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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문화와 문자문화

강자를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 한다

by 홍차영차 2023. 6. 7.

강자를 보호해야 한다?

 

뭔가 사리에 맞지 않는 말 같다. 강자가 아니라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에서 말하는 강자라는 말에서는 니체적 강자를 떠올려야 한다.

강자는 힘이 쎈 사람도 아니고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엄청난 재력을 가진 사람을 말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 강자란 무엇이고 누군인가? 그리고 왜 약자가 아니라 강자를 보호애야 할까?

여기서 말하는 강자란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명령에 따르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나는 신체적 감응의 명령을 따라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니체적 강자란 완련이나 권력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감응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다. 사회적 관습이나 법에 복종하기 보다는 그 상황과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응으로 판단하는 사람이다. 그렇기때문에 니체적 강자에는 예술가들이 많이 포진되어 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빨주토초파남보라는 색깔로 구분된다고 말하지만 강자는 이런 사회적 구분, 법적인 구분보다 자신의 감응에 다른 미분적 구분을 더욱 신뢰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슬프다고 슬픈것도 아니고 많은 사름들이 가치 있다고 해서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강자는 자신의 감각과 감응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들 의아해할 것이다. 다들 자신의 감응에 솔직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근대 이후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의 감응(감각적 반응)에 그대로 반응하기 보다는, 규칙이나 법 혹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고려하면서 반응하고 있다. 울음도 웃음도 혐오도 사랑도 모두 다른 사람들의 기준을 따르면서 행동할 때가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듯.

더욱 놀라운 것은 강자들의 이러한 솔직하고 감각적인 반응에 대부분의 군중들, 약자들은 경악스러운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강자들은, 정말 놀랍게도, 이러한 약자들로 인해서 싹이 돋자마자, 아이디어를 내놓자 마자 경악스러운 반응과 혐오에 죽어나간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강자를 보호해야할까? 상식적으로 강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 말이 되는가?

약자들은 항상 무리(group)를 지어 행동한다.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공격하려고 한다. 약자와 강자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강자는 다른 사람들, 특히 사회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고려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응, 신체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사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멋지다고 말하는 상품에 다른 의견을 보여주고, 아주 소박하고 보잘 것 없는 것에 아주 큰 가치를 두기도 한다.

바로 여기에 있다. 약자들은, 다수의 의견으로 무장한 약자들은 이러한 강자들을 참지 못한다. "니가 뭔데 우리들의 의견에 반대하는가? 너는 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신경쓰지 않는가?" 신기하게도 강자들은 그 싹이 돋자마자 무리지어진 약자들의 무리에 짖밟혀지고 쓰려지며 죽어나가는 경우가 많다. 강자들은 다수의 의견이라면서 법과 규칙을 만들고 강자들을 옭아매고 감시한다. 

강자를 보호해야 한다!

일어난 일들에 자신의 감응을 솔직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좀 더 풍부한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의견과 눈치를 보게 되면 세계는 더 이상 넓어지지 않는다. 넓어지기는 커녕 계속해서 좁아지고 억압받을 수밖에 벗다.

물론, 강자들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강자들이 보여주고 반응하는 다양한 감응들을 받아들인다면 현재의 세계는 지금보다 훨썬 더 풍부하고 넗은 세계, 우주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배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논리와 구조로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일 때야 비로서 보이지 않던 길, 방법이 보일 수 있다.

강자를 보호해야 한다. 싹이 나기 전에 죽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세계가 더욱 더 풍부하고 아름답게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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