되었을 뿐만 아니라, 죄 그 자체가 파괴되었다. … 이것이 기독교 교인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신의 영광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처럼 ‘신의 아들’이 되기 전에 겪어야 할 운명이다. … 이 사람이 최초의 기독교인이고, 기독교의 발명자다! 80

 

72 ‘죽음 이후’

기독교는 로마 제국 전역에 퍼져 있던 지옥의 형벌이라는 생각을 발견했다. … 죄인들에 대한 형벌로 영원한 죽음에 처해지는 것, 그리고 결코 다시 부활하지 못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위협, - 이러한 생각들은 육체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고 또한 세련된 이집트주의와 함께 육체를 영원히 구원하는 것을 희망했던 이 흔치 않은 인간들에게 충분히 강한 영향을 미쳤다. … 최초의 기독교인들에게 영원한 고통이라는 사상은 완전히 낯설었다. … 이교적이지만 전적으로 비유대적이라고 할 수 없는 저 지옥이라는 부가물이 선교사들에게 아주 좋은 수단이 되었다. 죄인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는 새로운 교설, 즉 영원히 저주받은 자라는 교설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교설은 완전히 색이 바래가고 있던 영원한 죽음이라는 사상보다 더 강력했다.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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