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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문화와 문자문화

피부의 정신

by 홍차영차 2023. 7. 17.

 

'피부의 정신' 혹은

'접촉(skinship)이나 피부 자극(촉각경험)이 인간의 행동이나 사고(thought)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표현만 보면 뭔가 대단히 밝혀내기 어려운 연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피부의 정신'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경험해온 쓰다듬어주기, 안아주기, 깨물기, 손잡기와 같이 다정한 행동, 아껴주는 행동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세미나를 하는데 한 분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 책(<터칭>)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뭔가 새로운 것처럼 풀어주고 있네요."

 

신체적 접촉, 그루밍이 건강과 신체 발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연히 스킨쉽이 정서적, 심리적인 마음상태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 즉, 이전에는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여겨졌던 스킵쉽이 측정할 수 없는, 보여줄 수 없는 비문자적인 영향을 주기때문에 근대에 들어서면서 무시당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조금씩 신체적촉과 건강, 행복한 심리적 상태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여러가지 가시적(visible) 지표들이 생겨나면서 그 중요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터칭>이 신체접촉, 촉각경험을 다양한 측면에서 보여주고 있지만 기본적인 주장은 1장에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피부는 신체의 생리적, 정신적 상태를 반영하는, 즉 정념과 감정의 거울"(43쪽)이라는 말을 살펴보자. 피부 상태는 지금도 그 사람의 건강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연예인이나 부자들 하면 자연스럽게 백옥같은 피부, 잘 관리된 피부를 떠올리지 않는가. 

 

그런데 겉으로 나타나는 건강보다 중요하게 피부는 그 사람의 마음(정서적 상태)도 비춰준다. 즉 다정하고 따뜻한 표현으로 스킨쉽을 경험한 사람은 행복한 마음상태를 갖게 된다는 것. 지금까지 살펴본 신체와 육체의 연결성을 떠올려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특히 관념이란 신체의 상태이고, 감정은 신체의 변화라는 스피노자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더더욱 확실해진다.

 

<터칭> 전체를 통해서 가장 인상적인 사례와 연구는 동물들의 그루밍(grooming)이다.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특히 냥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보게 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에 격하게 공감했다. 처음 태어난 냥이에게 어미가 해주는 가장 중요한 행동이 바로 '핥아주기'이다. 물론, 젖을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지만 시간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어미 고양이는 대부분의 시간에 냥이들을 핥아주는데 열과 성을 다한다. 혀다 닳아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정도로 새끼 고양이를 정성껏 돌봐준다.

텍스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신기하게도 그루밍의 대부분은 비뇨생식기 부분과 얼굴 부분에 할애된다. 엉덩이와 생식기 부분과 눈/코/입/귀(변용된 피부)를 끊임없이 핥아준다.(55쪽) 연구결과로 보면 포유동물들이 태어나고 곧바로 생식기 부분을 자극해주지 않으면 배뇨와 배변, 그리고 위장(소화)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죽게 된다. 즉 비뇨생식기를 비롯한 피부자극이 배뇨의 생리적 과정을 비롯해서 소화를 시키는 호르몬과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다. 즉, 신체적 접촉, 핥아주기는 그냥 해줘도 되고 안해도 되는 욕구가 아니라 호흡처럼 생존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필수적인 욕구라는 말이다.

고슴도치, 천산갑이나 아르마딜로 같은 핥아주기가 어려운 동물들의 예도 흥미롭다. 보면 알겠지만 고슴도치같은 동물을 혀로 핥아주거나 피부를 자극해주기 어렵다. 그러나 대신 이러한 동물들은 가시와 같은 피부 사이 사이에 해충들이 자극을 주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다. 건강하게 잘 키우겠다고 고슴도치의 피부에 있는 모든 해충들을 제거하면 이상하게도 다 죽어버린다는 것.

애슐리 몬테규도 말하지만 아직은 피부경험과 행동양식(사고방식)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매커니즘을 확실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동물들의 실험들을 살펴보면 스킨쉽이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건강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인간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아이를 핥아주지는 않는다. 물론 아주 어릴적에서는 너무도 귀여워서 입, 코, 귀, 손, 얼굴 전체를 핥고 물어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기간은 아주 짧으면 이후에는 스킨쉽도 자주 하지 않는다. '근대인의 특징은 신경증'이라는 이야기가 이제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고 뭔가 이것과 연결되어 있을 것 같다. 정서적인 안정감은 어디서 올까? 억울한 마음에서 힘들어할 때 가족이나 친구의 말이 아니라 따뜻한 손길에 우리는 울컥하고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스킨쉽, 피부자극의 문제는 어릴때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인들에게 스킨쉽은 곧바로 성적결합만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가족간의 스킨쉽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타자들과의 접촉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성인이라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자연스러운 피부접촉(자극)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불안하고 초조하며 안정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다행인지 지금은 우리의 마음상태, 신체상태를 지표화해서 측정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생겼다.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 이제는 보이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스러운 스킨쉽... 그리 어렵지 않다.

 

 

추신) 물론 스킨쉽이 좋다고 수십년 동안 손 잡는 것도 어색하던 가족끼리 갑작스러운 시도를 하는것은 자제해주기를.

대신 동물, 식물, 사물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해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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