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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선물과증여

진리와 주체 혹은 진리의 가격에 대한 문제

by 홍차영차 2021. 3. 16.

진리와 주체 혹은 진리의 가격에 대한 문제

: <진리의 가격> 1장

 

 

 

소크라테스의 문제제기

소크라테스의 문제제기는 이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그리스 최고의 영웅인 아킬레우스에게 비유했다. 이는 단순한 영웅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면서 <일리아스> 시대에 ‘생각과 행위에 간극’이 없었던 호메로스적 인간에 대한 환기이기도 하다. 호메로스의 영웅 시대에도 물질(전리품)이 중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호간의 동맹이었고, 그에 대한 정당한 선물과 보증이었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가 그리스군이 거의 패배할 때까지 전투에 나가지 않았던 것은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었다. 그는 상호적 인정으로 주어진 전리품을 빼앗겼기 때문에, 이러한 시위를 통해서 시대의 윤리로 작용했던 선물로 이어진 공동체를 다시 세우고자 했다.

이렇게 보면 앞선 연구자들이 놓쳤다고 마르셀 에나프가 지적하는 의례적 증여의 호혜성은 이미 언급된 것이 아닌가라는 섣부른 생각을 해본다. ^^; 북서아메리카 지역의 포틀래치, 남태평양의 쿨라 이외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만 보더라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증여는 다른 면에서 항상 공적인 협약 또는 동맹으로 작동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인정의 존중은 항상 상호적이어야 했고, 상호적 인정은 삶에 필수적이었다. 당연히 그렇지 않을 때는 전쟁이 발생.

 

마르셀의 문제제기

“진리의 가격”? 뭔가 갑자기 철학에서 증여라는 인류학적 주제로의 이행하는것 같다. “철학이 언제나 진리 탐구로 정의되었다면, 철학이 돈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묻고자 한다.” 그렇데 왜 ‘진리의 가격’일까? 증여 - 돈 - 진리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그리 쉽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증여가 시대의 윤리였을 적에 진리(지식)와 행위 사이에 간극이 없었다면, 증여가 아니라 상품의 시대가 된 지금 진리와 행위 사이에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심연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인듯 하다. 진리와 행위 사이의 간극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면 증여와 상품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좀 더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리 문제에 있어서 돌아갈 수 없는  다리-문자의 발명과 자의식의 발견!-를 건너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진리를 철학개념으로 다루기 전에, 즉 “이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진리(aletheia)는 예언자, 마술사, 특히 시인의 지혜를 담은 고문헌에서 우의의 형태로 나타났다.

도시국가의 출현으로, 아니 문자(알파벳)의 발명으로 이런 우의의 형태로 나타나는 진리는 힘을 잃었다. 최초의 시인이라고 하는 케오스의 시모니데스가 알파벳을 발명했다고 전해지고, 고대 신화의 기억인 므네모시네가 평범한 기억술의 기교로 바뀐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대 알레테이아는 종말을 고했고, 이제 시인은 다른 직업들처럼 언어의 전문가로 여겨졌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소피스트이다!

여기에 언급되지 않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문자/알파벳의 발명은 우리가 이성이라고 말하는 자의식, 속마음의 발명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진리(지식)와 행위 사이의 간극이 발생하게 된 것은 말과 행위가 분리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즉, 플라톤이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은 사물을 그 이름으로 부를 수(소유할 수) 있게 되면서, 사물 자체에 본질(진리)가 있다는 생각을 강화했다. 말=행위에서 말과 행위의 분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 말과 행위가 서로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소피스트가 파고든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솔론과 페이시스트라토스의 개혁,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그리고 페리클레스를 통해서 전혀 새로운 계층이 발생하게 되었다. 혈연과 가문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능력으로 자신을 입증했던 사람들!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정치무대에서도 발언하고 싶어했다. 자연스럽게 수사학, 논리학이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대대로 아테네의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났던 플라톤 같은 사람들은 따로 듣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런 발언과 연설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일어난 계층들은 이러한 능력을 새롭게 또한 빠르게 배울 필요가 있었다. 가문이나 혈연에 기대지 않으면서 할 필요가 있었고,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새로운 지식인-소피스트가 나타났다.

소피스트는 이전의 오랜 비법의 전수, 긴 훈련과정이나 금욕적인 소포이(지혜로운 자)의 방식이 아니라 단기간에 효과적으로 기술을 전수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보수를 요구했다. 진리에의 접근은 이제 개종형식이 아니라  유용한 수단이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제기하는 문제는 소피스트가 너무나 그 기교(가령, 어떤 것이라도 진실로 믿게 하는 수사학)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목적과 수단의 전도가 발생한다. 더 좋은 정치, 더 좋은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던 수사학이 이제는 하나의 판매기술이 되었고, 시민(?)들은 그 내용 혹은 내용과 행위의 일치와 상관없이 더 멋들어지게, 자극적으로 말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시 소크라테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시집 한 권과 편의점에서 파는 상품을 같은 저울에 올려놓고 재는 것에 저항하는 감각을 갖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에 희망을 둔다. 문자와 언어를 갖게 되면서 진리를 잘 전파할 수 있게 되었고, 누구라도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새로운 시대에는 더 견고하게 진리와 행위 사이의 간극을 이어줄 다리(새로운 담론과 실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화폐는 한 편으로 정당하고 효율성 있는 도구이면서, 또한 모든 것으로 변할 수 있는 만능주의 수단이기도 하다. 모든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능력이지만, 이전의 다른 모든 능력들을 무화시켜버릴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

 

진짜 철학자 - 비슷한 것은 가짜

겉보기에 철학자와 소피스트 사이에 차이는 없다. 둘 모두는 진리를 추구하고, 교육하는 사람이다. 차이가 있다면 철학자는 보수를 받지 않고, 소피스트는 보수를 받는다. 특히 소크라테스로 대변되는 철학자는 보수를 받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에게 중요한 것은 함께 진리를 탐구할 사람을 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다.

소크라테스는 보수를 추구하지 않았지만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주는 호의를 마다하지 않았다. 공자 역시 함께 공부하고자 하는 누구라도 함께 하기를 원했지만 공짜가 아니라 자신이 낼 수 있는 만큼 (고깃조각등)을 감당하기를 원했다.

소크라테스는 문자 이전에 있었던 영감에 찬 현인도 아니지만 프로타고라스 같은 현실주의적 소피스트도 아니다. 그는 “신”에 의해 내적으로 인도되지만, 동시에 덕, 아름다움, 언어, 사랑, 존재/비존재, 정의와 같은 것에 대해 모든 자원을 동원해 논리적 주장을 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영감에 맡긴다는 것은 지식을 거부하는 것이고, 또한 내적 경험을 모두 거부하는 것 역시 앎을 숙련되 기술로 환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문자화된 사회, 의식과 속마음을 가지고 있는 시대에 새로운 영웅상을 제시하려고 한평생 노력했다. 이게 바로 우리가 바라보는 철학자의 모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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