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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 읽기

프루스트와 스피노자

by 홍차영차 2021. 8. 19.

스피노자 감정역학으로 읽는 프루스트

 

 

1부 91쪽까지 사건이라고 불릴만한 내용은 없다. 초반부는 마르셀이 어릴 적 잠을 뒤척이면서 떠오른 생각들로 채워진다. 이후에는 스완이 자신의 집으로 초대되어 돌아갈 때까지 일어난 일들과 마르셀의 심리적 변화들. 작은 일상을 통해서 마르셀에게 엄마의 굿나잇 키스는 삶의 전부다. 굿나잇 키스를 받는 것은 좋지만 이후에 엄마가 돌아갈 것을 알기에 굿나잇 키스가 계속해서 유예되기를 바란다.

참, 프루스트 하면 떠올리는 ‘홍차와 마들렌’이 이 부분에 나온다. 이 부분에 대한 모든 묘사들을 외워보고 싶을 정도로 좋다. 그의 묘사들은 술술 읽히면서도 아름답고, 기억에 관한 구절들은 그 어떤 정신분석학 책보다도 더 기억과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려준다. 

 

 

1. 믿음직한 무의식과 위험스러운 의식

 

나는 잠을 자면서도 방금 읽은 책에 대해 끊임없니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약간 특이한 형태로 나타났다. 마치 나 자신이 책에 나오는 성당, 사중주고, 프랑수아 1세와 카를 5세와 경쟁 관계라도 되는 것 같았다. … 몇 시나 되었을까 생각했다. 기적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가더니, 마치 숲 속에서 우는 새의 노래마냥 거리감을 드러내면서, 나그네가 다음 역을 향해 발걸음을 서두르는 그 황량한 들판의 넓이를 그려보였다. 16
그러나 삶에서 가장 사소한 것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 인간은 마치 회계 장부나 유언장처럼 가서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물질로 구성된 전체가 아니다.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의 생각이 만들어 낸 창조물이다. … 눈앞에 보이는 존재의 외양에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 모든 관념들을 채워 넣어 하나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43

 

1권 초반부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졸았다. 잠을 뒤척이면서 드는 생각을 적어서 그런지 달콤하게 졸았다. ‘금방 잘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졸린 기운을 이어서 자려고 누웠다. 아쉽게도 눕자마자 다시 정신이 온전해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권이 출판된 1913년과 달리 나는 1권의 초반부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무의식을 떠올리게 된다. 17세기 이미 스피노자는 감정이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무한한 관념의 연쇄 속에서 발생하는 신체의 생성, 변이라고 말했고, 프루스트(1871~1922)가 태어나기 불과 한 세대 전에 니체는 근대적 믿음과 달리 위험한 것은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이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합리적 이유들과 논리적 절차를 말하지만 정작 우리는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얼마나 힘이 센지, 그리고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사유란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정확한 메카니즘을 아는 것이 어렵다면 프루스트처럼 밝은 눈을 가지고, “너무 빨리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하는 프루스트의 외침에 귀 기울여 보면 좋겠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론이 아니라) 스피노자의 감정역학 실전편이고, 스스로도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았던 감정들의 실체를 실제로 ‘체험’하게 해주는 것 같다. 가끔은 프루스트처럼 자신의 의식이, 관념이, 감정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움직이는지 적어보면 좋지 않을까.

 

 

2.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고모할머니

 

그런데 스완에 관련된 이 이야기는 스완에 대한 고모할머니의 평가를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빌파리지 부인에 대한 평가마저 낮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45 … 할아버지는 스완 씨가 그런 인물들을 아는 사람과 교제한다는 사실에 무척 기뻐하셨다. 반면 고모할머니는 이 소식을 스완에게 불리한 쪽으로 해석하셨다. 47
… 할머니의 여동생들이 <르 피가로> 기사에 대해 스완에게 말하겠다고 하자, 고모할머니는 만류하셨다. 고모할머니는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자기보다 우월하다고 생각되면, 그것이 장점이 아닌 단점이라고 확신하고는 부러워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려고 도리어 동정했다. 49

 

고모할머니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가 아니라 누구라도 이런 면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고모할머니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어디로부터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에게 이런 감정이 발생했다는 것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다 자신의 코나투스(현재의 자기를 지속하거나 확장려는 노력)를 지키려고 한다. 누구도 자신을 해치면서까지 행하지 않는다. 타자와 자신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방식이 존재하지만 힘이 든다. 그냥 쉽게 힘으로 굴복시키던지 아니면 타자를 비하하는 쉬운 방법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할머니는…비록 상당한 미학적 가치가 있다 할지라도, 사진술이라는 기술 복제 방식에서 저속함과 유용성을 발견하셨다. 그리하여 궁여지책으로 … 예술의 여러 ‘두께’를 입히려고 하셨다. … 차라리 코로가 그린 <샤르트르 성당> … 을 찍은 사진을, 내게 주는 편을 더 좋아아셨다. 78

 

 

3. 비신체적 기억이 가능할까

 

이처럼 콩브레에서 내 잠자리의 비극과 무대 외에 다른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지도 오랜 어느 겨울 날, 집에 돌아온 내가 추워하는 걸 본 어머니께서는 평소 내 습관과는 달리 홍차를 마시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왠지 마음이 바뀌었다. 85
…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 가느다란 홈이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트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오게 하셨다. …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86

 

스피노자는 “모든 관념은 상상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컵, 자동차, 시계, 복숭아, 거미, 사랑 그것 자체를 알지 못하고, 외부의 대상이 신체에 만들어낸 효과만을 알 뿐이다. 게다가 우리가 이런 신체에 새겨진 효과를 타자에게 전할 때 2차적인 한계에 부딪힌다. 절대로 그 단어에 담길 수 없음에도 하나의 낱말을 통해서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지금의 세상이 진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게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평생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았고, 그것에 행복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사람이 갑자기 ‘홍차와 마들렌’을 먹고서 과거 그 순간에는 알지도 못한 비밀을 알게 된다? 홍차를 마시면서 다시 올라온(구성해낸/조작해낸?) 기억이 진짜일까, 아니면 이전에 아무런 느낌 없이 레오니 아주머니의 홍차와 마들렌을 먹었던 것이 진짜일까?

신기하게도, 이런 경험이 낯설지 않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런 순간을 겪는다. 어느 겨울 저녁 별 것 아닌 청국장에서, 찐만두에서, 진한 잣나무 향에서 과거가 새롭게 구성되고, 행복이/고통이 솟아오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을 뉴런에 저장된 정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기억이란 단순히 그 관념을 정보로서 갖는 것이 아니라 그 관념으로 형성되었던 신체적 변이를 다시 생성하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계속되는 관념의 연쇄들!

 

이 아름다운 문장들을 읽고서, 이렇게도 건조한 요약을 펼쳐내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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